[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농민시의 안부를 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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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의 안부>(창작과비평사, 2001)는 이중기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을 읽기 전에 어쩌다 여덟 번째 시집 <어처구니는 나무로 만든다>(한티재, 2018)와 아홉 번째 시집 <정녀들이 밤에 경찰 수의를 지었다>(산지니, 2022)를 먼저 읽었다. 국가폭력과 그것이 오랫동안 지워버린 지방의 민중사를 복원하고 있는 두 권의 시집에 대해서는 별도의 독후감이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도 두 권이 준 강렬한 인상은 시인의 첫 시집<식민지 농민>(해성, 1992년)과 두 번째 시집<숨어서 피는 꽃>(전망, 1995)을 찾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 권의 시집은 끝내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어보지 못한 두 권의 시집에 대한 여러 정보를 취합해 보면, 첫 번째 시집은 폐업의 지경에 빠진 농민의 현실을 직설과 분노의 언어로 고발하고 있다고 하며, 두 번째 시집은 이상적인 농촌의 삶을 서정적인 언어로 보듬는다고 한다. 거기에 이어지는 세 번째 시집 또한 두 시집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시집의 제1부에는 많은 죽음이 나온다. “농사짓다 빚잔치하고 내소박당한 / 마흔 근처 아들 하나 / 궁상궁상 속 끓이다 자진한 뒤”(‘저 농부에 바치다’) “젊어 죽은 이의 부음은 생트집이다 / 비끄러매는 아낙 손아구 기연시 뿌리친 / 너무 짧은 생은 기도 안 찬다”(‘너무 짧은 생’) “인연 닿은 사람마다 한 기별 찾아든다 / 끝물 고추 악착 익은 벼랑밭에 / 땡볕 한줌 아껴 쓰던 사람들은 / 늦서리 후려친 고춧잎처럼 생을 기습당한다”(‘죽음의 기별이 닿는 마을’) “죽어서야 마을 사람들 죄 불러모아 / 술 사고 떡을 빚어 잔치하는 사람을 안다네”(‘정뿌뜰 평전’) “인간의 마을에서 분가하는 사람을 따라간다 / 애젊어라, 저 어리비기”(‘젊은 죽음은 이설이다’) 죽음은 제2부에도 있고(‘저 푸른 문장’·‘고로쇠나무’), 제3부에도 있다(‘파젯날 울다’). 제4부에는 없는 듯하지만, 농산물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상경(上京) 투쟁을 그려낸 ‘집회 현장에서 듣는다’는 불길한 복선을 남긴다. 대규모 농민 투쟁에서 공권력에 의한 치사나 농민의 분신은 드물지 않았기에 말이다.

이 시집에 나오는 죽음들은 농민 각자의 죽음이자 농업의 죽음이기도 하다. “후레새끼! // 십이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 거두절미하고 귀싸대기부터 올려붙였다 / 이놈아, 어쩐지 제삿밥에 뜬내나더라 / 지독한 흉년 들어 정부미 타먹느라 / 똥줄이 타는 줄 알았더니 / 어허야, 네놈이 귀신 눈을 속였구나 / 이런 쳐죽일 놈! 뭐라꼬? / 쌀농사는 돈이 안 된다꼬? / 물려준 땅 죄다 얼라들 주전부리나 할 / 복숭아 포도 그딴 허드렛 농사만 짓고 / 뭐? 쌀을 사다 처먹어? / 그것 참. 허허 그것 참 // 이노옴, 내 논, 내 밭 다 내놔라아!”(‘통쾌한 꿈’ 전문) 농업의 죽음은 구조적이다.

한반도의 전통 농업은 쌀·보리 같은 기초농업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해인 1993년 12월 15일, 한국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농·축·수산물 전면 수입 자유화를 수용함으로써 쌀 농사는 시장 경쟁력을 잃게 됐다. 정부가 제시한 대안은 계절 과일 같은 수익성 위주의 상업영농이다. 하지만 이 또한 수입 농산물과 경쟁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초기에는 쌀 자급자족과 식량안보를 직결해서 사고하는 경각심도 있었으나 이제는 그 마저도 잊었다. 빚을 진 농민이 도망자가 되거나(‘도망자의 오지’·‘도망의 나라’),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버리는 사태를 국가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평선이 움직인다 / 누가 풀밭을 쟁기질하나보다”(‘까닭’)라고 써온 시인은 일찌감치 농민시인으로 불려왔지만, 같은 시의 다음 연에 “수평선이 근육질로 꿈틀거린다 / 만선의 고깃배가 돌아오나보다”라고 쓴 것을 보면, 시인이 농민만을 편애하지 않았다. 지평선이 움직이고 수평선이 꿈틀거리는 것을 자연의 현상이 아닌 농부와 어부의 노동이 자연에 관여하기 때문으로 보는 시인은 농부와 어부를 노동자 전체의 제유로 쓴다. 노동에 대한 이런 굳은 신뢰가 1946년 ‘영천 10월 항쟁’으로 시인의 시야를 확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