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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떼법이 헌법 위에 있다. 그런 식으로 떼쓰고 억지 부리면 안 들어줄 수 없다. 그게 지금 관례화되어 있다.” 지난 11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홍준표 대구시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성군을 두고 한 말이다. TK신공항 화물터미널 입지 문제로 의성군이 억지를 쓰고 있다는 비판이다.
‘떼법’은 홍 시장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연원은 길다. 2008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에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서 “지난 몇 년 동안 떼법이 판을 치면서 법치주의가 붕괴되고 국가 기강은 무너졌다”고 한 기록이 먼저 확인된다. 이후에도 때때로 ‘떼법 근절’, ‘헌법 위의 떼법’ 같은 표현을 써왔고, 대구시장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대구시의 정책토론청구제도를 개악하는 과정에선 “떼법 근절 차원에서 일부 시민단체가 청구한 정책토론회 개최 서명부 진위를 자체 조사해 본 결과 7,310명 중 1,635명만 서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고, 퀴어축제 축제 조직위원회나 대구경찰청장을 고발하면서는 “불법, 떼법 시위 방지 차원”이라고도 했다.
우리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말이지만, 이처럼 홍 시장은 주로 자신과 다른 뜻을 주장하며 집단 행동을 하는 무리나 대상을 향해 쓰곤 해왔다. 그런데 앞서 나열한 사례들에서 보이듯 홍 시장이 ‘떼법’으로 매도하는 대상은 저마다 각자의 ‘정의(Justice)’가 있다.
화물터미널을 요구하는 의성군은 2020년 신공항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경북도, 대구시 등과 맺은 공동합의문을 ‘정의’로 삼고 있다. 공동합의문에는 ‘항공물류·항공정비산업단지’를 의성군에 조성한다고 썼고, 항공물류단지에 화물터미널이 있는 건 당연하다는 게 의성군의 입장이다.
정책토론회를 청구한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2008년 대구시가 제정한 조례를 ‘정의’로 삼는다. 조례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정책토론을 청구하는 청구인이 시민 서명을 받아 청구하면, 대구시는 조례에 따라 적절성 여부를 따져 토론회 개최를 결정하면 되는거다.
대구퀴어축제도 마찬가지다. 올해로 16회째 맞는 퀴어축제는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들이 1년에 한 번 스스로를 드러내는 날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찾아야 할 특별한 다른 ‘정의’도 필요치 않다. 법 앞에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불의할 뿐이다.
‘정의’를 말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지난 28일, 올해 퀴어축제가 열리던 날 새벽에 홍 시장은 SNS에 “로마 철학자 울피아누스(Ulpianus)는 정의를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이라고 설파한바 있다”며 “요즘처럼 진영논리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적용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지표이고 정국 안정의 요소라고 보여진다”고 썼다.
화물터미널을 요구하는 의성군민, 정책토론을 청구한 시민들, 퀴어축제에 참여하는 성소수자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일거다. 그들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이 ‘정의’다. 그들을 향해 ‘떼법’이라 딱지 붙여 매도한다면, 그것은 ‘정의’를 빼앗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떼법’이라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무엇보다 홍 시장은 2022년 7월 대구시장에 취임한 후 그동안 대구시가 여러 주체들과 논의하고, 타협하고, 합의한 정책들을 원점으로 되돌려 새로 시작하고 있다. 그럴때마다 홍 시장은 ‘옳고 또 옳은’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고, 반대편의 주장은 ‘악의를 갖고 트집이나 잡는 것’이거나 ‘가짜뉴스’ 나아가 ‘갑질’, ‘떼법’으로 규정하며 ‘개가 짖어도 갔다’.
문제는 그것들 중 2년 새 실체적 성과를 보이는 건 없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라는 거다. 비판 보도한 방송국의 취재를 거부하면서까지 ‘대구경북통합신공항건설을위한특별법’ 제정에 사활을 걸고, 제정만 되면 ‘급물살’을 타고 사업이 추진될 것처럼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신공항 사업은 내년에도 삽을 뜨게 될지 미지수다.
지난 24일 사업을 맡아 할 SPC 구성은 무산됐다. 홍 시장은 자신의 호언장담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없이 대구시가 직접 공영개발을 할 방법을 찾겠다고 한다. 그러려면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과 지자체 채무에 대한 페널티를 면제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로부터 대구시가 ‘떼법’이란 지적을 받지 않을까 싶어 괜히 내 얼굴이 화끈해진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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