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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부모입니다. 성소수자 축복의 날에, 저도 부모로서 축복을 받습니다. 축복은 주고받는 거예요. 저도 같은 마음으로 프리허그를 준비했어요. 기도를 들으며 성소수자 자녀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그 기쁨을 저도 느껴도 봤어요. 부모도 자긍심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해요.”
성소수자 부모인 홍정선(68) 씨는 부스에서 프리허그 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면서도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부스에서 목사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기도하는 목사와 정선 씨 주위로 무지갯빛 비눗방울이 흩날렸다.
집회 제한으로 두 번 밀려난 곳에서도 무지개 깃발은 흩날렸다. 28일 열린 제16회 대구퀴어문화축제는 경찰의 연이은 집회 제한 통고에 축제 장소를 두 번 조정한 끝에 열렸다. 경찰의 집회 제한으로 옮겨간 축제 장소에서도 경찰이 재차 집회 제한을 통고한 탓이다. 경찰은 당초 조직위가 무대를 설치하려고 신고한 장소를 버스 통행을 위해 다시 일부 제한했다. 이 때문에 28일 오전 축제 준비를 위한 무대 설치 과정에서 축제 조직위와 경찰이 1시간가량 대치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무대 설치가 지연돼, 계획한 행사도 1시간씩 밀려 개최됐다. 당초 낮 12시 30분 부스 행사 시작을 계획했으나 오후 2시부터 시작하게 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차별 행정’이라며 입을 모았다.
일부 참가자는 집회 장소 옆으로 차량 통행이 이어져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대형 차량이 지나가거나 고속으로 지나는 경우도, 참가자 지척에서 경적을 울리는 경우도 있어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옮겨간 축제장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축복하고 포옹했다.
김미란(21) 씨는 이날이 첫 번째 퀴어축제 방문이다. 미란 씨는 올해 초 성소수자로서 정체성을 알게 됐다.
“올해 초 정체화를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깨달았어요. 두려운 마음이 컸고, 사람들의 시선도 무서웠어요. 아직 그 친구에게 마음을 이야기하지도 못했어요. 이곳에서 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힘을 얻어요. 차별금지법이란 것도 처음 알았는데, 이 축제가 이곳으로 밀려난 걸 보면 여전히 행정도 차별적이라는 걸 알겠어요.”
박기택(23) 씨는 “도로 옆으로 차량 통행이 이어져서, 위험한 곳으로 몰린다는 느낌이다. 처음 집회 열리던 곳을 제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화도 나고 속상했다. 아직까지 차별 행정이 바뀌지 않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대구 출생인 성소수자 책(가명, 28) 씨는 “축제에 참가할 때마다 저 자신으로 있다는 걸 느낀다.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며 “축제를 막아서는 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낀다. 반월당에서 문제없이 잘 개최해왔는데, 굳이 집회를 제한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만든 것은 성소수자의 축제라는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정말 어이없다”고 말했다.
오후 2시부터는 본격적으로 부스 행사와 함께 축제가 시작됐다. 여러 종교, 정당, 노조, 시민사회단체와 성소수자 단체가 부스를 마련해 성소수자 인권 옹호 행사를 진행했다.
오후 5시에 시작한 본행사에서는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서울드랙퍼레이드, 레즈히어로즈의 공연이 이어졌고, 오후 6시부터 이들은 대구시내 일대를 행진했다.
배진교 조직위원장은 “경찰이 1개 차로로 축제를 제한했다. 인도를 포함해서 축제를 진행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옮겨간 축제 장소조차도 다시 제한했다. 공권력의 탄압, 축제 방해 세력에도 끝까지 축제를 펼치겠다는 의지와 차별과 혐오, 배제에도 우리 자긍심을 보이겠다는 결의를 담아 축제를 열었다”고 말했다.
한편 보수 개신교계 종교인들도 퀴어축제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경로에서 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더럽다’ 등 혐오발언을 했지만, 특별한 충돌은 없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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