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 ‘내부자들’ 멘트처럼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이 말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도 교육부 공식 SNS 계정에는 “멍멍멍멍”, “꿀꿀꿀꿀”, “개, 돼지 사육하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같은 댓글이 달리고 있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발언 당사자 나향욱 전 정책기확관을 대기발령했다가, 파면했다. 이걸로 끝일까?
최근 대구교육청이 작은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보인 행태를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대구교육청은 유가초 이전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숨기는 ‘밀실 행정’과 반드시 자기 뜻을 관철하는 ‘일방 행정’의 전형을 보였다. 이는 나향욱의 그것과 다르지 않는 대구교육청의 대시민관이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위원님 말씀이 맞다. (학교 통폐합)추진 자체를 철저히 해서 반대하는 분들의 민원을 다 잠재우고, 이해하고 설득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대구교육청 국장급 간부가 21일 대구시의회 교육위 회의 자리에서 한 말이다. 기자는 이 간부가 “잠재우고”라고 말할 때, 귀를 의심했다. 곧이어서 ‘설득시켜야 하는데’라고 순화했지만, 교육청 간부의 인식이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했다.
이 간부의 말을 뜯어보면 그가 ‘죄송하게 생각한’ 이유는 반대 민원을 잠재우고, 설득하지 못해서다. 교육청 정책에 반대하는 학부모는 ‘잠재우고’, ‘설득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상정한 듯했다.
상식적이라면 그는 그 자리에서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죄송하다거나 소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그는 이날 회의 중 시종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교육청이 추진하기로 결정했으면 어떤 반대가 있어도 관철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정한 ‘룰’이고, ‘원칙’인 것처럼 보였다.
더한 발언도 있었다. 이용도 대구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건 반란”이라고 말했다. 학부모와 면담 자리에서 한 말이다. 졸지에 교육장 앞에 앉아 있던 학부모들은 반란자가 되어버렸다. 교육청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반란자고, 반대하는 의견은 ‘잠재워야’ 한다는 사람들이 고위 간부로 있는 대구교육청은 과연 학부모와 학생을 ‘사람’으로는 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나향욱과 이용도, 그리고 대구교육청 간부의 말을 보면 이들의 인식은 일맥상통한다. 바로 국민, 시민, 주민은 자신들의 결정을 군소리 없이 따르면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개, 돼지’처럼, 군말 없이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교육청은 반대 의견도 ‘대화’와 ‘소통’의 대상으로서 옳고 합리적이라면 정책에 반영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교육청의 태도는 일관됐다. 귀는 닫고, 입만 열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소통’과 ‘대화’를 입에 담고 있다. 소통과 대화는 대구교육청처럼 답을 정해 놓은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철하려는 집단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단어는 분명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