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역사] 열심히 일한 당신,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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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 음력 8월 6일, 전쟁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얼마 전 강원도 평강군에 자리 잡은 오희문의 마을에서는 떠들썩한 굿판이 벌어졌다. 온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 모여 술과 안주를 모으고, 무당을 불러 북을 치며 하늘에 빌었다. 얼마 전부터 고을에 호랑이 출몰이 잦아 사람이 다치고 가축이 도난당하는 일이 많자, 호환으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비는 굿판이 함께 벌어졌다.

이날 만큼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농사일 물리고 냇가에 모였다. 오희문의 계집종들 역시 떠들썩한 마을 행사에 초대받아 함께 그 자리를 즐겼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술 한 동이와 떡 한 행담까지 받아와, 얼마 남지 않은 추석만큼이나 넉넉하게 하루를 즐겼다. 유학자로서 굿만큼 부질없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던 오희문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 덕에 간접적으로나마 그 잔치에 함께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마을의 굿판은 초가을이면 늘 있는 의례적인 행사로, 그해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1600년 그해는 유난히 호환이 많아 무당을 불러 호환을 막는 굿을 했지만, 전에는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일상적 굿판이었다. 엄밀하게 말해, 굿판을 빌미 삼아 마을 전체가 잠시 농사일을 뒤로 물리고, 하루를 놀고먹는 마을 전체의 잔치였다. 이른바 호미씻이, 또는 풋굿이라 불리는 행사였다. 넉넉한 인심만큼이나 풍성한 잔치에 꼬장꼬장한 유학자 오희문 역시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잠깐의 쉼을 선사하는 마을 놀이였다.

요즘도 안동의 군자리(현 안동시 예안면 소재)에서는 음력 7월 백중(다른 말로 보름이라고도 부른다) 언저리에 날을 정해 풋굿 축제를 연다. 코로나 19로 행사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지역 중요 민속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1607년 김령이 군자리 사람들과 함께 했던 호미씻이 행사가 400여 년도 더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1600년 오희문이 살았던 고을, 1607년 김령이 살았던 군자리, 그리고 1922년 남붕이 살았던 영덕에서도 지금처럼 그 의미를 새기기 위한 놀이가 진행되고 있다.

호미씻이, 또는 풋굿으로 불리는 이 행사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의 일상적 삶을 잘 보여주는 행사다. 요즘 농업이야 대부분 기계농이므로, 이전처럼 사람의 힘이 필요하지는 않다. 게다가 농작물의 천적인 잡초 역시 대체로 제초제를 통해 제거하므로 일일이 뽑을 필요도 없다. 호미로 밭을 매고, 손으로 일일이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 조선시대 농업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농부의 애환을 담은 풋굿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농사는 그 특성상 사람 손보다 하늘의 의지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의 경우, 가뭄이나 홍수, 충해 등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이고,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일이 바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호하는 행위이다. 이를 위한 일련의 행위가 농사인데,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일은 농작물의 천적인 잡초 제거 작업이다. 드센 잡초의 생명력을 이기고 농작물이 제대로 된 소출을 내도록 하기 위해, 농부는 농작물이 잡초를 이길 힘을 가질 때까지 잡초를 제거해야 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농부들의 가장 중요한 농기구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호미였다. 씨를 뿌리거나 농작물을 심고 나면, 농작물 스스로가 잡초를 이길 힘을 가질 때까지 성실하게 잡초를 뽑는 일이 농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특히 농작물도 부쩍 자라지만, 동시에 잡초 역시 부쩍 자라는 한여름은 농부들에게 그야말로 최악의 전장이다. 한여름의 뙤약볕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아무리 빨라도 음력 7월 백중까지는 이어졌으며, 경우에 따라 8월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호미씻이, 또는 풋굿은 이처럼 가장 더운 시기를 가장 힘들게 보낸 농부들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풍성한 음식과 술은 기본이고, 음악과 춤도 빠지지 않았다. 어떤 지역에서는 풋굿을 ‘머슴날’이라고도 불렀다.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슴날에는 그해 농사가 가장 잘 된 집 머슴을 뽑아 여러 머슴들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에게는 특별히 삿갓을 씌우고 황소에 태운 뒤, 여러 머슴이 그를 에워싸고 노래와 춤으로 그를 높였다. 당연히 이날 술과 음식은 우두머리 머슴의 주인이 냈다.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높이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풋굿이 없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추석은 자신의 일자리를 잠시 떠나, 가족 친지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조선시대 풋굿만큼이나 힘들게 일한 사람들이 더욱 크게 그 기쁨과 쉼을 누릴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어떤 광고 문구에서 “힘들게 일한 당신, 떠나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번 연휴 정도라도 “힘들게 일한 당신, 쉬어라”는 말에 순응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특히 힘들게 일했던 사람일수록, 이 하루 호미를 잠시 씻어두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하루를 보내기 바란다. 근래 참으로 녹록치않는 현실이 우리 모두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이날 만큼은 짬을 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