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추석, 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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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오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 요즘 건강은 어때? 가까이 있던 시간만큼 자주 보진 못하지만 항상 궁금해. 올해 가기 전에는 얼굴 한번 보자.’ 취재원들의 (아마도 단체문자일) 안부 연락에도 답장을 했다. 엄마, 아빠, 동생, 올케와 케이크를 나눠 먹었고 장거리 연애 중인 애인과도 간만에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나에게 명절은 긴 연휴이면서 연고자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날이다. 30대 1인 가구 여성으로서 평소 소홀했던 일종의 책임을 지는 날이기도 하다. 부모님에게 효도, 남동생에게 질문, 직장 동료와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 같은 걸 수행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요즘 이 친구와 자주 봤구나. 최근 동생에게 연락을 안 했구나.’ 일 년에 한두 번 그렇게 삶의 관계들을 재정비한다.

어린 시절에는 친가, 외가 가족이 북적하게 모이는 명절을 보냈다. 여자들이 상다리 휘어지게 밥을 차리면 남자들이 왁자지껄 먹고 몸만 일어나곤 했다. 서너 살 터울의 친척 형제들과 무리 지어 할머니집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몰래 받은 용돈으로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턴 결혼식, 장례식 같은 큰 행사를 제외하면 명절에도 각자 가족끼리 모이게 됐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앞으로, 아마도 나는 어린 시절 경험한 대가족을 다시 만나긴 어려울 테다. 1남 1녀로 태어났고 친척 형제들의 자녀도 대부분 하나, 많아야 둘이다. 4남 1녀인 아버지와 2남 1녀인 어머니 때와 비교하면 형제가 적은데, 그마저도 다음 대에선 더 줄어들 전망이다. 나만의 일이 아니다. 2023년 기준 합계출생률 0.72명, 1인 가구 비율 35.5%라는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지난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추계:2022~2052년’에 따르면 30년 뒤인 2052년에는 평균 가구원 수가 2명이 안 되는 1.81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듯 시대 변화는 빠른데 한국의 법·제도는 여전히 ‘가족’, ‘연고’ 개념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한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의 범위를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본다.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혈연과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고 함께 영위하는 관계도 가족관계의 법적 테두리 안에 포함하자’는 내용인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 통과가 요원하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연고자를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 직계비속, 부모 외 직계존속, 형제·자매 순으로 본다. 여기에 해당하는 이가 없으면 ‘사망하기 전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 여기에도 해당하는 이가 없으면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장례식장·장례업체)’가 연고자가 된다. 지금 내 삶에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들은 여기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명절은 관계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날이다. 대가족이 모여 시끌벅적 요리해 먹는 명절 풍경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가족, 친척 간의 품앗이와 돌봄 또한 옛날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조용한 명절은 두렵지 않으나 돌봄의 공백과 외로운 죽음은 두렵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30년 뒤에는 1인 가구 가운데 70대 이상이 42.2%를 차지하게 된다. 나이 드는 사회, 변화하는 가족 형태를 반영하는 법이 필요하다.

▲지금 내 삶에서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들은 여기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사진=Pixabay)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