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시즌3] 죽음을 상상하기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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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8월 20일 씨부려대구 시즌3 세 번째 모임입니다. 오늘 주제는 좀 무겁습니다. 최근 유경진 활동가와 함께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 대해 취재했는데요. 죽음의 전 단계인 나이 듦과 돌봄부터 그리고 다음 단계인 장례식에 대해 여러 고민을 나눴습니다. 씨부려대구에서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오늘 참석자는 김수현(만 27세, 대구여성노동자회), 유경진(만 33세, 대구쪽방상담소), 이명은(만 34세, 생명평화아시아), 이학선(만 25세, 백수), 조영태(만 32세, 대구참여연대)입니다. 저는 진행과 기록을 맡은 김보현(만 31세, 뉴스민)입니다.

▲씨부려대구 시즌3 세 번째 모임은 8월 20일 대구 남구 대명동의 ‘뜻밖의 공간’에서 진행했다.

유경진: 제가 먼저 무연고 사망과 공영장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뉴스민에서 기사로 나오기도 했는데요. (관련 기사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도 지역별로 차등···남구에선 되어도 중구는 안 돼 (24.08.09.) 저는 일하면서 주로 1인 가구, 독신 생활자를 만납니다. 사고무친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죽으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래서 ‘공영장례’ 제도가 있습니다. 보통 장례는 가족이 치러주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지자체가 장례비를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저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깊숙이 알아보진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절차상의 문제, 정확히는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지원을 받지 못한 상황을 겪고선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일을 통해 관계 맺고 있던 분이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 지병이 있었는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셨거든요. 돌아가신 후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해서 무연고자가 됐고, 공영장례 지원을 받기 위해 구청에 문의를 했어요. 담당자가 제도 자체를 잘 못 이해해서 결국 지원받지 못했고 장례 절차 없이 바로 화장이 됐어요. 절차대로 했다면 빈소가 차려져서 이웃들의 배웅을 받았겠죠. 그래서 저와 동료 직원, 이웃들이 목사님을 모시고 간단히 장례 예식을 치렀어요.

보현: 대구시는 2022년 조례가 제정됐고요. 지난해부터 지원을 시작했어요. 취재를 하면서 ‘나와 먼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구시립공원묘지에 ‘무연고실’이 있어요.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코로나19 이전에는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 접수가 연간 100건이 안 됐대요. 코로나19로 인해 연간 300여 건으로 늘었는데 이게 다시 줄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더라고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앞으로 주요한 화두가 되겠구나’ 싶었죠.

경진: 코로나19가 취약계층에 더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무연고 사망자가 늘었을 테고요. 또 하나는 그게 촉매가 돼서 경제 문제, 가족관계 단절 등의 현상으로 나타났을 거라고 봐요. 고령화나 1인 가구 증가 속도도 빨라졌고요.

조영태: 장례는 가족만 지낼 수 있나요?

경진: 장사법상 연고자가 시신을 수습할 수 있어요. 장례를 치르려면 사망진단서를 떼야 하는데, 그게 법적 연고자만 가능하거든요. 장사법 제16조에 연고자에 대해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이라고 나와 있어요. 그다음이 행정기관,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예요.

#공영장례가 갖는 의미

보현: 국회에 연고자의 개념에 ‘장기간 생계나 주거를 같이하는 실질적 부양자 및 돌봄제공자’를 포함하는 장사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돼 있긴 해요. 보건복지부 지침으로 사회적 연고자가 장례를 지원할 수 있긴 한데 여기에 대해 법적 근거가 부재해 지자체마다 다르게 진행하고 있고요. 취재를 하면서 한 유튜브 영상에서 동성커플의 장례식에 연락을 받지 못해서 가지 못한 사례도 봤어요. 죽기 전 내 삶의 바운더리가 가족이 아닐 수 있는데 아직 법적으론 가족, 특히 정상가족의 영향이 강한 거죠. 그래서 오늘 주제로 돌봄 이야기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사전에 공유 드린 기사는 어떻게 보셨나요?

이명은: 전 ‘죽은 뒤의 일’보다 ‘죽기 전의 일’이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사후세계나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자원이 한정적이고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면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제도나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수현: 저도 비슷해요. 애초에 무연고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복지체계 전반의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영태: 죽기 전에, 살아 있을 때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게 맞죠. 저 개인적으론 살아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학선, 김수현 (왼쪽부터)

학선: 흔히 ‘합리’라고 말하는 관점에서 보면 ‘데려갈 사람도 없는데 화장해서 묻으면 되지 않냐’고 할 텐데, 공공이 장례를 지원하는 건 ‘개인의 마지막 존엄을 국가가 지키겠다’는 의미까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반대로 말하면 이 사람이 홀로 죽은 건 존엄이 지켜지지 않은 결과인 거죠. 국가는 그래서 삶의 마지막 단계인 장례에서라도 사과하거나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공영장례를 지원해야 한다고 봐요.

한편으로 무연고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가정의 붕괴일 거잖아요.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관계가 무너졌으니 최후의 순간에 죽음을 목격, 또는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거고요. 가정의 붕괴는 불평등의 문제라고 보는 입장에서 이 문제가 되게 중요하다고 봐요.

저희 가족은 할머니가 아프셔서 집에서 모셨거든요. 요양원에 모시지 않은 건 돈이나 등급의 문제보다는 아빠가 반대한 이유가 컸어요. 엄마가 ‘못 하겠다’ 두 손 들면서 갈등이 시작됐죠.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들에게 내려가고, 아들은 적절한 보호와 사랑을 받지 못했다 여기면서 사고를 일으키고…. 저희 친형이 그랬거든요. 이게 누적되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되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할머니를 모시는 게 애초부터 우리 엄마의 몫이었던가?’ 싶어요. 결국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지 않으면서 가정의 문제가 불거진 거거든요. 돈이 있다면 그나마 괜찮겠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 떠오르는데, 전 반대로 불행도 비슷한 모습들인 것 같아요.

경진: 정확한 문구는 이렇네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보현: 저는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어요. 경진 님이 저에게 연락하면서 공영장례, 무연고 사망에 대해 기사를 쓰게 됐거든요. 그 과정에서 만난 대구 쪽방상담소 활동가들, 함께 장례 예식을 치른 고인의 이웃들은 연고자가 아닌가요? 행정 편의적으로 나눈 연고에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하나는 쪽방상담소 활동가 몇 명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장례 예식에 함께 한 고인의 동료, 쪽방 이웃들의 마음이에요. 이들에겐 국가가, 혹은 국가가 책임지지 않더라도 다른 이웃이 자신의 사후를 챙겨줄 거란 믿음이 생겼을 것 같아요. 장례식에는 그런 의미도 있죠.

학선: 동의합니다. ‘죽으면 의미가 없다’고 본인은 여길지언정,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절차라고 봐요.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지만 의미가 없다는 말은 세월호 선체를 인양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같다고 느껴져요. ‘이미 바다에 잠겼고 다 죽었는데 왜 인양해?’라고 물으면 ‘인양 비용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무연고 사망자가 나왔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비정하고 위험하다는 신호인 거고요. 그걸 인식하고 감시하고 최후의 순간에 모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공영장례라고 봐야 해요.

경진: 가끔 상담하다 보면 ‘내 죽으면 어떻게 되나?’ 질문하는 분들이 계세요. 내가 죽으면 어떤 절차를 밟게 되는지, 누가 화장하고 뿌리게 되는지 궁금한 거죠.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2022년 2월 공영장례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해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에서 검토보고서를 낸 게 있는데, 거기에 이런 문구가 있어요. ‘공영장례시 장례 관계자 등이 관련법을 악용하여 장례를 충분히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의 인수 거부나 기피로 공영장례에 의존하는 도덕적 해이(자기 책임을 소홀)가 발생할 가능성도 예견되는 만큼, 타·시도 사례 참고와 관련기관·단체와 긴밀한 협조체계 구축으로 이를 예방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음.’ 물론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건 맞지만 이 문구를 읽으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영태: 장례비가 싸지 않아요. 사람마다 체감하는 게 다르겠지만, 어떤 수의와 함을 선택하느냐, 손님은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최저 금액은 160만 원 정도라 하던데 저소득층일 경우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금액이죠.

수현: 한편으론 내가 연고자이지만 장례를 치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요. SNS에서 본 글인데, 연락을 끊고 살던 아버지가 10년 만에 병원에 있다고 연락이 왔대요. ‘병원비를 부담하는 일 등 아버지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방법을 알려달라’는 글이었어요. 그리고선 얼마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후속글이 올라왔어요. 무연고 사망으로 장례절차는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서 사람들이 ‘다행이다’라는 댓글을 달더라고요.

학선: 정치인들의 논리로 따지면 ‘자기 돈 아까워서’라고 해석될 수 있는 사례지만 사실 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지킨 거라고 보여지거든요.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사람,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부채 등 각자의 사정이 있는데 그걸 비난할 수 있을까요?

경진: 비난보다는 ‘예산에 한계가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정도로 읽혀지긴 해요. 지금도 대구시 전체에서 150명 정도밖에 지원을 못 해요. 구군마다 할당량을 나누거든요. 서구에 30명, 동구에 30명 이런 식으로요. 만약 서구에서 지원분이 꽉 차면 연말에 ‘더 이상 지원이 어렵다’고 해요.

#돌봄, 개인과 국가의 역할

수현: 최근 EBS 지식채널e에서 93세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지극정성한 손녀의 이야기를 방영한 적 있어요. 손녀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올려왔거든요. 반응이 좋으니까 지식채널e에서 이 사례를 다룬 거죠. 그런데 일각에선 ‘개인에게 돌봄이 전가된 걸 왜 공영방송이 좋은 사례로 다루냐’는 비판도 나왔어요.

학선: 그런 문제의식과 관점을 갖고 만들어진 단체가 지역마다 있는 사회서비스원이잖아요.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요양보호사 같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서 이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는 동시에 돌봄의 질을 높이겠다는 건데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취임 후 계속해서 예산을 줄여나간다고 들었어요. 대구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아요. 전염병 확산, 고령화 가속화, 성장이 멈춘 이 시기에 공공이 돌봄을 등한시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돼요.

경진: 복지의 범위를 두고 어디까지가 국가의 책임이냐는 건 오래된 논쟁이잖아요. 유럽식 복지 모델도 있고 한국형 모델도 있는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사회복지 지출을 줄이는 추세로 보여요. 특히 우리나라는 사회복지 지출이 OECD 회원국 중 거의 꼴찌 수준이거든요. 구체적인 사례로 들면 노령 연금, 요양 서비스 같은 걸 유지한 동력이 부족한 거죠.

▲유경진

영태: 부모님이 보험 가입을 알아보고 계시는데, 요즘 보험사들은 요양 사업을 다양하게 하더라고요. 국가가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운영하지만 고령화에 따라 각자의 욕구가 달라지는 거죠. 장기요양보험으로 요양원은 갈 수 있는데, 요양병원이나 가족돌봄까지 대비할 수 없으니 주변에서 민간보험을 많이 알아봐요. 보수정당에선 민간보험을 활성화하자 하고, 진보정당에선 국가 책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죠.

학선: 똑같이 아프더라도 돈이 있으면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는 좋은 요양병원에 갈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네요. 안 그래도 소득격차에 따라 민간보험 비용 지출 차이도 크다고 하잖아요. 국민건강보험 제도에 비급여도 많고 보장이 안 되는 암 종류도 많으니 불안해서 민간보험을 종류별로 넣게 되는데, 거기에 요양병원 보험까지 넣으라는 걸까요. 저임금 노동자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경진: 장기요양 등급을 받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알고 있어요. 그 등급이 나오면 요양원에 갈 수 있는데요. 제가 의료 쪽이 약해서 의료 상담은 잘 하지 않는데, 장기요양등급 심사가 이뤄지는 과정을 들어보면 ‘일상생활이 가능한가, 빨래를 할 수 있는가, 얼굴을 씻을 수 있는가, 엉덩이를 뗄 수 있는가’ 같은 걸 물어본대요.

보현: 아픈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돌봄노동을 해야 하잖아요. 간병인을 쓰면 달에 200~300만 원이 들어가죠. 가족이 일을 쉬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간병인을 써야 하는 건데… 실제 개개인의 삶에서, 가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지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면 국가의 공백이 많다고 느껴져요. 올해 진행한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은 대상이 겨우 전국 20개 요양병원, 1,200명 환자더라고요. 그마저도 내년에는 예산이 삭감될 분위기고요. 간병살인이라는 용어도 이젠 익숙해지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아요.

학선: 친형이 집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어요. 지금도 거의 집에만 있거든요. 감당이 안 되니 가족이 다 같이 힘들었죠. 아버지가 형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보내기도 했어요. 형은 그걸 원망하지만 전 아버지도 선택지가 없었던 거라고 봐요. ‘여기까지 오기 전에 지자체나 행정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나 전문가를 배치해 치료나 상담을 지원해 줬으면 달랐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좀 더 밀착된 복지 지원을 받았다면 지금보단 덜 불행하지 않았을까. 불평등을 있는 그대로 때려 맞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죠.

#돌봄을 둘러싼 고정관념

명은: 국가가 생각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정상가족을 기본값으로 설정해놨기 때문에 저출생도 심화하는 것 아닐까요. 정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정상가족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보는데. 제가 봤을 땐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돌봄의 어려움, 가족 해체와 개인화 등 부정적 요소를 줄이는 게 국가 입장에서 더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할 것 같거든요. 만약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돌봄을 하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면 국가의 노동력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고요.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면 출생률 상승은 부수적 요인으로 따라올 텐데, 결정권자들의 사고가 너무 갇혀 있어요.

▲이명은

영태: 돌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라고 봐요. ‘가족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잖아요. 요양원에서의 학대가 왕왕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요. ‘죽으러 들어간다’는 생각이 노인들 사이에 있는 것도 같고요.

경진: 저희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일하셔서 잘 알아요. 가족의 관심도에도 소득 수준별 차이가 있거든요. 시간과 자산이 있는 사람은 가족이 요양원에 있으면 자주 찾아와서 확인해요. 그렇지 못한 사람도 분명 있겠죠. 어쨌든 온전히 개인에게 맡길 순 없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늘어나야 해요.

수현: 치매 아버지를 9년 동안 돌본 조기현 씨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본 적 있어요. 부제가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이에요. 그 책에서 ‘나는 아빠를 가족으로서, 부모 자식의 관계로서 돌본 게 아니라 같은 시민으로서 돌봤다’고 하거든요. ‘내가 효자라 아빠를 돌본 게 아니라 아빠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돌본 것’이라는 거죠. 이런 관점이 더 확산해야 할 것 같아요. 돌봄증명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인상 깊었고요. 저도 코로나19 시기에 할머니가 폐암 말기로 병원에 계셔서 간호를 한 적 있어요. 그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효손’이거든요. 내가 효손이 되고 싶어서 할머니를 돌 본 게 아니라 나 말곤 아무도 돌 볼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경진: 가족이 돌봐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국가의 역할이나 책임이 적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요양원이 더 필요해, 요양보호사를 더 채용해야 해’라고 하면 ‘가족들이 하면 되잖아. 며느리 집안일만 하고 노는데 뭐하노’라고들 하죠.

학선: 가족이 돌보면 안전하냐, 그것도 아니에요. 가족 학대 사례도 많잖아요. 오히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죠.

경진: 사회는 변해요. 조선시대처럼 효를 중시하지 않고 30~40년처럼 대가족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이 책임지기 어려운 물리적 환경이 너무 빠르게 조성됐어요. 최소한 3대가 같이 살아서, 며느리 3명이 있어서 부모를 부양한다면 요일별로 나눠서 책임진다거나 하는 수가 있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죠. 부모 세대를 보면 형제가 지금보다는 많은데도 부모가 아프면 서로 ‘돈 없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요. 물론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세대는 형제가 많아야 2~3명이니 그때보단 여건이 어려워진 거죠. 저출생과 1인가구 증가 여파는 나이 든 우리 세대가 때려 맞을 거고요. 가족구성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공공의 돌봄서비스는 과거에 머물러있는 게 가장 큰 문제 같아요.

영태: 돌봄하는 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고 좋은 대우를 해줘야 해요. 돌봄이 매력적인 일자리여야 하는 거죠.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잖아요. 주로 중년 여성들이 종사하고요.

수현: 돌봄노동에 남성들이 더 많이 유입돼야 해요. 솔직히 힘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보현: 여성보단 남성이 돌봄에, 특히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 약하죠.

경진: 매우 동의합니다. 제가 50대 이상 남성 전문가거든요. 돌봄의 소중함을 모르는 50대 남성들, 지금의 정책 입안자들이 포함되겠죠. 집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음식물 쓰레기를 안 버리는 이들이 돌봄 정책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돌봄, 청소 같은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측면도 분명 생각합니다.

#부고문자가 갖는 의미

보현: 저는 부고 문자를 받으면 누가 보냈는지 꼭 확인해요. ‘알음알음’에 맡겨두는 거잖아요.

영태: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의 주변에 보내면, 그 주변에서 또 주변에 보내는 식으로 퍼뜨리는 형태니까 알음알음이 맞죠.

경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해봐서 아는데, 가족이 꼭 와야 할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면, 그들이 그룹‧공동체마다 코어가 되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거기서부터 또 연락이 퍼지더라고요. 정해진 건 없죠.

명은: 제주에는 부고나 결혼 같은 경조사 소식이 올라오는 채널이 따로 있어요. 지역민 간 유대가 끈끈해서 가능한 것 같더라고요.

보현: 공영장례 제도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부산반빈곤센터 활동가 자문을 받았어요. 대구는 아직 도입이 안 됐지만 부산은 무연고 사망자의 부고 알림이 올라오는 홈페이지가 있더라고요. ‘좋은 사례, 활동의 성과 아니냐’고 물었더니 ‘일반적으로 부고 알림이라 하면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오는 형태를 말한다. 자동으로 문자가 가거나 별도 채널을 운영하는 등 더 적극적인 알림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답하시더라고요. 사실 처음 들었을 땐 그렇게까지 공공에 요구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가까운 이의 부고 알림을 듣지 못해서 장례식에 가지 못한 사례들을 접했고, 부고알림이란 뭔가,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고민이 됐어요.

경진: 저나, 제 주변만 봐도 커뮤니티 바운더리가 가족보단 친구, 동아리 등 속한 공동체 중심인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내 죽음을 관장하는 사람은 가족이잖아요. 만약 내가 죽는다면 죽기 직전 내게 중요한 커뮤니티에 연락이 안 갈 수도 있죠. 가족이 놓쳐서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등등의 이유로요.

학선: 처음 우리가 무연고와 연고의 정의를 얘기했잖아요. ‘연고가 없는 사망자’보다는 ‘연고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망자’가 무연고 사망자의 정확한 설명일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숨겨진, 없다고 여겨지는 연고자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고 부고 알림도 그런 측면에서 공공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경진: 반대 논리도 있어요. 개인정보 문제가 있거든요. 빚이 있거나 여러 이유로 자기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을 수 있잖아요. 제일 좋은 건 미리 준비하는 거죠. 이것도 사실 자신과 시간적 여유에 따라 달라질 텐데. 미리 의사나 연락 범위를 받아놓는 과정이 있다면 좋겠네요.

학선: 계속 드는 생각은 우리가 죽음이란 걸 진지하게, 미리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젊어선 물론이고 요양원에 가서까지 막연히 ‘언젠가 죽겠지’라고 생각할 뿐, 실제 구체적으로 준비하거나 생각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 분위기 같아요.

영태: 요새 책이나 영상을 통해 생전 장례식 하는 모습을 봐요. 시한부 판정 받은 분들이 미리 장례식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던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마지막 인사도 하는 시간을 갖는 거죠.

▲조영태

#존엄한 죽음을 위한 과제

보현: 마지막 질문입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과제’라는 무거운 제목을 달아봤어요. 내내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만큼 장례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면 좋겠어요.

수현: 장례식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회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장례 문화는 그런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조문해서 인사를 나누고 부의금을 전달하고 예의를 차리는 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영태: 덧붙이자면 장례식은 죽은 사람보단 살아 있는 가족, 지인을 위한 자리 같기도 해요. 조문객의 역할 중 하나가 유족을 위로하는 거잖아요. 해외 영화를 보면 묘지에 꽃을 놓고 고인을 추모하면서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나요? 제 경험에선 없었어요.

학선: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 같아요. 결혼식에선 영상도 틀고 직접 고른 음악도 틀잖아요. 한 달 전이나 일 년, 혹은 더 미리 죽음과 장례식을 준비한다면 어떨까요. 갑작스러운 죽음도 있으니까요.

경진: 개인 차원에선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죠. 그런데 정부나 지자체의 역할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물론 공공 영역의 역할이 크지만 그보단 ‘물밑에서의 기반, 개개인의 모임이나 공동체가 먼저 단단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요샌 합니다.

수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생각이 나네요. 저랑 엄마가 가장 돌봄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조문객들은 아빠나 아빠 형제들, 그러니까 할머니 자식들에게만 ‘고생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린 위로를 못 받아서 화가 나 있었죠. 전 할머니 영정사진을 들고 싶은데 남자가 아니라 들지 못했죠. 그런데 싸우기 싫더라고요. 싸울 수야 있지만 ‘할머니가 과연 좋아했을까, 할머니도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는데’ 싶어서 관뒀죠.

오늘 모임을 준비하면서 엄마한테 ‘장례식이 어땠으면 좋겠어?’라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장례식장 업체가 아니라 집에서 하면 어떨까. 그런데 음식을 내가 다 해야 되겠네. 말자.” 같이 빵 터졌죠.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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