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학교급식노동자 최소 11명 폐암 확진···예방책 마련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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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앞둔 23년 차 대구 학교급식실 조리실무원 A 씨는 지난 17일 ‘폐암 매우 의심’ 판정을 받았다. A 씨가 확진을 받는다면 대구교육청 소속 학교 급식노동자 중 12번째 폐암 확진 사례가 된다. A 씨는 27일 경북대병원에서 추가 조직검사를 받은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A 씨처럼 폐암 의심 소견을 받는 학교급식노동자 사례가 꾸준히 확인되고 있지만, 정작 일터에서는 추가적 산재 발생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이어지지 않는다면서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산재 예방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28일 오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 대구지부는 대구교육청에 실효성 있는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예방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비노조는 폐암 산재 예방을 위해서 조리실무원 충원, 배치기준 하향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구교육청은 “9개 특광역시 교육청 중에서 조리종사자 1인당 급식인원이 낮은 편”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학교 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교육부는 2022년부터 매년 폐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도 1월부터 10월까지 폐 CT 검진을 진행하며, A 씨도 이 검진을 통해 ‘매우 의심’ 판정을 받았다. 2023년까지 교육부 전수조사 결과 대구 학교 급식노동자의 36%(1,157명)가 이상소견 판정을 받았다. 폐암 ‘확진’은 최소 8명, ‘의심’이 22명, ‘매우 의심’이 2명이다.

▲학비노조 대구지부가 대구교육청으로부터 받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폐 CT 검진 결과 (표=학비노조 대구지부)

노조가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31일 기준 대구에서 지금까지 폐암을 진단 받은 10명의 학교 급식노동자가 폐암 산재 신청을 했으며 이 중 8명이 승인, 2명이 불승인됐다. 노조는 이 자료에 아직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1명을 더해 현재까지 대구 학교급식노동자 중 최소 11명이 폐암 확진 판정을 받은 걸로 파악하고 있다.

▲28일 오전 10시, 학비노조 대구지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교육청에 실효성 있는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예방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급식노동자 폐암 사례가 재차 확인되고 있지만, 노조와 교육청은 ‘배치기준’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은 배치기준에 포함하는 조리종사자에 조리사를 포함하고 있지만, 노조는 조리사를 포함하지 않고 조리실무원 만으로 배치기준을 따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학교 급식실에는 영양사와 조리사 각 1명, 그리고 조리실무원이 배치된다. 조리실무원은 급식인원에 따라 배치되는데 급식인원당 조리실무원 기준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특‧각종학교에 따라 다르다. 현재 대구 학교급식실 배치기준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급식인원 160명을 넘기면 조리실무원 1명 추가 증원, 중·고·특·각종학교는 140명을 넘기면 1명 추가 증원하고 있다.

교육부 및 모든 시도교육청은 전체 급식인원을 조리사와 조리실무원 수를 더한 ‘조리종사자’ 수로 나눈 평균 값을 통계지표로 사용한다. 이 기준에 따라 대구교육청은 “대구 조리종사자 1인당 급식인원은 97명으로, 8개 특광역시 교육청 중 세종시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고 말한다.

▲2024년 대구 학교급식실 조리종사자 배치기준 (표=학비노조 대구지부)

학비노조는 이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조리사를 포함해 통계를 내면서 1인당 급식인원을 낮춘다는 지적이다. 조리사는 조리실무원과 구분되는 별도의 고유 업무가 있고,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다. 통상 조리 과정에 1인분 몫을 하지 못하고, 청소 업무에서도 빠진다. 따라서 학비노조는 배치기준을 따질 때 조리사를 제외한 조리실무원만으로 계산해야 하고, 그에 맞춰 배치기준을 하향 조정해야 폐암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업무강도를 낮추는 것과 동시에 조리흄, 화학약품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는 등 전반적인 업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비노조 대구지부는 대구교육청에 ▲조리실무원을 최소 2명은 배치하도록 조정(현재 유치원은 급식인원 160명까지 조리실무원 1명 배정, 나머지 학교는 100명까지 1명 배정) ▲유치원 배치기준을 초등학교와 동일하게 조정 ▲초등학교는 급식인원 120명에 1명, 중고등학교는 110명에 1명 증원하도록 조정 ▲3식고·특수고는 별도로 배치기준 조정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대구교육청은 지난해 노조 의견은 무시한 채, 400개 넘는 학교에 고작 38명의 인력을 충원했다. 올해는 단 한 명도 충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내년에도 배치기준을 하향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배식, 청소 업무를 경감시키는 데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 1,000여 명의 코로나 방역 인력은 작년 2학기에 모조리 빼버렸다. 병가조차 쓰지 못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대구교육청은 모든 교육청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통계지표이므로 대구만 별도로 운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자회견 후 대구교육청은 설명자료를 통해 “조리종사자의 업무 경감을 위해 조정을 검토 중이다. 학교급식방역 전담인력은 애초 한시적 사업이었기 때문에 중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