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저널리즘스쿨] 재난은 문자와 함께 시작된다, 재난 뒤에 숨겨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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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경북협의회, 성서공동체FM, 시청자미디어재단 대구시청자미디어센터와 함께 7월 6일부터 8월 23일까지 ‘2024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을 진행했습니다. ‘숨은 노동 찾기’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저널리즘 스쿨에서는 15명의 청년들이 5팀을 꾸려 지역 문제를 탐색해 취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최우수상은 김가현, 심영민, 장세인의 <생계 절벽 앞에 선 대구경북 우체국 위탁 택배원>, 우수상은 이하준, 장은영, 최윤정의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합니꺼, 해야지요.” 대구 정화조 청소 업계의 나날>이 선정됐습니다. 아쉽게 수상작에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김도윤, 박유경, 안수빈의 <보이지 않는 헌신, 장애 통합반 보육교사의 현실과 과제>, 김나빈, 김현정, 유소희의 <재난은 문자와 함께 시작된다, 재난 뒤에 숨겨진 노동>, 김가은, 김혜림, 정세은의 <포항 바다를 가꾸는 사람들>도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해법 모색을 위해 노력한 보도입니다. 뉴스민은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을 통해 제작한 결과물을 제출본 그대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바야흐로 재난 일상화 시대다.

재난은 본래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을 뜻한다. 다소 수동적인 입장이 내포되어 있는 정의다. 그러나 전 세계가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전염병의 대유행과 각종 사회적 재난을 동시다발적으로 겪으며 재난은 더 이상 ‘뜻밖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게 됐다. 우리는 모두 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고, 언제 다시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이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재난 예보 중에서도 재난문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안착한 기초 대응이다. 이제 재난은 문자와 함께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확히는 그 문자를 보내는 ‘사람’에게서. 이 기사는 재난문자가 어떻게 우리에게 도달하는지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무엇보다 그 문자를 우리에게 발송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속·정확한 예보와 안내를 위해 촌각을 다투고 있을 숨겨진 노동자들에 대한 헌사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기사 작성을 위해 관할 구역의 재난 상황관리와 긴급재난문자 발송을 맡은 5명의 담당자와 코로나 역학조사를 경험한 K 씨를 인터뷰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담당자의 관할구역은 밝히지 않았고, 이니셜을 사용해 호명했다.

▲ 행정안전부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 [별표2] (2023)

재난문자가 우리의 일상이 되기까지

재난문자는 2004년 12월, 소방청에서 최초로 시범 사용됐다. 이듬해부터는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그 과정에서 재난의 경중에 따라 문자의 종류가 세 가지로 나뉘다.

▲ 행정안전부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 [별표1] (2023)

위급재난문자와 긴급재난문자, 안전안내문자는 표와 같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주로 받아보는 재난문자는 ‘안전안내문자’에 해당한다. 긴급재난문자와 안전안내문자는 개인 핸드폰 단말기 설정을 통해 수신거부 처리를 할 수 있지만, 위급재난문자는 수신거부가 불가능하다. 일상에서는 용어의 구분 없이 ‘재난문자’로 통용되고 있다.

재난문자는 도입 직후부터 최근까지 이용률이 높지 않다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그 중요성과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확진자를 엄격하게 격리했던 초반에는 특히 재난문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전에 없던 재난 상황이었으므로 그 누구도 그 일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2020년 보건소 감염팀에서 근무하고 있던 보건공무원 K씨는 “하루에 10년씩 늙은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문자와 전화로 확진자를 격리시키고 밀접접촉자에게 검사를 안내하는 일을 했다.

문자 한 줄을 보내기 위해, 가장 먼저 K 씨는 질병청 시스템에 업데이트된 확진자의 동선을 인터뷰해야 했다. 인터뷰 내용은 엑셀에 수기로 작성했다. 카드결제정보를 요청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정보를 요청하고 승인받아 전달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감염전파속도에 비하면 현저하게 느렸다. K 씨는 촘촘하고 체계적인 자동화 시스템이 일상 전반에 마련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이 직접 뛰어다니게 되는 것이 ‘재난’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고령자의 경우는 인터뷰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죠. 개인 신상 정보, 동선 정보, 같이 사는 가족들의 정보, 밥 먹은 사람, 차 마신 사람들까지 다 여쭤봐야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전화번호를 뒤져서 그걸 또 저한테 말씀 주시기가… 아파 죽겠는데 이것저것 대답하기가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전화를 차단하기도 하시고, 욕도 하시고.”

그녀는 시기에 따라 하루에 적게는 5명, 많게는 50명까지 대중없는 숫자의 확진자를 인터뷰했다. 확진자가 방문한 장소가 모두 파악된 다음에는 해당 장소에 전화를 돌려 ‘언제 결제한 어떤 손님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손님이 어디쯤 앉았다던데, 앉았던 곳을 비추는 CCTV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전달받은 CCTV를 보고 밀접접촉한 사람들을 체크한 다음에는 해당 시간대의 카드결제내역을 다시 부탁해야 했다. 밀접접촉자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파악한 다음에야 안내 업무가 이어졌다.

“코로나의 경우 확진자 A 씨와 밀접 접촉한 특정 소수에게 문자나 전화 안내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직접 전화번호치고, 내용치고, 보내기 누르고, 일반인들이 단체문자 보내듯이 그렇게 문자를 보냈죠. 문구도 대략적인 틀 안에서 담당자 개인이 상황에 맞게 작문해야 했고요.”

코로나를 함께 겪어온 우리는 그녀의 문자가 얼마나 신속하게 우리에게 도달했는지 기억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심 감탄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 K 씨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고, 수많은 밤을 사무실에서 울면서 보냈다. 코로나가 더 이상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에서야 질병청이 공통내용을 일괄 안내할 수 있는 문자시스템을 개발했다.

우리는 왜 재난문자를 신뢰하지 못하나

▲ (위)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재난문자, 국민 생활에 맞게 송출기준 개선한다’ (2023), (아래) 재난문자방송 송출의 중요도와 만족도에 관한 실증분석 연구_도시행정학보 제35집 4호 (2022)

코로나를 겪는 동안 재난문자 송출은 연평균 약 131배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자연스레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도가 높아졌고, 불만사항도 많아졌다. 시민들의 불만은 “비슷한 문자를 왜 이렇게 많이 보내느냐”는 말로 요약됐다. 실제로 2022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긴급재난문자는 가장 많은 빈도로 발송된 재난 예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조사에서 시민들은 SNS를 가장 신뢰하는 것으로 드러났고(55.3%), 긴급재난문자는 SNS에 비해 약 40%가량 신뢰도가 떨어졌다.(19.8%) 공공매체가 제공하는 정보가 SNS의 정보보다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행전안전부(이하 행안부)가 2023년 5월 국민 정서를 고려해 재난문자의 송출기준을 개선했다. 지역은 구체적으로, 내용은 명확하게, 단순 안내는 지양하는 것이 그 골자다. 과연 국민들은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까.

지난 7월 10일 수요일 오전 6시, 대구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 당일 하루 동안 취재진이 받은 안전안내문자는 총 12개였다.

▲취재진이 받은 문자

여러 공공기관에서 호우와 관련된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산림청은 호우로 인한 산사태 위험을 경고했고, 행안부는 대피 권고를 받을 경우 즉시 대피하라는 안내를 했다. 같은 날 대구광역시는 침수상황에 대한 공유를, 낙동강홍수통제소는 침수우려지역을 확인할 수 있는 링크를 첨부했다. 각 구청에서는 관내의 통제구간, 위험구간을 동 단위로 특정해 안내 문자를 보냈다. 행정관할상 같은 구로 분류되지 않더라도 생활권을 공유하는 밀접 지역에도 같은 문자가 발송됐다.

재난문자시스템 CBS(Cell Broadcasting Service)은 ‘단체문자’가 아니라 ‘방송’의 개념이기 때문에, 기지국에 신호가 잡힐 경우 나와 다소 상관없는 재난문자를 수신하게 될 수도 있다. 지역을 이동했을 때 그 지역의 재난문자를 곧장 받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물론 시나 유관기관에서 먼저 재난문자를 보낸 경우, 구청이 동일한 내용으로 문자를 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세내용을 추가적으로 안내하거나, 다른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면 재량껏 발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과도하게 느껴지는 재난문자를 수신거부 설정을 해 놓는 시민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정작 꼭 필요한 문자는 받아보지 못하게 됐다. 광범위한 재난 예보를 담당하고 있는 TV뉴스·라디오에 비해 지역과 개인에게 일종의 맞춤형 재난 예보를 제공하는 긴급재난문자의 역할이 점점 흐려진 것이다. 화살은 결국 노동자에게로 돌아갔다.

7월 10일 취재진에게 문자를 보냈던 C 주무관은 “보내는 사람도 시민들의 피로함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자 발송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민원도 많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행안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문자를 성실하게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C 주무관은 “문자를 보내지 않아서 재난으로 인한 2차 사고가 이어지는 것보다는 문자를 보내서 한 사람이라도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원을 넣는 시민은 1명이지만, 문자를 보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거라는 마음이 성난 목소리로부터 그를 버티게 했다.

B 주무관은 호우주의보로 인해 3일 내내 밤을 새다. 예민한 상황에 고질적인 인력부족으로 피로가 밀려왔지만, 그보다 B 주무관을 더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이후 빗발칠 민원이었다.

“얼마 전에 강이 범람한 건에 대해서도, 문자발송이 늦었다는 매스컴 보도가 있었어요. 자칫 누가 다치거나 인명사고가 있으면 비교도 안 되는 질타를 받긴 하지만요. 징계도 받고. 너무 결과만 보고 지적받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해요. 평소 노력에 대해서 좀 알아주셨으면 싶어요. 나름대로는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최대한 빠르게 대응하려고 했는데, 너무 갑자기 한 번에 발생한 상황을 완벽하게 감당하기는 정말 힘들거든요.”

예보로서 재난문자의 신뢰 회복은 다가올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사항이다. 언급한 대로 광범위한 재난예보인 TV뉴스·라디오에 비해 재난문자는 지역과 개개인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라는 단어의 진실
노동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 효율이 관건

재난문자가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 사용되는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다. 재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와 실제로 문자를 발송하는 CBS(Cell Broadcasting Service)가 그것이다. 두 시스템 모두 행안부가 운영하고 있다.

“굉장히 막막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재난이 터지니까 적응이 어렵더라고요.”

NDMS에 재난 신고가 뜨면 P 주무관은 마음부터 바빠진다고 말했다. 도시에서는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과 소방, 관련된 여러 과가 한꺼번에 업무를 시작한다. 산사태가 교통마비로, 교통마비가 교통사고로, 교통사고가 가스누출과 폭발로 이어지는 식이다. 담당자는 유관기관의 신고내용이 확인되면 폐쇄 CCTV 모니터링을 통해 구체적 재난 상황을 파악한다. 재난이 모두 정리될 때까지 담당자는 출퇴근의 구분 없이 비상대기 상태로 근무하다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문자를 발송한다. 재난 신고부터 문자 발송까지는 보통 5분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문자의 발송은 CBS로 이루어진다. 문자를 발송할 때는 행안부가 마련한 발송기준과 표준문안을 따라야 한다. 국가 중앙부처 또한 사용기관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 시민 개개인의 대응 및 대비 행위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재난문자는 지역에 소재한 유관기관들과 지방자치단체가 사용기관으로써 주도적으로 역할하고 있다.

P 주무관의 사수였던 민주노총 공무원노조 김현태 수성구 지부장은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행정복지센터, 협업기관과의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급박한 재난상황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통장님이 시스템보다 빠른 경우가 많거든요. CCTV보다 정확하시고요. 어디에 금이 갔다, 어디에 물이 넘칠 것 같다는 신고부터 대비, 초동대처가 이분들과의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또 훨씬 효율적입니다. 저희가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 통장님이 마을 방송 한번 하시는 게 또 잘 먹혀요. 그래서 항상 단톡방을 운영하고 정보를 교환하죠.”

“시스템은 사실 되게 모호한 말이에요. 시스템이 버튼 하나 누르면 결과물이 자동으로 뿅 나오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걸 굴리는 건 다 인간이잖아요. 저는 결국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느냐를 설계하는 것이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스템은 설계가 99%라고 보고요.”

시스템의 운용은 결국 개개인의 노동으로 귀결됐다. 결국 재난신고를 알아차리는 것도, 내용을 확인해 문구를 작성하는 것도, 지역을 설정해 문자 발송을 클릭하고 재난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밤을 새는 것도, 노동자였다.

전문가 없는 노동, 잘해도 티 나지 않는 노동

재난문자 발송업무는 문자를 쓰고 보내는 단순 업무가 아니다. 재난문자는 지역 내의 다양한 재난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상세한 안내를 했을 때 제대로 된 효용가치가 있다. 하지만 공무원은 주기적인 인사이동으로 인해 해당 업무를 보다 전문적으로 익혀 숙련도를 높이기가 어렵다. 애초에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이 필요한 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저만 해도 동기가 3명뿐입니다. 대구 전체에 고정적으로 재난업무를 볼 수 있는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은 몇 명 없습니다. 결국 재난을 충분히 대비하고 또 빠르게 대응하려면 전문인력충원이 가장 필요하니…전국적으로 안전방재직렬이 좀 많이 배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대구시 기초지자체 기준 재난문자 발송업무 담당자 경력은 평균적 3년으로 계산된다. 해당 업무를 전담하기 위해 2013년 신설된 안전방재직렬의 경우 채용인원도 매우 적고, 불합리한 처우와 민원에 선호도는 낮고 퇴사율은 높다.

”안전방재직렬같은 소수직렬은 승진도 어렵고, 잘할수록 티가 안 나서 성과나 능력을 인정받기도 힘이 듭니다. 재난이 없으면 예방을 잘했다고 칭찬받는 게 아니라 일한 것이 없다고 오히려 욕먹기 일쑤라, 그게 아이러니 한 지점이에요. 인원도 늘고, 전반적인 처우도 좀 개선되면 좋겠습니다.”

▲ <재난안전관리 인력의 전문성 강화방안 연구 : 중앙부처 및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2020)

안전방재직렬로 근무하고 있는 P 주무관과 달리, B 주무관은 타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3년 전 안전총괄과에 발령받았다.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교육과정이 있기는 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시나 행안부에서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온·오프라인 기본 교육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업무파악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익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업무를 위한 교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P 주무관은 해가 갈수록 업무량이 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재난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그때마다 새로운 업무가 추가됐다.

“통상적으로 재난은 40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촛불 행진처럼 훨씬 더 많은 인파가 모였을 때도 우리는 인파로 인한 사고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태원에서 사회적 재난이 발생한 이후에 이제는 인파로 인한 재난이 새로운 유형으로 추가됐습니다.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무방비하던 일들에 대비가 필요해진 거요.”

물론, 업무가 추가되었다고 인력이 충원되지는 않았다. 재난상황에서 초기대응과 예보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에 비해 그 노동의 가치는 다소 평가 절하되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전국의 재난복구비용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지만, 2022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대구시의 경우 자연재난 복구비용이 전년도에 비해 근소하게나마 줄어들었다. 김현태 지부장은 “사실 그런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시민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무 일이 없고 평화롭다는 것은 담당 공무원들이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희 딴에 노력하는 건 항상 표가 안나요. 큰 재난이 발생하고, 누군가가 영웅처럼 나타나서 해결하면 그 사람은 영웅 취급받겠죠. 그런데 오랫동안 아무 일 없이 평화롭다고 해서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 그림자처럼 숨어있는 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주목받는 일은 없거든요. 한 번쯤 칭찬도 받고 싶은데 말이에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역의 이야기들
고민 없는 대구시…지자체별 개선과 인력 충원은 희귀사례

대구시는 재난안전예산 사전검토를 위해 최근 5년간 재난별 피해 파악 및 중점 투자방향 계획을 시행했다. 재난안전 예산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구체적인 계획 방향을 적시했지만, 재난문자에 있어서는 안전문화 홍보 차원으로 ‘재난문자 발송’이라는 문구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 방안 등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발송 외의 다른 논의 거리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은 부실한 계획이다.

이 외에도 대구시는 재난컨트롤타워로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2018년 우천으로 인한 컬러풀페스티벌 행사 종료 안내를 긴급재난문자로 진행하며 언론과 시민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구체적인 지자체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 대신 그때그때 공문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고, 자연재난보다 뒤따른 사회재난으로 인한 부차적 피해가 더 큰 지역의 재난상황 특성에 맞는 표준규정과 문구, 실태조사, 연구도 미비하다.

반면 동구의 경우, 금호강의 범람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홍수피해가 예상되는 시민들의 비상연락망을 마련했다. NDMS를 통해 홍수의 위험이 감지되면 동구청은 자체 문자시스템을 통해 비상연락망 내의 시민에게 문자를 발송한다. 소외계층을 위한 TTS 서비스 또한 시행했다. 동구청의 이런 세부적인 개선은 매우 드문 사례다. 조달청을 통한 자체시스템 구축은 필수가 아니고, 일반 문자서비스에 비해 TTS 서비스는 발송 비용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수성구는 9월 1일을 기점으로 24시간 운영되는 종합재난상황실을 운영한다. 상황실에는 총 4명의 신규인력이 배치된다. 현재 담당자 혼자 맡고 있던 재난문자 발송업무와 재난상황 관리 업무를 4명이 나누어 24시간 진행하게 되며 좀 더 체계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대안이 있어야 하나

재난문자 시스템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됐다. 너무 과도하게 보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전문적인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되어야 할 것은 예산이다. 다행히 경제적으로도 긴급재난문자를 ‘잘’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충분한 예산편성을 요구하는 것이 민망하지는 않다. 한국재정학회에서 연구한 ‘긴급재난문자의 경제적분석’(2022)에 따르면 재난문자 1회 송출 당 피해복구비가 약 1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으로는 약 2,700억 원의 재해 피해복구비가 감소하는 셈이다.

사단법인 ‘위기관리 이론과 실천’은 2020년 발간한 한국위기관리 논집에 재난유형별 재난문자 발송의 적절성에 관한 연구를 실었다. 다양한 재난에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떤 긴급재난문자를 적절하다고 여기는지에 대한 분석은 재난 유형별로 문자의 차이를 두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시사한다. 2024년, 한국환경과학회 또한 긴급재난문자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규명하며 긴급재난문자의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한국환경과학회는 ‘신속함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시급성과 위급성을 판단해 발송 횟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세대·연령·성별 등의 개별적 특성에 맞춘 송출기준과 내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NDMS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훈련된 전문가가 필요하다. CBS의 업그레이드 또한 필요하다. 지역 및 구간, 시간, 재난발생 현장의 직·간접영향권을 상세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뾰족한 수가 없는 ‘개별적 특성에 맞춘 송출기준과 방송 수단’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정부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과 연구소, 이동통신사 기업이 모두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시스템에 적용시켜가며 피드백을 받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 부처에서 다양하게 진행되는 재난문자에 대한 개선 연구가 실질적인 업무 시스템에 구축이 되고, 시스템 사용자인 공공기관, 지역 지자체 기관들에게 안내, 교육돼 피드백을 주고받는 상생구조는 이제 필수적이다. 그로 인한 실효성 높은 재난문자가 시민들에게 발송된다면, 비로소 재난문자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평화로운 것은 어느 누군가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한 번씩 떠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재난의 특성상 것이, 100번 잘하다가 1번 잘못하면 큰일 나는 업무라 그동안 잘해왔던 것에 대한 인정이 매우 박한 업무입니다. 적은 인원, 한정적인 예산 안에서 업무를 보기가 참 힘들거든요. 그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로 너무 큰 지탄을 받으면 참 속상합니다. 저희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고, 공무를 보고 있지만 슈퍼히어로는 아니지 않습니까. 재난상황에서 공무원이니 빨리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지나치게 비난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참 공무원의 옷이 무겁구나 생각됩니다. 여기 주무관님은 아예 안전방재직렬로 들어오셨지만 웬만한 담당자들은 그냥 다 발령받아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거든요.”

K 씨는 코로나 시절, 수많은 문자의 홍수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꼭 받고 싶었던 문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 문자를 받는 순간을 기다리며 당시를 버텼다. ‘이제 코로나가 종식되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셔서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고 있는 다른 모든 담당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난상황을 종료하는 문자를 보내는 순간은 지친 국민들뿐만 아니라 이 일을 하는 당사자들도 위로했다.

재난은 문자로 끝난다.

해당 보도는 ‘2024 대구경북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의 취재 활동비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2024 대구경북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 참가자 김나빈, 김현정, 유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