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중 유산·자경단 횡행···이주민 차별·착취 넘어서려면?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서 이주활동가 선언 발표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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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이던 이주노동자가 단속으로 강제추방 된 이후 유산을 진단받은 일. 극우단체 활동가·유튜버가 조직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붙잡아 추방시킨 일. 지방 대학의 긴요한 연구 인력으로 초대되고도 그들의 문화는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된 경북대 이슬람 사원 무슬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 차별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는 이율배반적으로 이주민에게 도움도 구하고 있다.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 곳곳에서 ‘외국인 유치’에 목매고, 여러 제도 개선에 발 벗고 나선 풍경은 그래서 어색하다. 이주민 유입 없이 지속 가능한 미래 사회상을 그리기도 어려운 시기에 횡행하는 이주민 혐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이주민을 둘러싼 갈등을 조율해야 할 국가나 공동체가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갈등의 양상도 분화하고 있다. 대구경북 이주민 관련 활동가들은 이 다양한 갈등 양상에 주목하면서, 이주민의 효용가치만 뽑아 쓰는 사회가 아닌 이주민도 사람으로 여기는 사회가 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함께했다. 이들은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 이주활동가선언’을 통해 연대와 이주민 노동권 인권 실현 방안을 선언했다.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국가인권위, 대경이주인권대회 추진위 주최
육주원, “‘일상적 국경 만들기와 소속감의 정치’ 횡행” 

22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와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 추진위원회 주최로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가 열렸다. 대회에서는 육주원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기조 강연 ‘지자체 외국인 유치를 외치는 시대 미등록 이주자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진행됐다. 이어 김헌주 대경이주연대회의 대표, 박정민 민변 대구지부 변호사,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양선희 미등록이주민 건강권실현을위한 동행 대표가 토론에 나섰다.

▲22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와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 추진위원회 주최로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가 열렸다.

육 교수는 먼저 지역의 인구소멸 위기 실태를 분석하며 지역이 이주민 유입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맥락을 설명했다. 국가적으로 겪는 저출생·고령화의 문제를 출생률에 비춰보면, 지역의 문제가 아닌 수도권 집중화 문제다. 이에 따라서 지역 차원의 대응이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육 교수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 서울이 0.65%로 가장 낮은 반면 대구 0.81%, 경북 1.00% 등을 기록했다. 지자체 차원의 각종 정책에도 문제가 이어지자 결국 지역은 외국인 유치 정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지역의 이주민 유치 열기가 무색하게 우리 사회의 이주민 인권 현실이 뒤떨어진 점이 모순적인 상황이다.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 단속을 통해 이미 우리 사회에 적응해 살고 있는 이주민을 추방하면서 고용 한도를 확대하거나 비자 제도를 개정하는 방식으로 새로 이주민 유입을 확대하는 상황도 모순적이다.

육 교수는 “정부는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는 일자리에 이주노동자를 채우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는 인종주의적으로 차별화된 임금 체계 속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 갈등에 노동조합도 연루돼 ‘노노갈등’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육 교수는 국가가 ‘불법 단속’이라는 치안 중심 행정을 강화하면서, 불법을 양산하는 고용허가제와 같은 제도는 유지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불법성을 생산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육 교수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국가가 작동하지 않는 자리에 선주민 집단이 소위 ‘자경단’처럼 자리 잡고 활동하는 사례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 교수는 이 같은 최근의 경향을 ‘일상적 국경 만들기와 소속감의 정치’로 정의한다. 국가의 물리적 경계가 아닌, 국가 내부의 일상 사회에서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국경이 선주민 주도로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주민이 이주민을 상대로 일상적으로 국경을 세워 마치 출입국을 관리하듯 통치 권한을 행사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주민 집단은 ‘소속감의 정치’를 행사하게 된다.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상징적이다.

육 교수는 “공정성, 엄벌주의 담론이 점차 강하게 작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주민 권리를 말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여기서 국가는 더 교묘하게 이주민 관리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혐오에 기초한 소속감의 정치 확산에 대해 국가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미등록 이주민 문제는 구조적 피해자라는 논리로 파악했다. 물론 타당하지만 효과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며 “‘불법’, ‘역차별’과 같은 거대한 담론 속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갈등 현장에 주목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이주 노동 문제를 확장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동시에 ‘일상적 국경 만들기’의 일부인 국가의 부작위를 문제시하고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사회운동 내에서는 공정성 담론, 국민중심주의에 기초한 소속감의 정치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할지 고민하는 것도 큰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김헌주 대표는 이주노동자 권리를 배제한 현행 법체계 속에서 이주민 인권이 침해되거나 배제되는 현장 풍경을 소개했다. 제도의 결함으로 미등록이 된 이주민을 ‘불법’으로 낙인찍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정민 변호사는 난민신청자, 난민재신청자의 취업제한 제도에 따른 인권침해 현실과 개선 방안에 대해, 양선희 대표는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민 의료 현황과 국제수가 적용 제외 등 과제에 대해 설명했다.

서창호 활동가는 이주민을 직접 체포하고 추방하는 ‘자국민보호연대’ 등 단체의 세력화 경위와 배경에 대해 분석하며, 특히 국가기관이 이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이주활동가선언’을 밝혔다. 이들은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불안정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주노동자도 불안정한 노동자다. 민족, 고용 형태, 성별 등으로 나누어 위계화, 계층화시키고 결국 분열시키는 자본주의에 함께 맞서자.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주민과 손잡자”라고 밝혔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