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유토피아 없이 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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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인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아침이 밝아오도록 마돈나와 뒹구는 침실(이상화),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픈 금모래 반짝이는 강변(김소월), 눈이 푹푹 쌓이는 산골 마을(백석), 술 익는 마을(박목월), 외할머니의 손때 묻은 툇마루(서정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시인들이 그리워한 유토피아의 목록은 끝이 없다. 그러고 보면 한국 문학사만큼 비루한 것도 없다. 유토피아를 구걸하는 거지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태맹의 <유리에 가서 불탄다>(세계사, 1955)는 희귀한 시집이다. 표제작 ‘유리에 가서 불탄다’를 듬성듬성 읽어보자. “이제 유리에서 푸른 강의 은유는 끝났네 / […] / 우리 딱딱한 혀는 얼마나 오래 유리의 은유를 견디는지. / […] / 붉은 새 안간힘으로 둥근 유리의 시간 빠져나가네. / 그러나 여기 유리에서 외부는 없네. / 마른 북 울리며 늙은 소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 물 마른 강가 저녁 얼굴 가리고 / 부러진 나무 속에 갇혀 우리 불타네, 우우 / 유리에 가서 우리 불타네.” 시인은 이 시의 첫 줄에서 유토피아를 노래(은유)하는 일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유리(羑里)’는 주 문왕이 유배살이를 하면서 <주역(周易)>을 완성했다는 전설을 가진 곳이다. 이 지명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한국문학사,1975)에 다시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서 유리는 수도(修道) 같은 형벌, 형벌 같은 수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이다. 주 문왕의 전설에 기대든, 박상륭의 소설에 기대든 감옥을 연상시키는 유리에는 유토피아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유리는 유토피아와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그래서 ‘유토피아’ 아닌가?). 주 문왕 전설과 박상륭 소설에 나오는 유리 역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리는 특별한 인물만 조우할 수 있는 현실의 바깥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 시집의 첫 머리에 실은 시에서 “유리엔 우리가 살”(「유리에 가면」)고 있다고 말한다. 시인의 시에서 유리는 더 이상 현실 초월적인 곳이 아닌데, 우리는 이곳에서 어떤 꼴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내가 떡볶이 판을 뒤집었다 뜨거운 / 비명이 붉은 떡처럼 탄력 있게 모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 쓰러진 여자가 일어서 사내의 목을 물자 / 사내의 억센 손이 여자를 천장으로 천천히 던져 올렸다 / […] / 사흘 만에 사내는 다시 떡볶이판을 뒤엎었다 / 이번에는 여자가 끓는 기름에 스스로의 손을 집어넣었고 / 울며 뛰쳐나간 여자의 딸은 사철나무 아래 / 여왕개미처럼 사내의 알을 수북이 낳았다 / 천천히 돈을 챙겨가는 사내를 위해 여자는 국밥을 끓이며 / 잘 구워진 한 손 도마 위에 올려놓고 접시에 탁탁 썰어 담았다 / 이곳이 이곳에서 가장 멀구나 / 마늘과 고추 듬뿍 풀어넣으며 사내는 어쩔 수 없는 시대라고 / 말했다 다시 백일홍이 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TV만 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유리)은 막장 드라마다. “지긋지긋하다.” (‘매화를 읽다’·’선인장을 버리다’)

거지들의 시 문법에 따르면, 폭악한 현실에 대한 고발 아래에는 반드시 유토피아에의 열망이 들끓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금모래 반짝이는 강변이든 눈이 푹푹 쌓이는 산골 마을이든 뭐든 소박한 이상 세계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루종일 TV만 본다’ 뒤에 실려 있는, 앞의 시보다 더 끔찍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玄(현)을 說(설)하다’라는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玄이란 자연의 시작이며 만물의 근본이라.” 이 어둠에는 빛(유토피아)이 비치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 사이, 육체와 영혼 사이, 지상과 천상 사이 등등, 쉽게 동질화되지 않는 대극 사이의 거리는 아득히 멀다. 하지만 “여기 유리에서 외부는 없네”라고 말하는 시인은 그런 대극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루종일 TV만 본다’에도 나오고 ‘붉은 옷고름 풀리며 그대’에도 나왔듯이, 이곳에서 가장 먼 곳은 이곳이다. 일례를 들자면, 먼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가 아니다. 그보다 먼 것은 현실 속에 거하며, 현실을 이해하고 품는 것이다. 초월을 꿈꾸지 않고 현실을 부여잡고 불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