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이동노동자쉼터도 국가와 지자체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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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달성군의회가 주최한 이동노동자쉼터 관련 토론회에서 발제할 기회를 얻었다. 대구시가 3년째 이동노동자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던 참이다. 구·군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대구시 관계자, 구·군의원, 당사자 조직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모여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토론회를 시작으로 달성군의회는 조례 제정, 쉼터 시범운영까지 속도를 낼 예정이라고 했다.

▲13일 오후 ‘이동노동자 쉼터 설치 및 운영방안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경선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코웨이코디코닥지부 대경본부장, 정규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대구지부장, 현철관 배달플랫폼노조 대구지부장. (왼쪽부터) (사진=민주노총 대구본부)

발제를 준비하면서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동노동자도 ‘노동자’이므로 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건 시혜성이 아닌 의무와 책임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동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다양하게 범주화되는 이들의 권리는 이미 상당 부분 법망 안에 들어와 있다. 모빌리티 부문의 특고노동자는 대부분 산재·고용보험에 가입돼 있고,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선 이들에게 건당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원할 때만 일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라거나 ‘소속이 없기 때문에 회사는 책임이 없다’는 말도 사라지고 있다.

쉼터는 노동자의 안전과 직결된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는 것이나 화장실 사용 뿐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에겐 필수품인 휴대폰 배터리 충전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안전을 지킬 의무는 사업주에게 있다. 하지만 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건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이다. 심지어 노동자의 휴게공간에 대한 법은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작년 8월부터 상시근로자 20명 이상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가 의무화됐는데, 길 위가 사업장인 이들의 쉼터는 왜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영역으로 둬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노동자, 특고노동자,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겠다 나섰지만 노동계는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 여부를 따지지 않는 법은 한계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으려면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는 식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자체가 이동노동자쉼터를 대하는 태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노동약자를 대상으로 시혜성 정책을 펼치는 게 아닌, ‘노동자 보호를 위한 의무’라는 관점을 갖는다면 지금보단 적극적으로 쉼터를 운영할 것이다. 대구 전역에 겨우 2개, 그것도 고층이지만 비싼 임대료와 높은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다며 자기만족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말이다.

지방정부 노동정책은 대부분 중앙정부가 강조하는 정책이 수도권에서 구체화되고, 그 다음에야 전국으로 확산되는 식이다. 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업 규모가 결정되고, 다른 지자체 사례를 참고하는 과정에 내실 없는 보여주기식 접근을 하는 경우도 많다.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이 나오기도 어렵다.

대구의 경우, 플랫폼 노동자 중에도 생계비 대부분을 의존하는 ‘주업형’ 비율이 높고 그에 따라 노동시간이 수도권과 비교해 긴 편이다. 쉼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지만 지금의 대구시 정책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토론회에선 편의점‧무더위쉼터‧카페 등 기존 공간을 활용, 바우처 형태로 지급, QR코드를 통한 출입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이미 다른 지자체에서 시행되고 있는 내용이다. 의지만 있다면 각 사례에 따른 장단점을 분석해 시범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동노동자들은 이미 스스로를 노동자라 인식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산재보험에도 들었다. 쉼터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고, 이는 지자체의 당연한 역할임을 강조했다. 정규화 전국대리운전노조 대구지부장은 “쉼터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대구시에 여러차례 건의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제 대구시와 9개 구·군이 응답할 때이다. 여름을 나기가 매년 힘들어지고 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