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북적인 ‘박정희 광장’···한산한 대구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

주최 측, 대구시·국회의원 등에 초청장 보냈지만,
홍준표 등 지역 정치권 대표격 인사들은 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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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박정희 광장 제막식)는 많이 왔다고 하대···” (이용수 할머니)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던 이용수 할머니는 곧바로 기차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오후 2시 30분 대구 평화의 소녀상(대구여상)에서 열린 헌화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동대구역에 내린 이 할머니는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박정희 동상 표지판 제막식에 방문자들이 많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14일, 국가기념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대구에서는 동대구역 ‘박정희 광장’ 제막식과 기림의 날 기념식이 동시간대에 열렸다. 박정희 광장 표지판 제막식에는 홍준표 시장을 포함한 정치인들로 북적였다. 대구경북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기림의 날 추모제는 비교적 한산했다.

기림의 날 기념식은 통상 전국 70여 곳에서 열린다. 이중 대구경북에서는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준비하는 추모제가 유일하다. 대구경북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5명이 확인됐으나 2024년 현재 2명(이용수, 박필근)이 생존한 상태다.

낮 12시부터 대구 중구 오오극장에서 2024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 이후 오후 2시 30분부터는 대구에서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선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헌화식이 이어졌다.

이용수 할머니는 헌화식에 함께 했다. 이 할머니는 다소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간병인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특별한 건강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근래 4kg가량 체중이 줄었다. 헌화식에는 학생들이 잠시 나와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는 모습도 보였다.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꼭 기필코 해결돼야 합니다. 여러분 변함없이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비록 나이는 많지만, 오래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용수 할머니)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대구여상에서 헌화식이 열렸다. 대구여상 한 학생이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고 있다.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대구여상에서 헌화식이 열렸다.

엄창옥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는 “이번 주에는 박필근 할머니를 찾아뵀다. 97세이시다. 매년 몇 번이나 찾아뵙지만, 처음에는 얼굴을 못 알아본다. 이제 할머니가 직접 증언하는 직접 증언의 시대가 마감되고 있다”며 “기림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정해진 지 12년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적 보편성의 문제가 고무줄처럼 된다. 할머니의 소원은 그저 일본 정부의 인정, 사과, 배상뿐인데 한 발짝을 떼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너무 없다. 너무 늦었다. 국가에 그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 너무나 허무하다는 걸 알았다. 지난 11월 최종 판결이 났는데도 한 발짝도 못 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림의 날에 앞서 시민모임은 지역 국회의원, 대구시와 중구 등 관련 기관에 기림의 날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홍준표 시장 등 지역 정치권의 대표격의 인사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대구시 청년여성교육국장이 참석했고, 대구문인협회,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경북도당 측 관계자와 당 소속 지역 기초의원들이 일부 참석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구회근, 황성미, 허익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판결을 무시하고 특별한 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시민모임은 국내외 일본의 재산을 추적해 처분을 위한 강제집행을 신청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