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 광장에 우뚝 선 ‘박정희 광장’ 표지판···홍준표, “반대자도 이해 바래”

대구시 비밀작전 하듯 조용히 제막식 추진
시민단체·야5당, 반대 기자회견 열었지만
대구시, ‘사람 장벽’ 세운 채 제막식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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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광장’ 표지판이 들어섰다. 박정희 동상 건립을 비롯한 박정희 우상화 사업을 추진 중인 대구시는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 얼굴을 부조로 새긴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세웠다. 시민단체와 야권에서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대구시는 행사장과 기자회견장 사이에 공무원들로 벽을 세우고, 새마을회가 준비한 현수막 등으로 가리며 반대 목소리를 감추려는 모습을 보였다.

▲14일 오전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이름 붙이는 표지판이 제막했다. 표지판은 높이 5미터 폭 0.8미터로 제작됐다.

14일 오전 11시 30분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 한켠에 있는 공원에서 박정희 광장 표지판 제막식을 열었다. 이보다 앞서 11시께부터는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녹색당 등 야5당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광장 표지판 건립을 규탄했다.

홍준표 시장이 박정희 동상 건립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추진한 걸 고려하면, 대구시는 표지판 제막식 만큼은 비밀 작전 하듯 조용히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12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전까지 관련 소식을 공개하지 않았고, 주간 단위로 전주에 미리 공개되는 홍 시장의 동정 자료나 전날 배부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는 익일 홍 시장 일정표에도 제막식 행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제막식이 개최된 14일 오전 9시께 시청 기자실에 고정 출입하는 기자들에게만 오전 11시 30분으로 엠바고를 건 행사 보도자료를 배부했고, 비고정 출입 기자들에겐 행사 10분 전에 보도자료를 배부하기도 했다.

대구시는 ‘조용히’ 제막식을 추진하려 했지만, 관련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행사 시작 한 시간 이전부터 제막식장 주변은 인파로 북적였다. 11시에 시민단체와 야권이 개최한 기자회견에는 약 100명이 참석해 대구시와 홍 시장을 규탄했다.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녹색당 등 야5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표지판 제막을 반대했다.

임성종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내일은 79주년 광복절이다. 그런 날에 친일 부역자, 만주군 소위를 하면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박정희 동상을, 박정희 이름을 딴 광장으로, 동대구역 표지판을 설치한다고 한다”며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와 2.28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영령들이 통탄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금교 공동대표도 “모든 세대가 알고 있다. 박정희가 어떤 사람인지, 홍 시장은 왜 굳이 여기에 동상을 세워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이 역사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 선배들이 목숨을 건 나라인가.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홍 시장은 이렇게 역사를 뒷걸음질하게 만들어서 될 일인가”라고 힐난했다.

이들의 반대 기자회견이 이어지던 11시 20분께 홍 시장도 현장에 도착했다. 대구시는 공무원을 동원해 홍 시장이 도착하기 전부터 기자회견 관계자들과 제막식 행사장 사이에 도열해 ‘인간 장벽’을 만들었다. 대구광역시동구새마을회 관계자들은 대구광역시 새마을회에서 준비해준 현수막을 들고 와 장벽의 앞단에 자리 잡았다. 현수막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되새기자!!’, ‘산업화 정신 계승으로 대구의 영광을 되찾자!!’라는 문구가 적혔다.

홍 시장은 장벽을 세운 이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후 행사장으로 가 내빈들과 인사를 나눈 후 11시 30분부터 제막식을 시작했다. 행사에는 홍 시장 뿐 아니라 동대구역을 지역구에 둔 강대식 국회의원(국민의힘), 강은희 대구교육감, 윤석준 동구청장 등이 참석했다.

▲’박정희 광장’ 표지판 제막식 인사말에 나선 홍준표 시장이 “반대하는 분들도 이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사말에 나선 홍 시장은 “오늘 행사는 근대 산업화의 시발점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마련된 것”이라며 “동대구역 광장은 대구 대표 관문이자, 우리 대구의 얼굴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이곳에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설치하고 올해 안에 동상을 세워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시민들과 기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반대하는 분들도 있다. 역사의 인물에 대한 공과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과만 들추지 말고 공도 기념해야 할 부분은 기념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반대하시는 분들도 그 뜻은 이해한다”면서도 “반대만이 능사는 아니고 5천만 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산업화 출발 도시 대구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기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분들도 이해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