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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대구에는 장애성인을 위한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인정은 이뤄지고 있지만, 고등학교 인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 학생의 구술을 5월부터 8월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1) “이제 고등학교 가고 싶어요!”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2) 모르고 살아온 삶_박경화 이야기 ①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3) 모르고 살아온 삶_박경화 이야기 ②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4)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_이상근 이야기①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5)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_이상근 이야기②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6)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진짜로!_김태완 이야기①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7)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진짜로!_김태완 이야기②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8) “저는 질라라비야학이 진짜 좋아요”_이정모 이야기①이정모 씨는 47세의 지적장애인이다. 대구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중학교 때 큰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 판정을 받은 후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었다. 이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학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다시 야학 중학 과정에 입학했다. 몇 번의 가족을 잃은 아픔으로 가슴 한구석이 늘 외로웠지만, 새롭게 용기를 내 도전하고 꿈을 꾸는 정모 씨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글은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조계숙 활동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내가 꾸는 꿈
야학에서 오전에는 중학교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세 번, 월·화·목 이렇게 학교 나와요. 얼마 전에는 직업반에 들어갔어요. 처음에 서류 넣고 다릿돌에서 면접을 봤거든요. 진짜 떨어진 줄 알았어요. 다릿돌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는지 그런 거 물어봤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하고 싸우고 말다툼 같은 거는 절대 안 해요. 그런데 그런 걸 물어봐서 좀 걱정됐어요. 그래서 떨어진 줄 알았어요. 저녁에 전화 와서 두 명은 다음에 직업반 가고 저만 붙었다고 해서 진짜 기분이 좋았어요. 조계숙 선생님한테 신나서 전화했어요. 저한테 직업반 하면 좋다고 이야기 해줬거든요. 동생한테 전화하니깐 열심히 잘하라고 하면서 같이 기뻐해 줬어요.
6층 옥상에는 안심다방이 있어요. 화요일하고 수요일, 목요일 이렇게요. 저는 음료수 같은 거 준비하고 만드는 일을 해요. 근데 류○혜 누나가 저를 많이 구박했어요. 똑바로 못한다고. 잔소리가 많거든요. 기분이 안 좋아도 꾹 참고 일했어요. 처음에 못하는 것은 당연하니깐 부드럽게 이야기하라고 직업반 선생님이 (누나한테) 이야기해 주셨어요. 지금은 친하게 지내예. 우유 넣고 망고 스무디도 만들어 봤고 망고 넣고 물 같은 거 넣고요. 초코 스무디도 적혀있는 거 잘 보고 넣어야 돼요. 우유를 200ml 넣으라고 했는데 거기에 딱 맞춰야 돼요. 직업반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음료가 많이 나갈 때는 기분이 좋은데 주문이 많이 없으면 왠지 속상해요. 사람들이 많이 (안심다방에)왔으면 좋겠어예.
저는 혼자 살아요. 대봉 2동 주민센터 옆 원룸에서 살고 있어요. 쉬는 날에는 동생 가족하고 자주 여행을 가요. 얼마 전 남해에 있는 독일마을을 갔다왔어요. 하룻밤 자고요. 독일마을 구경도 가고 재미있었어예. 유치원 다니는 조카가 막내거든예. 내보고 외삼촌이라고 불러요. 애기가 귀였고 예뻐요. 나중에 월급 받으면 판다 인형 사줄라고요. 말도 잘하고 저거 엄마 닮아 가지고.(웃음)
가장 소중한 거요? 제 자신이 제일 소중한 것 같아요. 그래서 몸도 안 아플라고 당뇨 약도 먹고 있어요. 엄마도 당뇨가 있으면 의사선생님이 유전이라고 캐가지고 약도 먹고 헬스장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동생이 헬스장 끊어줬어예. 요즘은 야학 수업이랑 오후 직업반까지 해서 피곤해서 못 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운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뱃살도 많이 들어가지요.
우리 반은 중학 3단계 1반이고 남자만 4명이에요. 이○근 형님이랑 제일 친해요. 공부할 때 잘 모르는 것도 서로 가르쳐 주고 ○협 씨한테도 가르쳐 주고 해요. 친한 친구 ○준이 있었는데 이제 학교를 못 다니게 돼서 마음이 속상했어요. 서○협 씨한테 물어보니 친형이 학교 못 다니게 했다고 캐가지고 진짜 속상했어요. 같이 공부하다가 중간에 빠지니깐요. 이제는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막내가 됐어요.
얼마 전 국어 시간에 견우직녀 연극(역할극)을 했는데 우리 반에 여자분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서○협 씨가 직녀하고 임금은 ○근이 형님, 저는 견우 역할, 전○국 씨는 해설을 했어요. 선생님이 서○협 씨한테 여자처럼 말하라고 캐가지고 웃기고 재미있었어요.
우리 반에서 내가 반장이에요. 원래 저는 부끄럼도 많고 용기도 없어가지고 반장 같은 거는 할 자신이 없었거든예. 근데 선생님들이 하고 싶으면 용기를 내어보라고 캐가지고 손을 번쩍 들었는데 우리 반에서 저를 반장으로 뽑아줬어요. 저한테 다 잘해줘서 반장하는데 어렵지는 않아요.
저는 질라라비야학이 진짜 좋아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서 친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옛날에 반월당에서 아는 애들이 저보고 “장애인 새끼”, “저리 가라”라고 놀리고 나쁜 말을 해서 이제 그런 사람들은 절대 안 만나요. 안 볼라고요. 보면 뭐해요? 도움이 안 되는데, 이제는 야학 사람들하고 더 친하게 지내려고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버스 운전을 하고 싶어요. 버스 운전하면 월급도 많이 받아요. 대구에서 구미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몰고 싶어요. 제가 버스를 몇 번 타보니깐 운전하는 기사님이 부럽고 멋있어 보였어요. 일해서 돈 많이 받으면 저축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어요. 신○영 쌤(야학 강사) 맨추로(처럼) 좋은 사람 만나면 꼭 결혼하고 싶어요. 물론 선생님은 결혼했지만요. 이게 제 꿈이라예(웃음).
어릴 때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성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요. 지금은 결혼해서 식구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식구가 있으면 맨날 볼 수 있고 외롭지 않잖아요. 안 외로울 것 같아요. 지금은 집에서 혼자 있으면 엄마 생각나서 눈물도 나고···. 가슴 속에 엄마는 잘 못 잊는 것 같아요. 혼자서 있을 때 더 많이 생각나요. 결혼해서 우리 식구가 생기면 외롭지 않을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아요.
<기록자의 말>
이정모 씨를 끝으로, 5월부터 뉴스민을 통해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중학과정 학생 4명의 생애사를 다루었다. 각자의 삶과 형편은 다르지만, 모두 야학을 통해 용기와 꿈을 얻게 되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8월 30일에 전국 최초로 성인 장애인 중학학력인정과정 1기 졸업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처음 중학교 공부를 시작할 때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고등학교 공부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우리나라에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이유로 학교 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여기, 공부를 하고 싶고 평범한 학생처럼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꿈이 짓밟히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며 소망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