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구미공단의 잔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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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복귀를 앞둔 차헌호 아사히글라스지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공장에 복귀하고 나서는 새로운 투쟁을 시작할 테니, 지금까지의 투쟁을 전반적으로 정리하는 기사를 써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뉴스민이 아사히글라스 노조 설립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기사로 함께했으니, 우리 이야기도 궁금하다고 했다. 이미 그럴 계획이었기에 1초 만에 수락했다. 수락하고 생각해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9년의 인생을 걸고 투쟁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덧댈 나의 이야기는 특별히 없다는 걸 금방 자각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이 집단 해고된 당시 담당 기자는 내가 아니었다. 그들이 해고된 이듬해(2016년)부터 몇 해 동안은 경북 성주에서 벌어진 사드 반대 운동 취재에 집중했다. 본격적으로 취재를 넘겨받은 시기는 차가 생긴 2018년부터다. 그해 해고 조합원들이 일본 아사히글라스 본사를 찾아가는 현장에 동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일본에선 한 방에서 묵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진득한 풍경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가까운 거리만큼 차이가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는 일이 너무 달랐고, 삶의 궤적이 달랐다. 순도 90% 책상물림인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주워 담기에 바빴다. 해고 당해 느낀 찬바람도, 공장에서 실수해 ‘징벌 조끼’를 입어야 하는 망신도 살면서 겪어본 적 없다. 기약 없는 투쟁에서 한쪽 저울에는 가족과 생계를, 한쪽 저울에는 ‘인생에서 한 번은 이겨보고 싶다’는 투지를 달아본 적도 없다.

타인의 삶을 글로, 특히 ‘기사’로 쓰는 일은 때로 꽃꽂이 비슷한 것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재료를 이리저리 꺾고 비틀어야 한다.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선을 지키면서. 혹여나 타인의 깊은 고뇌를 글 몇 줄로 알은체 할 까봐 걱정됐다. 자격지심에 가까운 걱정이었지만, 취재를 이어가면서 이마저 숙지게 됐다. 옆에서 지켜본 이들의 싸움은 단지 부당하게 해고된 후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하는 것 만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싸움은 같이 발 딛고 선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는 그 세상에 대한 이야길 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때 대기업 공장에 정규직 노조가 생겨 공들여 취재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서도 노조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이야기를 들었다. 해고되거나 징계받은 그들에게서 일터를 향한 진득한 애정을 느낀 점이 인상 깊었다. 그들이 장년이 되기까지 그들의 일가족을 책임진 일자리. 그 공장에 노동자의 인생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에게서 느낀 것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비정규직 인생, 조금 억울한 일이 있어도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들은 싸움을 선택했다. 그것은 불법으로 사람을 쓰고 불법으로 잘라내서는 안 된다는 상식, 노조 만들었다고 한 달 만에 178명을 잘라버려서는 안 된다는 상식, 대형 로펌, 소극적 수사기관을 상대로도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상식, 그리고 가시밭길 사이로 난 길이라 할지라도 함께라면 걸어갈 수 있다는 상식을 보여주는 길이었다.

이들이 공장으로 돌아갔다고, 가시밭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구미공단에서 처음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투쟁 끝에 불법파견을 확인하고 정규직 지위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구미공단의 불법파견은 만연한 문제다. 여전히 아사히글라스 바로 옆 공장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과 중간 착취, 산재 위험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통계로도, 실태조사로도 기록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훗날 이 기록이 조금이나마 참조가 된다면 기쁠 것 같다.

오는 토요일인 10일, 구미코에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 보고대회가 열린다. 그날을 위해 음식을 대차게 준비한다는 소문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상석도 말석도 없는, 자격을 묻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함께 가서 구미공단의 잔칫날로 만들자. 다른 공장도 들썩이도록.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