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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해고됐던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공장에 들어가서도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겠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들은 ‘아사히글라스지회’ 노조 깃발을 들고 공장 정문을 넘었다.
1일 오전 7시 40분, 뇌출혈로 재활 치료를 받는 조남달 조합원을 제외한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 21명이 공장 앞에 모였다. 20분 뒤면 해고 후 9년, 3,321일간의 해고 생활을 마치고 공장으로 들어간다.
복귀를 앞둔 조합원의 얼굴이 해사하게 피어났다. 이들은 모두 명찰이 달린 금속노조 조끼를 입었다.
“이제 조금 실감이 나고, 설레고, 긴장되네요. 앞으로 일어날 일들, 수많은 동지들이 힘내라고 이야기 해주는 게 가슴 벅차고, 코끝이 찡합니다.” (오수일 조합원)
아침부터 공장 앞에는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의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노동자·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의 표정도 복귀를 앞둔 노동자만큼 화사하다.
강원도에서 온 남정아(53) 씨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농성장에서 전날 자고 아사히글라스 노동자 복귀를 축하하러 왔다. 남 씨는 “아사히 동지들은 전국 수많은 비정규직에게 투쟁의 열정을 뿜어주고 길을 만들었다. 희망을 몸소 보여줬다. 들꽃처럼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 꽃씨를 날리는 아사히 동지들 덕에 저도 싸울 수 있었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공장으로 향하는 길은 꽃길이 됐다. 오전 8시, 기자회견을 마치고 공장으로 들어가는 길, 21명의 노동자는 장미꽃을 한 송이씩 건네받으며 축하 세례를 받았다.
정문을 넘어서는 김정태 조합원의 손에 노조 깃발이 들려 있다. 전국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라 적힌 푸른 깃발이 공장에 들어섰다.
조합원들은 경비실에서 ‘프로젝트 工事(공사)’라 적힌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경비원과 아사히글라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접견실로 들어서기 전, 흡연실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여유도 부렸다. 조합원들은 다시 한번 시민들을 향해 서서 새로운 투쟁을 다짐하며 공장으로 들어갔다.
아사히글라스지회 조합원들이 받은 장미꽃은 지금도 투쟁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에 전해졌다. 김정태, 김태우, 안진석 조합원은 손에 든 장미꽃을 이지영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장에게 주었다.
이지영 사무장은 “너무 축하드린다. 눈물 날 뻔 했다. 이 꽃을 받은 덕분에 우리도 기운을 전달받았다. 들어가서도 많이 힘들 텐데 꿋꿋하게 잘 버티고, 민주노조 정신을 이어 나가길 바란다. 우리도 승리의 기운을 받았으니 곧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으로 들어서기 전, 차헌호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오늘의 출근 길은 수많은 동지들이 9년간 함께 만들어 온 길입니다. 우리가 흘린 수많은 눈물이 떠오릅니다. 긴 시간 견뎌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첫 출근길을 걷습니다. 오늘의 출근길은 민주노조의 길입니다. 오늘 저 공장 정문을 넘으며 투쟁 2막을 시작합니다. 회사 안에는 벌써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출근 시간을 협의하자는 노조의 요청도 회사는 거부하고 판결 직후부터 출근명령 했습니다. 결근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도 합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큰소리칩니다. 협박이 아닌 사과를 해야 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이제 우리의 시간입니다. 민주노조 깃발 들고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더 큰 노조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기대해주십시오.”(차헌호)
앞서 오전 7시 40분 공장 앞에서는 첫 출근을 알리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태영 민주노총 경북본부장은 “9년이라는 긴 시간을 어찌 말로 다 풀어낼 수 있겠나. 오늘의 마음이 민주노조를 다시 세운다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며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조금만 잘못해도 징벌 조끼를 입었다고 한다. 이제는 사측의 노무 관리가 난무하는 현장으로 출근하게 된다. 그럼에도 동지들의 자신감, 연대의 힘이 아사히에 민주노조를 크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엄상진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오늘이 노동해방의 날이다. 웃으며 현장으로 출근하는 것, 그게 노동해방이다. 아사히 22명의 전사들이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게 자랑스럽다”며 “아사히 자본에 경고한다. 민주노조를 무시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투쟁해서 공장으로 돌아가는 건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노동자가 쫓겨나서 연대를 통해 공장으로 돌아간 사례가 많지 않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인 점에서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라며 “공장으로 돌아가면 또 지옥이다. 당당하게 설 때만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그게 무거운 책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걸어온 그 시간을 기억하며 공장에서 잘 살아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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