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변의 헤어질 결심] TV가 재미있어요 변호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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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스타에 올린 웨딩 사진처럼 완벽해 보이던 결혼생활. 하지만 2023년 통계는 우리에게 다른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두 커플 중 한 커플이 ‘언팔로우’를 선택한다는 거죠. 어떨 때는 사랑스럽다가도 어떨 때는 원수같이 느껴지는 우리 부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박경연 변호사가 어쩌면 지금 ‘헤어질 결심’을 고민하는 당신의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TV가 재미있어요 변호사님, 예전엔 남편이 올 시간만 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불안했는데, 이젠 그 시간에 TV를 보면서 웃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신기해요”

이혼 소송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의뢰인 A 씨가 저에게 한 말입니다. A 씨는 남편의 상습폭행에 고통받았지만, 20년이 넘게 이어진 익숙한 생활이었던 탓에 남편이 없는 생활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이혼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성장해 버린 아들이 A 씨를 폭행하는 남편을 밀치며 멱살을 잡는 일이 벌어졌고, 남편은 아들을 존속폭행죄로 경찰에 신고까지 했습니다. 폭행 사건과 이혼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A 씨는 아들이 폭행죄로 처벌받을까 전전긍긍하며 남편에게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던 겁니다.

다행히 이혼 소송 과정에서 남편과 분리되고 점점 남편이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어느덧 TV를 보며 소리 내 웃는 자신의 모습까지 발견하게 된 거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고 A 씨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혹시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적, 경제적, 정신적 에너지 소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쉽게 현실을 박차고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면 잠시 내 자신을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친구가 배우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다면, 친구가 시부모님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친구의 배우자가 친구를 속이며 외도를 즐기고 있다면, 친구가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런 경우까지 그냥 참고 살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도와줄 테니 용기내어 그 현실을 벗어나 보자고 말하지 않을까요?

내 자신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불행한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내 자신, 내 인생을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의뢰인 A 씨처럼 활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박경연 공동법률사무소 예원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가사·형사 전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