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의 연대, 비정규직 투쟁의 전형될까?

연대 활동한 활동가들이 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차헌호, "우리 투쟁의 중심에 '비정규직 투쟁' 있어"
KEC지회가 보여준 연대 활동, 그리고 아사히가 보여줄 연대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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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의 투쟁 끝에 공장으로 돌아가는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이들의 역사를 단지 ‘해고자 복직 투쟁’이라고만 기록하기엔 허전한 감이 있다. 이들은 지난 9년을 투쟁하면서 한국 사회 비정규직 운동을 고민했고, 다른 비정규직 문제에도 함께 나서 목소리를 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을 ‘연대’와 ‘비정규직 운동’이란 열쇳말로 다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뉴스민>은 아사히글라스 해고 이후 지금까지 조합원 22명과 직간접적으로 함께 한 시민, 노조·시민사회활동가로부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활동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이들 역시 지회 활동의 정수를 ‘연대’로 꼽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 (사진 제공=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의 ‘연대’ 중심에 비정규직 투쟁 현안이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하청노동자 김용균, 0.3평 농성 거통고조선하청지회 하청노동자 유최안, 산재 사망 동국제강 하청노동자 이동우, 산재 사망 건설 하청노동자 강보경 투쟁. 지회가 해고 기간 집중해서 연대한 이름들이다.

차헌호 지회장은 “비정규직이 주체가 된 투쟁”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차 지회장은 “우리 투쟁의 중심에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비정규직 투쟁에 우리 역량을 쏟았다”며 “예를 들어 도로교통공사에서 투쟁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하려 했다. 단지 어렵고 힘든 곳에 가는 게 아니라, 핵심적 문제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인데,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민주노조도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가 주도하고 있다”며 “절대다수 비정규직 문제를 바꾸려면 비정규직 운동이 살아나야 한다. 당사자가 주체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는 공장으로 돌아가지만 구미공단만 해도 불법파견 문제가 만연해 있다. 만연한 불법파견 문제를 바로잡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데에 함께할 것”이라며 “구미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연대 활동의 연장에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의 주축으로도 활동했다. 여러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비정규직이 주체가 되는 노동운동을 꿈꾼 것이다.

유흥희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집행위원장은 “‘공동투쟁’ 결성 즈음,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후퇴하고 있었다. 임금하락, 해고 위험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당사자가 단결해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다”며 “이를 절감하는 아사히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해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동투쟁을 모색하기 위해 ‘공동투쟁’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공동투쟁’ 활동 속에서 아사히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범적으로 앞장서 실천했고, 귀감이 됐다. 실천적 이정표가 됐다”며 “이들은 지역, 업종, 산별을 넘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했다.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구미지역 또 다른 비정규직 투쟁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투쟁 과정은 자연스럽게 산업재해 문제와도 연결됐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홀로 위험한 작업을 해야 했던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이사장인 김미숙 씨와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인연은 겹겹이 쌓였다.

김미숙 이사장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 나도 함께했는데, 거기서 지회를 만났다. 이분들이 2018년 용균이 투쟁할 때도 함께 해줬다. 그제서야 아사히글라스 문제를 알게 됐다”며 “이분들의 투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다. 하면 된다는 본보기도 보였다. 특히 불법파견은 더 이상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렸다. 비정규직은 부당한 일을 겪고도 투쟁하기 어렵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들은 공장에 돌아가서도 비정규직을 없애는 길에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연대’는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특히 같은 구미 공단에 있는 금속노조 KEC지회를 자주 언급했다. 노조 결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어렵고 힘든 국면에 함께 했다는 것이다. 노조에 큰 역량이 있어서가 아니라, 연대로 힘을 전달받은 경험으로 연대 ‘실천’의 중요성을 느꼈다.

▲김미숙 씨(중간)와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우측)

그렇다면 KEC지회의 연대는 어디서 나온 걸까. KEC지회는 꾸준한 연대에 대해, 과거 KEC지회가 힘든 시기 받았던 연대를 다시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성훈 KEC지회 사무장은 “민주노조를 지원하는 민주노총의 문화가 있었다. 우리 지회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는데, 지회 차원에서는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 우리 지회가 투쟁 속에서 연대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EC지회는 2010년부터 장기간 노조 존립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회사의 직장폐쇄, 여성기숙사 용역 난입, 금속노조 약화를 위한 개입과 이에 따른 전국 최초 복수노조 설립 등 피해를 겪었고, 이에 맞선 바 있다.

김 사무장은 “아사히 투쟁 직전 우리 지회도 스타케미칼 연대, 정리해고나 구조고도화까지 투쟁에 매진하던 시기였다. 그런 긴장감이 있는 상태에서 2015년 아사히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며 “또한 연대투쟁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고, 연대투쟁이 주는 만족감이란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희 KEC지회 조합원은 “우리 입장에서도 아사히 투쟁 승리가 절실했다. 함께 싸울 수 있는 조직된 사람들은 정말로 중요하다. 구미지역은 투쟁하는 노조가 여전히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리가 받은 걸 나눴고, 서로 뭉치고 이겨낼 힘을 갖게 된다. 앞으로 아사히 지회는 구미지역 다른 현안에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승리가 구미공단에 여파를 줄 수 있을까. 김 사무장은 “워낙 쉬운 길이 아니었으니, ‘희망’이라고 하기엔 만만치 않다. 구미의 역사성도 있고, 투쟁 승리로 공단의 분위기가 전격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우리 KEC나, 한국옵티칼, 오웬스코닝 노동자에게 실제로 힘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이 조합원도 “워낙 연대를 잘했기 때문에, 공장으로 돌아가서 하는 활동에도 또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는 힘이 있을 것이다. 시너지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파업 중인 kec지회. (사진=kec지회)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사회운동에도 함께 했다. 성주 사드 반대 투쟁 현장에는 중요한 변곡점 마다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회운동에서 지회의 활동 방식과 태도가 참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운동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임순분 성주 소성리 부녀회장은 이들의 공장 복귀 소식에 소성리 주민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고 전했다. 임 부녀회장은 “우리가 어려울 때 그 동지들이 함께했다. 사드 발사대가 들어오던 날에도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러다가 차창이 깨지는데도 몸으로 막았다. 이들은 몸으로 연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다. 앞으로 연행될 일은 만들지 말라고 말해줬는데, 그분들이 가만히 일만 할 분들은 아니다. 이 싸움이 복직이란 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복직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불의가 있는 곳에 함께 한 동지들이 앞으로 공장에 돌아가서도 어떤 방식으로 싸우고 연대할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전근배 420장애인차별철폐 대구투쟁연대 정책국장은 “지회가 ‘약함’을 드러내고 연대에 나선 점이 사회운동의 중요한 참조점이 됐다”며 “약함이란 건 사회운동의 언어는 아니었다. 장애 운동에서도 장애인의 약함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문제만 이야기했다. 우리 몸에는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사실은 아프고, 다르고, 다른 경험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약한 이야기라고 비춰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돈된 이야기만이 아닌, 약함을 드러내는 그 자체가 잘 싸우는 것만큼 큰 용기이자 중요한 실천으로 다가왔다”며 “그리고 우리도 오랜 시간 투쟁했는데, 그 긴 시간 또 다른 누군가가 근처에서 버티고 있고, 그리고 잘 싸우고 있다는 것이,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위안을 줬다”고 전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