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대구에서 아빠가 된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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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면 아빠가 된다. 지난 1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조금씩 조금씩 불러오는 아내 배를 지켜보며, 아빠가 된다는 걸 실감한다. 저 좁은 공간에 한 생명이 자리 잡고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신비롭다’ 외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풀어 오른 아내의 배를 쓰다듬다 뱃속에서 꿈틀대는 움직임을 느끼면, 왜인지 모를 뭉클함도 몰아친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설렘이 오늘 찾아왔다가, 내일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엄습한다.

▲대구에서 아빠가 된다는 건, 그래서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며, 아빠가 될 준비를 한다. 아이의 옷을 조금 사고, 중고마켓에서 침대와 카시트도 샀다. 처형에게선 젖병 소독기도 얻어왔다. 아이 있는 집엔 필수품이라는 육아서적도 마련했다. 국민행복카드도 발급 받고, 정부로부터 지원 받을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봤다. 저출생이 문제라며 연일 떠들어대는 위정자들이 무엇이든 만들어놓았을 테니까.

막상 찾아보면 그들의 호들갑과 달리 특별히 대단한 대책이 있는 건 아니다. 보건소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 받은 선물은 엽산과 철분 정도다. 물론 열 달 내내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다. 그나마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제도가 도움은 된다. 출산까지 드는 의료비 부담을 경감해주기 위해 마련한 제도인데, 국민행복카드를 통해 출산까지 100만 원을 쓸 수 있다. 덕분에 의료비 부담은 줄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산까지 모든 의료비가 충당되는 건 아니다.

출산 이후에는? 이름이 좀 특이한데, ‘첫만남 이용권’이란게 있단다. 마찬가지로 국민행복카드에 200만 원이 지급된다는데, 일종의 출산 축하금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모급여도 도입되어서 24개월 동안 받을 수 있다. 처음 12개월은 월 100만 원, 이후 12개월은 월 50만 원이다. 직접적인 지원은 여기까지다. 이곳 대구에선. 대구시 출산보육과 예산서를 살펴보니, 대구시가 특별히 더 하는 출산지원책을 찾기 힘들다. 정부가 하는 걸 대신 집행하거나, 다른 지자체도 하는 걸 같이 하는 수준이다.

어떤 기업이 출산한 직원에게 1억 원을 지급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고, 인천시는 정부가 지원하는 부모급여, 아동수당, 초·중·고 교육비에 별도로 2,800만 원을 신설 지원해서 18세까지 모두 1억 원이 지원되는 제도도 마련한다. 가까운 경북에선 공공산후조리원 건립이 붐이란다. 대구에선 기본 300만 원이 드는 조리원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서비스 질은 훨씬 좋다는 평이다. 대구보다 더 많이, 더 나은 제도를 제공하는 도시는 손으로 다 꼽기 어려울 정도다.

대구에서 태어나서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까지 대구에서 다녔고, 군 생활마저 대구에서 한 토종 대구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대구를 사랑하지만, 이쯤 되면 약간 화가 난다. 대구에 있다는 이유로 당하는 차별, 그로인해 보는 경제적 손해는 얼마나 되는가? 똑같은 대한민국 헌법 아래서 교육, 근로, 납세, 병역 4대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이제 곧 태어날 아이는 왜 대구에서 태어난다는 이유로 차별적인 지원을 받아야 할까.

그런데도 대구시는 “민선 8기 대구시의 미래 신산업 육성을 위한 산업구조 대개편과 시정 전 분야에 걸친 대구혁신 100+1 추진에 따른 실질적인 효과” 덕분에 혼인건수와 출생아수가 전국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는 자찬을 하고 있다. 100+1의 대다수는 여전히 진행 중인 사업이다. 그 제일 앞단에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특별법 제정이 자리잡았고, +1은 대구경북통합이다. 법은 공항을 짓기 위해 제정했고, 그 공항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는데,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소리도 나온다. 통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99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완성되지도 못한 사업들이 도대체 어떻게 ‘실질적’으로 효과를 내고 있다는 걸까.

대구에서 아빠가 된다는 건, 그래서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차별적인 지원으로 인해 발생할 손해를 벌충할 만큼 ‘노오력’을 해야 하고, 100+1이 무엇이기에 내 결혼과 출산이 그 덕분이라는 건지 공부도 해야 하며, 내 아이가 조금은 더 나은 대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실질적’ 효과라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일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제발 쓸데없는 보도자료 내는 일에 힘 빼지 말고, 정말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건 덤이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