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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7월 16일 씨부려대구 시즌3 두 번째 모임입니다. 오늘은 10년째 뜨거운 주제인 저출생에 대해 씨부려보겠습니다. 오늘 참석자는 강은정(31, 프리랜서), 김소연(27, 대구여성회), 김수현(27, 대구여성노동자회), 조영태(32, 대구참여연대), 최원혜(37, 성서공동체FM)입니다. 저는 진행과 기록을 맡은 김보현(31, 뉴스민)입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소연: 대구여성회에 작년 1월 입사했습니다. 여성노동자회 토리(수현) 사무국장님 소개로 왔습니다.
조영태: 씨부려대구 1기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구참여연대 활동가 조영태입니다.
최원혜: 2021년 청년NGO활동지원사업을 통해 성서공동체FM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국장이지만 막내입니다.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걱정되지만 재밌게 해보겠습니다.
강은정: 방금까지 아르바이트하고 온 강은정이라고 합니다.
김수현: 대구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5년 차가 됐네요. 지난달 첫 모임을 했는데, 말을 잘 못했더라고요. ‘씨부려대구’인데 너무 못 씨부렸다는 생각에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습니다.
오늘은 제가 간단 브리핑을 맡았는데요.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2명입니다. 흑사병 때보다 심각한 수치라고 하더라고요.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면서 정부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등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는데 기존의 대책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왔고, 어이없는 정책들로 논란이 일기도 했죠. 초등학생 야간자율학습이나 최저임금제 폐지 같은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시 얘기도 빼먹을 수 없겠죠. 신천 프러포즈존, 남구 앞산 하늘다리의 사랑의 오작교 이벤트, 달서의 솔로탈출 원정대가 떠오르네요. 이런 세부적인 사업에 대한 각자의 생각도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보현: ‘저출생은 정말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볼게요.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정부, 공공기관, 언론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건 최근 1~2년쯤인 것 같아요. 학계에서 여성에게 원인이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꾸준히 주장했지만 잘 안 바뀌었잖아요. 용어의 변화를 보고 ‘아, 정말 심각한 상황이구나’ 한 번 더 느꼈어요.
소연: 문제나 문제가 아닌 것으로 규정할 수 없고,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출생률이 증가하려면 여성 청년들의 삶이 안정돼야 하잖아요. 직장 내 성차별, 저임금 상황에 놓여 있는 다수의 여성은 결혼과 출산에 회의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혼인율 감소나 저출생은 자연스러운 ‘결과’인 거죠. 물론 과거 세대가 지금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우린 더 이상 사회의 진보를 기대하기 어렵고, 희생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걸 배운 세대라는 게 다른 점이죠.
#저출생 뒤에 따라오는 고령화가 더 큰 문제
영태: 출생률 자체보다 뒤에 따라붙는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봐요. 인구가 줄어드는 건 소연 님 이야기처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더라도, 고령화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잖아요. 노인세대 부양에 대한 지원, 복지나 연금 시스템이 걱정돼요. 국가에 돈을 내는 인구는 줄고, 국가로부터 돈을 받아야 할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데 연금개혁이 지금 제대로 되고 있나요? 논의는 오래됐지만 진전은 없는 걸로 알아요.
원혜: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저출생, 저출산 두 개 용어를 아직은 혼용해 쓰는 것 같고요.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죠. 개인의 선택이잖아요. 다만 저출생은 연달아 고령화, 노동인구 감소 같은 문제가 따라붙으니 사회적으론 큰 문제라고 봐요.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가 안 되어 있잖아요. 저는 직접 체감하고 있어요. 달서구의 마을방송국에서 초등학생 미디어 제작 교육을 진행하는데, 아이들이 말해요. 한 반에 20명이 안 넘는다고요. 그중 30~40%는 이주 배경을 지닌 아이들이래요. 저희 때는 한 반에 40~50명씩 있었잖아요. 전교생 수가 줄고, 부모가 이주민인 아이들이 많은 걸 보고 저출생이라는 단어가 피부로 와닿았어요.
영태: 동네에서 자주 보던 유치원이 있는데, 요양원으로 바뀌었더라고요. 건물 2개를 쓰는 큰 유치원이었는데, 원생 모집이 안 돼서 요양원으로 바뀐 거죠. 유치원 버스도 요양원 버스로 바뀌었어요.
원혜: 둘째를 임신한 친구한테 들었는데, 1세~2세 같은 영유아 대상 반은 개설이 되어 있어도 아이가 없대요. 그래서 원생 신청이 들어오면 잠시 대기하고 있다가 다른 원생 신청이 들어와야 채용 공고를 내서 선생님을 구하고 반을 개설한다고 하더라고요. 유치원이 존재는 하지만 각각의 연령별로 대응이 힘든 게 현실이죠.
보현: 고령화에 따른 일자리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 세대가 정년퇴직하실 나이대가 되셨잖아요. 아직 젊고 책임져야 할 게 남은 상황인데 일자리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 많다고 해요. 직종도 제한적이고요. 감시단속 근무나 미화, 요양보호사가 대표적이죠.
원혜: 저희 어머니가 요양보호사를 오래 하셨어요. 그 유명한 ‘58 개띠’인데, 어머니 나이대의 동료가 많으세요. 어머니 말에 따르면 하고 있던 일이 어느 정도 끝난, 자식에 대한 책임도 포함해서요. 60대 중후반 여성이 요양보호사 준비를 많이 하신대요. 40~50대가 젊은 축에 속하는 거죠. 접근이 쉬운 편이고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소연: 저도 사회복지과를 나왔어요. 방학 중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러 외부 학원에 간 적 있거든요. 학교에 개설된 수업을 놓쳐서 가게 됐는데 나이가 어려서 이상한 존재가 된 적 있어요. 저출생을 체감하는 순간들은 일상에 정말 많아요. 제가 졸업한 중학교가 통합되거나, 어릴 때 다녔던 체인 입시학원 위치가 노인복지센터로 바뀌어 있는 것들이죠.
#헛발질 10년째···결혼할 상대‧장소 없어서 저출생 심화?
보현: 이제 본격적으로 저출생 대책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까요? 최근 0.72명이 주는 충격이 커서 그렇지 이미 ‘저출생은 사회문제’라고 인식된 지 오래됐죠. 그동안 나왔던 대책들에 대한 평가가 어떤가요? 헛발질 사례도 여럿 떠오르네요.
수현: 근본적 문제에 대한 대책보다 겉핥기식 대책이 많았어요. 프러포즈 할 공간이 없어서, 혹은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저출생이 심각해졌다는 인식이 반영된 대책이죠. 달서구는 ‘솔로탈출 결혼원정대’라는 걸 운영하고 있거든요. 결혼을 희망하는 미혼 남녀를 연중 수시로 등록하고 관리해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벤트를 해주는 건데, 글쎄요. ‘썸남썸녀 만남행사’, ‘두근두근 페스티벌’ 같은 이벤트를 왜 세금으로 하는지, 저출생 문제 해결에 실효성이 있긴 한지 이해가 잘 안돼요.
원혜: 달서구가 결혼친화도시거든요. 실제 비용 지원도 확대하고 출산 시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다양하게 두려고 노력하는 것 같긴 해요. 달서구 이곡동이나 월배의 공원에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 조형물과 웨딩카 조형물이 있거든요. 사진 찍어서 보내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도 하죠. ‘페미니스트의 책장’이라는 마을방송에서 패널들이 이야기한 내용인데, 이런 사업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다가 실패한 경우도 있다더라고요.
영태: 2019년에 달서구가 직접 중매에 나섰다는 자료를 보고 성사율을 물어본 적 있어요. 의외로 성혼율이 높더라고요. 4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아무래도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같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참가자가 많았기 때문 아닐지 추측합니다.
보현: 내가 직장이 있고 대출받아서 집도 살 수 있는데 상대를 만날 기회가 없다면, 중매처가 필요할 수 있죠. 그런데 그게 정말 대다수일까요? 무엇보다 지자체가 세금을 들여서 할 일인가에 대한 의문도 들고요.
은정: 수성문화재단에서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 소개팅 프로그램을 진행했더라고요. 현장스케치 기사를 보면 참가자가 이런 인터뷰를 해요. “한국 여성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어느 동네에 사는지, 어떤 브랜드 차를 모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등 내게 바라는 기준이 너무 높았다.” 그럼 일본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건가 싶었죠.
원혜: 일본에 취업해서 산 적이 있는데 한국이랑은 비슷하면서 다르거든요. 결혼에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어쨌든 여성은 20대에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한국에도 있긴 하지만 일본에는 결혼정보회사가 더 버라이어티해요. 기본적으로는 콘카츠라는 결혼 활동인데 달서구에서 하는 미팅처럼 홀을 빌려서 파티 형식으로 결혼 상대를 찾는 형태가 많죠. 지자체 차원에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파티를 주최하는 회사가 엄청 많아요.
소연: 최근 대구시가 발표한 신천 프러포즈존도 전국적 이슈가 됐죠. 헛발질 사례로요. (관련기사=대구시, 110억 프러포즈 공간 조성 나서···”프러포즈존 없어서 결혼 안 하나”(‘24.06.20))
영태: 원래 신천 수변화 공원이 계획되어 있었거든요. 신천에 젊은 사람보다 어르신이 많으니 버스킹 공간 같은 걸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해요. 그런데 갑자기 홍준표 시장이 담당부서인 맑은물하이웨이추진단에 ‘프러포즈를 위한 데크를 만들어봐라’고 했다는 후문이 있어요. 딱히 예산이 추가된 것도 아닌데 홍 시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덜컥 말한 거죠. ‘아마도 프러포즈존을 만들면 결혼을 많이 하겠지, 애를 많이 낳겠지, 저출생 문제도 해결되겠지’라는 논리구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수현: 결혼을 못, 또는 안 하는 게 ‘진짜 결혼할 사람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래서 미팅 시켜주고 프러포즈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걸까요?
영태: 제 생활반경에서 만나는 그 나이대 어른들은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데, 제가 막 안타까우신 거죠. 저는 아무 생각 없는데 “쟤 만나봐라”라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세요.
수현: 저출생 대책으로 전세자금 대출 이자 지원 같은 정책도 많잖아요. 그런데 사실 진짜 집을 구할 때 불안한 건 전세사기거든요. 특히 청년세대가 전세사기를 많이 당하기도 하고요. 제대로 된 구제나 대책 마련이 요원한데 이미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대출해서 집을 마련하라고 하는 정책이 정말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결혼을 할 생각이 없는 사람까지 설득할 수 있는 방향도 아닌 것 같고요.
원혜: 제 친구들은 이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다자녀를 둔 친구도 여럿 있어요. 어제 그중 한 명이랑 통화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최저임금 기준으로 둘이 결혼해서 소득을 모으면 혼자보다는 좀 많잖아요. 같이 살면 고정 지출도 아낄 수 있고요. 그런데 여기에 아이가 태어나면 누군가 아이를 양육해야 하니, 한쪽은 경제활동을 포기하거나 지속하더라도 공백 기간이 생기겠죠. 아이를 맡기면 그만큼의 인건비가 들어가고요. ‘핏덩이 두고 어디 가서 일하냐, 엄마가 애를 봐야지’ 하는 시선도 아직 있고요. 그럼 특히나 작은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일수록 한 사람이 경제활동을 그만두게 되는 거예요. 결국 한 사람의 벌이로 세 사람을 책임지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둘째가 생겼는데, 너무 우울하다고 하더라고요. 첫째까진 지원금으로 어떻게 된대요. 그런데 둘째부턴 정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대요.
산부인과에 가면 보통 8~9번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완전히 지원이 되는 건 딱 첫 번째 초음파밖에 없대요. 그래도 바우처 형식으로 100만 원 정도 지원이 나오기 때문에 매달 병원 진료를 받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대요. 그 외 검사는 비급여로 추가비용이 들지만 그건 차치하고요. 자, 이제 출산을 했어요. 출산축하금 200만 원이 나와요. 기저귓값이나 되려나요. 이제부터 현실인 거죠.
은정: 저는 저출생 대책이 너무 정상가족에 집중돼 있다고 봐요. 아빠나 엄마는 대기업, 중소기업에 다녀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조건인거 잖아요. 우리나라는 자영업자가 더 많은걸요. 자영업자도 출산을 해야 하는데 정작 지원책은 전무해요.
수현: 덧붙여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쨌든 고용보험에 가입된 사람이죠. 여성 비정규직 비율이 45%라는데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들은 육아휴직을 못 쓰는 조건인데 정부가 육아휴직 확대만 말하는 게 맞나요? 비정규직 여성들에겐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데, 최저임금을 폐지하자고 말하는 것도 웃기죠. 고용과 생활이 불안정한데 어떻게 아이를 낳나요.
영태: 이런 얘기를 하면 옛날에도 다 힘든 데 낳아서 키웠다는 말이 꼭 나오죠. 물론 제가 하는 말은 아닙니다.
수현: 까놓고 말해서 20~30대 여성들은 자기 커리어를 포기하고 결혼할 마음이 없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강요당하는데 아이를 낳아서 돌봄을 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인거죠. 정부는 말하죠.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를 들여와서 싼값에 돌봄노동을 미루자. 그것도 정당하진 않죠.
보현: SNS 이야기도 잠깐 하고 싶어요. 와이프는 공기업, 남편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 부부가 아이를 갖는 문제로 싸웠대요. 한쪽은 남들만큼의 유모차, 집, 교육을 해주기 위해선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다른 한쪽은 그냥 지금의 조건 속에서 키워도 된다는 입장이더래요. 제 생각엔 결혼생활, 육아도 SNS에 노출되고 마케팅에 활용되는 시대이기에 이런 생각 차도 심화하는 것 같아요.
은정: 우스갯소리로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저출생에 기여했다는 말도 하죠.
원혜: 저출생 시대지만 출산도 산업이 됐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기농을 고집하거나, 해외 유모차를 구입하는 부부가 생각보다 적지 않죠. 출산 축하금 200만 원을 정부가 주는데, 요새 엄마들은 이걸 대부분 조리원으로 결제한대요. 그런데 조리원이 200만 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가격대가 엄청 다양하죠. 팩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부 지원금이 늘어나는 만큼 조리원 가격도 올라간대요. 조리원에서 아이들 분유 먹일 때도 영양제 추가 조건이 붙는 건 뭐 당연하고요.
보현: 현금성 지원이 최선일까요? 달성군에선 지난해 1,700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전국 82개 군 단위 지자체 중 신생아 수 1위를 차지했어요. 합계출산율도 1.03명으로 높은 편이고요. 집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전반적으로 살기 좋은 환경 때문이라고 봐요. 결국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내가 살 만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고민을 할 수 있겠죠.
은정: 정부 연구기관에서 나온 정책을 보고 경악한 적도 있어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자료인데 한국 인구문제를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정의하고,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기 위한 정책으로 여성을 1년 조기 입학시키는 방안을 내놓거든요. 남성이 여성보다 발달 정도가 느리니까 여성을 1년 조기입학시키면 적령기 남녀가 서로 더 매력을 느낄 것이라는 논리인데, 과연 그럴까요.
원혜: 지방소멸위험지수가 가임기 여성 인구에 따라 계산되는 것 아세요? 저도 마을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요. 지방소멸위험지수는 가임기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인구로 나눈 값이래요. 산출 값이 1.0 이하면 인구소멸 주의 단계, 0.5 이하면 인구소멸 위험 단계에 진입한 걸로 봐요. ‘가임기 여성이 많아야 애를 많이 낳는다’는 일차원적 접근인 거죠. 이런 인식들이 쌓여서 젊은 여성들이 질려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출생 해결? 그냥 살기만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통 큰 현금 지원, 일자리, 다양한 형태의 가족 인정 필요
보현: 각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저도 결혼, 출산에 대한 의지가 아직은 전혀 없거든요. 급하지 않을뿐더러 굳이 국가의 저출생 문제를 걱정해서 내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소연: 저는 연애하고 있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상호 합의가 됐거든요. 상호 합의는 좀 거창하고, 상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아이를 낳아서 호적에 올려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제도적으로 묶이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상 가정에 집착하는 우리나라 특성상 더더욱, 굳이 제도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하고요.
은정: 20대에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30대에 접어든 지금은 저 하나 돌보기도 벅차서 무성애자가 된 것 같아요. 연애 상대를 만날 수는 있겠지만 굳이 노력하지 않는 거죠. 모순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요. 사유리 씨를 보면서 ‘자식은 한번 낳아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저희 어머니가 항상 자식이 주는 기쁨은 진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하시거든요. 그 기쁨이 뭘까 궁금한 것 같아요.
영태: 저는 결혼하고 싶어요. 주변 친구들은 결혼의 장점으로 안정감을 많이 말하거든요. 노는 것 좋아하던 친구가 헌신적인 아빠가 된 모습을 보면 신기하죠.
보현: 헌신, 안정 말고는 장점이 없던가요? (웃음)
원혜: 저도 ‘굳이’에 가까운 것 같아요.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부모님이 결혼을 강요하기 때문에 내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온 건가’라는 생각이 요샌 들어요. 다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여건이 되면 하는 건데 그렇지 않은데 ‘굳이’, ‘부러’ 할 필요성은 못 느끼는 거죠.
보현: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출생 대책 중 ‘이건 괜찮더라’싶던 게 있었나요? 혹은 ‘이 정도면 나도 고민해 보겠다’ 싶은 제안이 있다면요?
원혜: 대구에 있는 출산 지원 정책, 다자녀 지원을 찾아보니 도시가스, 전기세 같은 에너지 비용 지원 정책이 있더라고요. 쓰레기봉투를 지원해 주는 등 실생활에서 자잘한 지원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문화센터, 수련원 이용 요금을 할인해 주거나 주차장 주차비 지원도 있고요.
수현: 민간 기업인 부영그룹에서 출생아 1명 당 1억 원을 준다고 해서 이슈가 됐잖아요. ‘대한민국 저출생 해소의 대표주자’라는 수식어도 붙던데. 인천시에서도 1억 원을 준다는 뉴스가 나왔고요. 한 번에 주는 건 아니고 18세까지 지원되는 내용을 전부 더해서 1억 원이라고 홍보 하던데. 어쨌든 현금성 지원을 할 거면 100만 원, 200만 원이 아니라 통 크게 1억 원 정도는 줘야 하지 않을까요?
원혜: 출산을 하면 부모급여를 받거든요. 월 20~50만 원 정도가 바우처로 지급되는 걸로 알아요. 제 주변에선 어린이집이나 기저귀 값에 보태더라고요. 같은 예산이라면 공공산후조리원이나 공공어린이집, 공공유치원 비율을 확대하는 게 더 급하다고 봐요. 화천군 정책이 괜찮아서 소개하고 싶은데요. 2024년 기준 출산율이 1.26명인데, 공공산후조리원에 초중고 무료에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주고, 대학생이 되면 해외연수까지도 지원해 준대요. 결국 ‘돈 걱정 하지 말고 낳기만 해라. 키우는 건 지자체가 책임질게’ 정도 돼야 믿음이 생기고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격차에 대한 고민도 덜고요.
보현: 화천군에 지원 정책이 탄탄하다고 해서 제가 지금 화천으로 갈 순 없거든요. 결국 일자리 문제도 핵심인 거죠. 아이를 낳은 사람, 낳으려는 사람에 대한 지원으로 몰려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직장 내 어린이집 설치가 대표적이고요. 낳지 않으려는 사람이 마음을 돌려야 실제 수치 변화도 생길 거라고 봐요.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남성과 여성의 격차를 줄이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 손 대기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가야겠죠.
은정: 저도 동의해요. 동성혼이나 비혼 가정 출산율이 우리나라가 OECD 꼴찌 수준이잖아요. 구조적 문제에 접근을 안 하고 당장 쉬운 것만 하다 보니 300조 원을 써도 효과가 없죠.
수현: 돌봄교육을 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봐요. 남성들은 돌봄을 분담해서 책임진다고 생각 안 하잖아요. 여전히 ‘도와준다’고 생각하니까 그걸 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하는거죠.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정과 돌봄에 대한 책임을 정규교육에서 배워야 한다고 봐요. 한편으론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정부에서 어떤 근본적 해결이 가능할까 의문이기도 해요. 장시간 노동도 마찬가지고요.
원혜: 자발적 비혼모인 사유리 씨 사례처럼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할 수도 있잖아요. 한국에선 법적 제약이 있죠. 이런 제도들을 열어 나가면 저출생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일 수 있다고 봐요. 정상성 틀 안에 가두는 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그 밑의 자녀들도 동일하게 인정하는 거죠. 원하는 결혼, 원하는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저출생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은정: 제가 눈 감아도 아이가 사회적 도움을 받으면서 잘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 낳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안 되는 사회에선 그 어떤 지원도 안 먹힐 거예요.
원혜: 지방 소멸도 저출생의 이유 중 하나예요. 사실 우리 주변만 봐도 지방에 안 있잖아요. 대학 졸업하기 전부터 수도권 취업을 준비하죠. 일자리 문제가 핵심인데, 가임기 여성들이 서울에 가면 집값, 불안정함 등 출산을 신경 쓸 여력이 없죠. 플랜75라는 일본 영화도 그렇게 시작해요. 지방의 인구가 서울로 올라가면서 지방소멸이 생기고, 고령화 사회가 된 이후를 다뤄요.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수현: 어제 부모님과 관련해서 이야기했는데, ‘어차피 이 흐름을 막을 수 없으니 이주민을 많이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들을 받을 준비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안 됐는데 무조건 받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정: 최근에 한 보수언론에서 이민자를 들이면 우리의 문화와 얼이 사라진다는 논조의 사설도 봤어요. ‘내가 애국심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보현: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요. 이주민을 확대한다는 발상의 전개도 ‘너희가 일할 동안 애 봐줄 사람을 싸게 데려오자’는 식이잖아요. 농촌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죠. 이주민 정책에 공백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이주민 확대가 저출생 대책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이, 정부 정책이 노동문제를 어떻게 보는지도 관련돼 있죠. 일자리가 없다니까 쿠팡의 야간노동, 새벽노동을 미래세대 일자리로 홍보하죠.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를 보면 서비스업,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면서 불안정성이 올라가고 있잖아요. 어떻게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겠어요.
수현: 여성노동자회에서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실태 조사를 한 적 있는데 거기에도 비슷한 토로들이 나와요. 20~30대 한국 여성 자살률이 지금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래요. 출생률은 잘 모르겠고, 그냥 살기가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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