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 대상 확대’에 의장이 서명했지만, ‘패싱’에 무력한 대구시의회

지자체-의회 간 협약으로 도입된 인사청문 제도
지난해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 마련
경기도·광주는 인사청문 요청을 강행 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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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회가 지난해 인사청문 조례를 제정하면서 스스로 대상 기관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까지 했지만, 대구시의 의회 ‘패싱’을 못 본 채 하는 무력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이 직접 서명하고, 각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검토까지 거친 후 마련된 청문 조례 제정 계획에는 청문 대상을 기존 4개에서 11개까지 확대한다는 안이 포함됐다.

지난해 인사청문회 조례 제정을 준비하던 대구시의회는 7월 14일 ‘대구광역시의회 인사청문회 조례 제정 계획’ 문건을 마련했다. 문건은 의정정책관이 마련하고 사무처장을 거쳐 의장이 직접 결제했다. 각 상임위원회 전문위원과 전경원 운영위원장 등 협조 기관으로 이름을 올리고 서명했다.

▲지난해 7월 마련된 ‘대구광역시의회 인사청문회 조례 제정 계획’은 이만규 의장이 직접 서명하고, 청문대상 기관을 11개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계획을 살펴보면,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 인사청문회 조례 제정을 준비하면서 타·시도 동향과 기존에 운영하던 인사청문 제도에서 변경되는 내용 등이 검토됐다. 대구시의회는 광역의회 동향을 정리하면서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까지 확대 예정(12~16개 기관)”이라고 했고, 주요 변경 사항으로도 기존 4개 기관에 그쳤던 청문 대상을 11개 기관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확대되는 대상에는 최근 대구시가 ‘패싱’이 아니라며 시민단체를 고발까지한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도 포함되어 있다.

대구시의회는 조례 제정을 준비하는 단계에선 인사청문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조례 제정 후엔 전혀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조례 제정 후에 이뤄진 인사청문회는 대구시와 2017년 맺은 협약에 따른 청문 대상인 대구의료원장 청문회뿐이다.

대구엑스코,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뿐 아니라 새로 대구농수산물유통관리공사가 설립돼 기관장을 선임했지만 인사청문회는 열리지 않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조례 제정 단계에선 설립 전이어서 확대 대상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해도, 엑스코, 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기관장 선임 과정에선 청문회를 ‘패싱’ 당한 셈이다.

하지만 대구시의회는 ‘패싱은 없었다’는 대구시 주장을 반박하지 못한 채 대구시가 요청하지 않으면 의회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한 반응만 보이고 있다. 하중환 대구시의회 운영위원장(국민의힘, 달성군1)은 “집행부에서 의회에 인사청문회를 요구할 때만 우리가 인사청문회가 가능하다. 의회에 청문회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조례상으로도 강제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지난해 조례 제정 단계에선 확대하는 게 계획이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 부분은 잘 모른다. 그때 깊은 고민을 안 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불만을 생각해 본 적 없다. 확대에 대한 요구가 있으니 앞으로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지자체-의회 간 협약으로 도입된 인사청문 제도
지난해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 마련
경기도·광주는 인사청문 요청을 강행 규정으로

▲조례 제정 후에 이뤄진 인사청문회는 대구시와 2017년 맺은 협약에 따른 청문 대상인 대구의료원장 청문회뿐이다.

부단체장, 지방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 기관장 인사청문회는 제주도가 2006년 처음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과 제주특별자치도 인사청문회 조례에 따라 별정직 부지사에 대한 청문회를 도입했고, 다른 광역지자체는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도입하지 않았다.

2014년에 와서야 경기도와 대전에서 의회와 집행부가 협약을 통해 도입하기 시작했고, 대구도 2017년 대구시와 대구시의회 간 협약을 통해 인사청문 제도를 도입했다. 2019년에 충북도와 전북도까지 인사청문 제도를 도입하면서 세종을 제외한 모든 광역지자체가 인사청문제도를 도입했고, 지난해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지난해부터 각 지자체는 지방자치법에 근거해 조례 제정을 앞다퉈 진행했고, 대구시의회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조례 제정을 하면서 일부 의회는 협약보다 더 진보한 청문 제도를 도입했지만, 대구시의회는 법 근거가 있고 확대의 의지를 보였음에도 법이 없을 때와 다르지 않는 실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나라살림연구소가 각 지방자치단체 인사청문회 조례 제정 현황 및 쟁점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광역의회 17개 중 14개가 조례를 도입했는데, 경기도의회나 광주시의회는 단체장의 인사청문 요청을 강행 규정으로 뒀고, 강원도의회는 연임하는 기관장에 대해서도 청문회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는 청문회를 통해 단체장에게 임명 철회를 건의할 수 있는 규정도 명문화했다.

대구시와 의회가 조례에는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 등을 모두 청문 대상으로 정해놓고도 강행 규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문 대상을 실제로 확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의회가 경기도나 광주 사례처럼 조례 개정에 나서는지 여부가 의회의 청문 확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