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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저항 속에서 들어선 청도군 삼평리 345kV송전탑. 망루를 설치하고 공사 인력을 막아선 2014년 7월 21일 강제집행 이후 10년이 흘렀다. 송전탑 완공 이후에도 꾸준히 탈핵·탈송전탑 목소리를 냈던 주민들은 이제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대책위)를 해산하고 또 다른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21일 오후 2시, 삼평리 평화회관 맞은 편에서 대책위는 삼평리345kV 송전탑 강제집행 10년 및 사진집 발간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드철회 평화회의 등을 포함한 시민 50여 명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삼평리 주민 이은주 대책위 대표는 꾸준한 연대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대책위를 해산하고 밀양 대책위와 함께 탈핵 탈송전탑 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밀양대책위와 공동투쟁을 통해 결합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이은주 대표는 “강제집행이 오늘로 딱 10년째다. 10년이 지났는데 많은 분들, 새로운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우리는 10년 전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 사이의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며 “얼마 전 한 연구자가 구술 작업을 하러 와서 물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10년 전으로 돌아간대도 다시 똑같이 싸울 것이라 했다고 들었다. 그 말씀에 가슴에 얹혀 있던 무거운 돌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책위를 통해 삼평리를 한전과 경찰이 아닌 우리 연대자들이 지키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연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대책위는 해산되지만 우리 여사님들과 저는 탈핵, 탈송전탑에 계속 나설 것”이라며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창욱 전 대책위 대표는 “여러 국가폭력의 현장에 함께 했다.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했다. 그것에 저항하고 견디고 투쟁했다. 그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며 “민주시민으로서 저항한 자체에 의의가 있다. 국가폭력에 대항해 신조를 지켰다. 우리와 같은 길을 걷게 될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자료가 될 것이다. 그간 쌓은 서로 간의 신뢰, 우정, 공동체 의식이 있다. 삼평리 투쟁이 우리를 기어이 평화로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식에서는 사진집 발간에 함께한 이재각 작가도 사진집 발간 취지를 설명했다. 이 작가는 “사진으로 대단한 무엇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진으로 그간의 일, 그간의 감정을 온전하게 기록하지 못한다”라며 “다만 우리가 온전하지 않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재차 확인하면서 사진으로 기록된 찰나의 순간, 우리 주민분들과 연대자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기억을 갖고 계속해서 연대하고 저항하자고 말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박현옥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 QIP 대표, 이재식 전 민주노총대구본부 수석부본부장, 김옥희 밀양 용회마을 주민도 연대발언에 나섰고, 우창수, 김은희 민중가수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삼평리에서는 송전선로 건설 계획이 확정된 후 주민 저항이 시작됐다. 2011년 9월 삼평리 주민은 송전선로 건설 관련 주민의견서 조작 혐의로 전 이장을 고소하고, 사업 실시계획 등 미개최를 이유로 각북면장을 고소했다. 2012년 4월 삼평리 인근 송전탑 2기(22, 24호) 공사가 시작됐다. 같은 해 7월 삼평리를 가로지르는 23호 송전탑 공사를 시도하자 주민들과 충돌했다.
같은 달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가 송전탑건설현장 진입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대 농성장을 설치했다. 2012년 9월 공사는 잠정 중단됐다. 2013년 3월 삼평리 농성장에서 평화콘서트를 열었고, 이날 대책위도 결성됐다. 대책위는 여러 반대 행사, 연대 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 4월 주민들은 공사 현장 입구에 설치된 망루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2014년 6월 밀양 송전탑 관련 행정대집행이 이뤄졌다. 2014년 7월 삼평리 23호 송전탑 공사를 위한 대체집행이 행사됐다. 2019년 6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삼평리 주민들에 대한 경찰의 회유 등이 있었다며 경찰청장의 사과를 권고했다.
투쟁 과정에선 주민들이 형사 처벌을 받거나, 이행강제금 압박을 받는 어려움도 있었고, 내부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해 진통도 겪었다. 대책위 관계자 중에선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아 수감되기도 했고, 벌금형 처벌도 여럿 받았다. 주민 일부에겐 송전탑 공사 방해를 이유로 이행강제금 부과가 결정되기도 했다. 청도경찰서장은 주민 회유를 하려고 돈봉투를 돌렸다가 징역형 처분을 받았다. 2014년엔 성폭력 및 위계 폭력 사건이 있어 진통을 겪었다. 해당 사건 후 상당 기간 가해자와 분리 조치, 재발 방지 조치 등이 이뤄지지 않은 채 2차 가해 사건도 발생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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