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7일 저녁 8시 성주군청 앞에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THAAD)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다. 해가 넘어가자 삼삼오오 성주군민들이 모였고, 촛불집회가 끝나갈 무렵에는 약 2천5백여 명이 “사드 배치 결사반대”를 외쳤다. 지난 13일부터 5일째 집회가 이어지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인원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제헌절을 맞은 성주군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며 노래 ‘헌법 제1조’를 합창했다. 이 노래는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당시 만들어진 이후 주권과 민주주의를 되새기는 집회장에서 자주 불리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군민들은 노랫말처럼, 토론과 합의를 통해 행동을 결정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한껏 즐겼다.
외부세력? “언론, 군민여론 호도하고 있어”
“사드 배치 반대하는 내가 종북좌파면 난 종북좌파다”
성주는 하루동안 ‘외부세력’과 전쟁을 치렀다. 15일 성주에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 일행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를 일부 언론이 ‘감금’이라고 보도하고, 다수의 언론에 이재복 성주사드배치저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지난 15일 외부세력이 들어와 폭력사태가 발생했다”며 외부세력 개입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안수 성주사드배치저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투쟁위 공식입장이 아니었다. 이재복 위원장은 성주 사람이 물병 던졌다고 하면 조사 받을까 싶어서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하더라”며 “언론을 통해서 여론을 호도하면서 내분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수륜면 적송리 주민 김충환 씨는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외부세력 종북좌파가 성주군에 온다고 글을 올렸다. 제가 그 글에다 이렇게 썼다. 종북좌파인 지금 나 같은 놈이 살고 있다. 누가 사드 배치 반대한다고 내보고 종북좌파라고 하면 나는 종북좌파다. 누가 사드 배치 반대한다고 나보고 빨갱이라고 하면 나는 빨갱이다. 그렇지만 죽어도 나는 사드 배치는 반대야”라고 말해 큰 호응을 받았다.
이어 김 씨는 “이완영 국회의원과 김항곤 군수는 주민 서명을 받은 항의서한을 미대사관 대사를 만나서 전달하라. 그다음 주한미군사령관을 찾아가서 항의하라”며 “일주일 내 이것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제가 성주군에 플랜카드를 걸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플랜카드 문구를 “일본에 나라 파는 이완용이도 있지만, 미국에 나라 파는 이완영이도 있다”, “국회의원 시켰더니 사드 선물 가져왔나”로 쓰겠다고 밝혔다.
가천면 주민 배윤호 씨는 “외부인 개입으로 ‘폭력사태’가 일어났다며 보도하는데, 기자들이 우리 이야기를 전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보도한 것”이라며 “평생 성주에서 산 여기 있는 이재동, 결혼하고 27년 동안 농사지은 대가면 윤금순이 외부세력이냐”며 “이들은 훗날 성주군으로부터 표창받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외부세력이라면 저도 외부세력으로 뽑히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 씨가 “우리를 이간질하고 흔드는 이들에게 속지말자. 진짜 외부세력은 15일에 나타난 총리와 장관, 그리고 대거 몰려온 경찰들이다”고 말하자 참가자들은 큰 환호를 보냈다.
17일 제헌절, 토론하고 합의하고 행동 결정하는 성주군민들
참가자들은 촛불집회 내내 “사드배치 절대 반대”, “밀실행정 일방통보” 등의 구호를 쉬지 않고 외쳤다.
사회를 맡은 이재동 성주군농민회 회장은 “오늘은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진 날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고 국민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면 국회 비준을 받도록 하고 있다”며 “사드는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든다. 헌법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헌법 제60조 1항에는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 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계속되는 공연과 자유발언에서 참가자들은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하면서 행동을 결정했다.
성주읍 김경수 씨가 “방송을 보면서 화가 났다. 우리가 총리를 감금했나? 아니다. 총리가 버스 안에서 안 나온 것”이라며 “그래서 제안을 드린다. 우리 의견을 호도하는 방송국에 항의를 하자. 매일 하나씩 돌아가면서 방송국 게시판에 글을 올리자”고 제안했다.
먼저 항의할 방송사를 참가자들이 같이 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상파 <KBS>와 종편 가운데 <TV조선>에 대한 항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또, 저녁 토, 일요일 집회 시작 시간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사회자가 금, 토, 일은 집회 시간을 1시간 당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청소년을 중심으로 금요일은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자 참석자들은 토, 일요일만 촛불집회를 1시간 당기기로 결정했다.
서울에 올라가 국방부 앞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온 주민이 매일 5명씩 상경 1인 시위 참가자를 제안했고, 군민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발적 참가를 결정했다. 그리고 18일 오전 10시 군청 앞에서 ‘동네미술팀’의 그림티셔츠 제작 일정도 함께 공유했다.
새누리당 탈당 줄이어…17일 집회에서 106명 탈당계 작성
전날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일방적 사드 배치 결정을 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에 대한 항의 행동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17일 집회장 한쪽에서는 새누리당 집단 탈당을 위한 탈당서류가 마련됐다. 성주군민들은 눈치 보지 않고, 새누리당 탈당계 작성에 줄을 섰다. 투쟁위 집계 결과 17일에는 106명이 작성했다. 이후 며칠 동안 탈당자를 더 모아 집단제출할 계획이다.
경북 의성 농민 출신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발언에 나서 큰 환호를 받았다.
김현권 의원은 “제가 외부세력이면 여기 계시는 분은 전문시위꾼입니다. 저는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파하고 하소연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당연히 찾아가서 들어야 하는 사람”이라며 “저는 한 명의 국회의원으로서 한반도에 사드 배치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제가 본대로 원내대표단에다가 이야기를 전달하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당론으로 (사드 반대를) 정해서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8일 한민구 장관 대구서 기자간담회…항의 방문
19~20일 대정부 질의 방청, 21일 대규모 상경 집회 예정
저녁 10시 20분께 집회는 마무리됐다. 성주군민들은 18일에도 촛불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 향후 사드 배치 반대 투쟁 계획도 세웠다.
투쟁위는 18일 오전 11시 30분 대구에 있는 육군 제2작전사령부에서 진행되는 지역언론 편집국장, 취재본부장 20여 명과 한민구 장관의 간담회 항의 방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15일 성주에서 주민 여론에 대한 수렴 없이 떠났던 한 장관이 언론을 만나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19일과 20일에는 선정한 주민 대표들이 서울에 올라가 사드 배치에 관한 국회 대정부 질의장에 방청할 계획이다. 21일에는 약 2천여 명 이상의 주민이 서울에 올라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