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8일 쿠팡 택배노동자 고 정슬기 씨가 경기 남양주 자택에서 사망했다. 정 씨는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하청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퀵플렉스’였다. 정 씨의 사인은 심실세동‧심근경색 의증, 과로사 대표 증상 중 하나다. 쿠팡은 대리점과 계약한 간접고용노동자이므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유족과 노조는 과로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정 씨는 주 6일 근무하며 하루 10시간 30분, 일주일 63시간을 일했다. 산재를 판단할 땐 심야노동은 노동시간을 30% 할증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정 씨의 일주일 노동 시간은 77시간 24분이다. 산재 인정 과로사 기준인 주당 60시간을 훨씬 초과한 노동시간이다. 물량도 하루 평균 250개, 숨지기 50일 전부터는 340개로 급증했다.
쿠팡CLS가 정 씨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한 정황까지 확인돼, 원청이 직접 지휘‧감독을 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책위가 공개한 쿠팡CLS와 정 씨 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쿠팡CLS는 “6시 전에는 끝나실까요”, “부탁드립니다. 달려주십쇼” 등 업무를 직접 지시했고, 정 씨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했다. 대책위는 “쿠팡CLS는 배송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해고될 수 있는 상시 구역 회수(클렌징)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심리적 압박 또한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오전 민주노총 대구본부, 택배노조 대구경북지부 및 연명단체들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을 추모하며 쿠팡에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과로사이며,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낳은 사회적 타살이다. 쿠팡CLS 원청은 업무 카톡방을 통해 배송마감시간을 지킬 것을 지속적으로 거세게 압박했고 고인의 주당 노동시간이 위험한 수준임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타 구역 배송지원, 추가 노동까지 지시했다”며 정부가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경욱 택배노조 대구경북지부장은 “도대체 얼마나 더 쓰러지고 희생해야 말도 안 되는 쿠팡CLS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바뀌겠나”라며 “쿠팡CLS를 제외한 모든 택배사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방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엔 분류작업 배제, 사회보험 가입, 주 60시간 준수 등이 담긴다”고 비판했다.
원 지부장은 “쿠팡CLS는 배송마감 준수율 등을 이유로 언제든 구역을 회수해 사실상 해고 상태로 택배노동자를 빠뜨리는 클렌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만든 죽음이라고 강조했다.
쿠팡은 <뉴스민>에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의 업무시간과 업무량은 전문배송업체와 택배기사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 CLS는 택배기사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당 작업 일수와 시간에 따라 관리해 줄 것을 계약 내용을 통해 전문배송업체에 요구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