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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은 1984년 무크지『민중시·1』(청사, 1984)에 「지옥선」 연작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조선업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을 강렬하고 사실적인 언어로 토해냈는데, 아홉 편의 연작 가운데 무려 여섯 편이 조선소의 산재 사망 사건을 전면에 드러내었다.
“조립공장 사이에는 좋은 날씨에도 회오리 바람이 휘감겨 / 죽은 인부들이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곳이라 했다”(「지옥선·1」) “비켜 비키란 말야! / 죽는 꼴 첨 봐! 일들 하러 가지 못해! / 앰불란스 달려가고 / 뒤따라 걸레조각에 감은 / 펄쩍펄쩍 튀는 팔 한 짝 주워 들고 / 싸이렌소리 따라 뛰어가고”(「지옥선·2」) “네 살점을 한 주먹씩 몸서리치는 파도 위에 / 흩뿌릴 때까지도 / 빗방울 하나 없이 타기만 하던 그해 팔월 / 파리보다 못하게 여겨지던 우리 목숨”(「지옥선·3」) “떨어져 죽은 인부들의 빛바랜 초상화가 빗속에 흐느꼈다 / 간밤에 나와 함께 짜장면을 나눠먹었는데 / 짜장면처럼 까맣게 타서 거적에 쌓여 가는 친구의 얼굴이 / 어두운 날들, 질척이는 바닥에 핏물 되어 흘렀다”(「지옥선·5」) “어지럽다 쓰린 뱃속 지상 100m / 밧줄 하나에 건 목숨들 / 해가 바뀌고 동짓달이 오기 전까지 / 족히 50명이 넘게 이곳에서 죽었다지만 /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지옥선·7」) “어지할꼬 떠나지 못하는 / 영정들이 늘어나오”(「지옥선·8」)
첫 시집『만국의 노동자여』(청사,1988) 제3부에 실려 있는 ‘의병의 노래’와 제4부에 실려 있는 ‘온산 공해 단지’ 연작은 모두 진혼곡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온산 뱃노래 – 온산 공해단지에서」는 아예 상여 노래 형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갈매기야 고기들아 너도함께 가자서라/ 우리모두 죽는고개 어서넘세 바삐넘세” 앞서 열거한 시들은 죽음의 원인과 맥락이 또렷하다. 그런데 주술적인데다가 귀기(鬼氣)까지 내뿜고 있는「무덤을 찾아서」와「까마귀」는 앞서 나온 죽음과 성질이 다르다.「무덤을 찾아서」의 전문을 감상해보자.
“개고개 폭폭한 길을 넘었다 / 미쳐 버릴 것 같던 고향 황토길 / 한여름 땡볕에 숨먹히는 길따라 / 패랭이꽃 금속처럼 달아오르고 / 당집의 기와마다 버섯이 피어 / 깊은 울음 아직도 혼령처럼 남은 길 / 알 수 없는 형의 무덤 / 청산가리 뽀얗게 덮혀 사라진 얼굴 // 무당의 신춤처럼 고목들이 흔들리는 길가에 / 낯익은 얼굴, 미친 여인네 헤죽거리며 / 어머니 손금처럼 터진 강바닥까지 / 어린 아이를 안은 듯 돌맹이를 안고 따라와 / 니 어데가노 니 어데가노 씹하러 가나 / 아이 낳아 날 다오 / 뻐꾸기 울음처럼 여인은 울고 / 형의 무덤 아직도 알 길이 없는데 / 청산가리 뿜듯 타는 태양조차 / 씹하러 가느냐고 / 꽹과리 두드리며 따라온다” 이 시에 나오는 형 만큼 한국 현대시에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도 없다. 화자는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르는 형의 무덤을 찾아 한여름 땡볕에 길을 나섰는데(오자가 아니라면, 그의 숨은 땡볕에 ‘막히는’게 아니라 ‘먹힌다’), 난데없이 돌맹이를 안고 나타난 미친 여인. 그녀의 애절한 간청. 이 시는 뛰어난 민중주의 서정시이지만, 김지하가 초기시에 구사한 이런 죽음 애호는 백무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민중주의 서정시를 쓴 시인들은 시 속의 상징적 죽음을 통해 사적 욕망의 덩어리인 자신을 죽이고 통일·민족·민주주의·공동체와 같은 공적인 것과 만나고자 했다. 지식 계층에 속했던 그들은 그런 상징적 의례로써 민중이 되고자 했다. 상징은 실제보다 강한 것일 수 있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김지하는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다고 광광 울어댔고(코믹했다, 대학이 다 뭐라고!), 양성우는 이명박 정권에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게슈타포’였다!). 백무산은 상징적 죽음이 필요 없는 기층민중이었다.
지식 계층의 민중주의자들이 애용하는 상징적 죽음은 물리도록 되풀이해도 안전하지만, 각종 산재사고와 죽음이 일상인 노동자는 사정이 다르다. ‘죽음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식의 부활은 관념이다. 노동자 시인 백무산의 현실주의·당파성·투쟁 정신은 “죽음은 싫다”(「지옥선·7」)라는 선언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