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민주노총, 혐오와 차별에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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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HD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에 실린 글 하나가 논란이 됐다. 회사 홍보물에 담긴 집게손가락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다. ‘정신적 문둥병에 오염된 지진아들이 한국 남성을 혐오하기 위해 만들어진 손가락 기호 모양’,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며 소동을 부리는 수구 꼴페미들의 남성비하 광고’, ‘페미들은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받게 하고 약물 처방으로 격리시키면 되지만’ 같은 원색적 혐오표현이 실렸다.

‘집게손가락 논란’ 자체는 아주 사소한 일이다.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ㄷ’를 그리는 손 모양은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서 남성의 신체 부위를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이 온라인 커뮤니티는 2017년 문을 닫았지만, 논란은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일부 남성 커뮤니티의 주장과 여기에 힘을 싣는 보수 정치인, 논란 자체만을 보도하는 언론 때문이다. 일단 사과하고 보는 기업도 논란을 키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

▲12일 발간된 HD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 현재는 내려갔다.

현대중공업지부 소식지 글은 ‘정신적 문둥병에 오염된 지진아들’이라는 표현에서 신체장애,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도 포함하고 있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대신 금속노조 여성위원회는 12일 “금속노조 내부의 한계를 딛고 조합원들이 여성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과 권리를 존중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도록 보다 현장에 밀착하여 성인지 교육, 인권 교육을 확대하겠다”며 사과했다. 15일 현대중공업지부도 “집단으로 토의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여성 인권과 장애인 등 모든 차별과 혐오를 배척하는 데 힘쓰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냈다.

지난해 말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 속 캐릭터가 0.1초간 집게손가락 모양을 취한 것을 두고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여성이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일부러 삽입한 집게손가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넥슨은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제작물 작업에 참여한 외주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색출 작업이 시작됐고, 협력업체 여성 애니메이터가 지목됐다. 그는 퇴사 신청을 했지만 이후 해당 장면을 그린 게 남성 협력업체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민주노총은 여성단체들과 함께 “넥슨이 영상을 비공개한 건 혐오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비판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산하 넥슨지회가 “(집회에 대해) 지회와 상의가 없었다. 의도를 떠나 이용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수정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며 민주노총 탈퇴를 시사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조합원들에게 보내며 논란을 키우는 일도 있었다.

문제는 집게손가락 논란 자체가 아니다. 이 사태에 대응하는 주체들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기업은 성차별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지만 현실에선 극단적인 남성들의 민원에 동조해 작업물을 내리거나 여성노동자의 생존권을 침해하고 있다. 정부는 반복되는 여성혐오에 대한 근로감독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책임이 있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여성, 장애인, 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보일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보여줄 것이다. 모든 노동자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운다는 구호에 맞게 민주노총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길 바란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