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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다! 고맙습니다!”
“상고를 기각한다.” 대법원 주심 판사의 짤막한 한마디에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이 법정에서 작게 외쳤다. 대법관의 선고로 이제 해고자들은 해고자가 아니게 됐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최종 승소함으로써 부당해고가 확인됐고, 선고 시점부터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로 최종 인정된 것이다. (관련기사=아사히글라스 해고자 승리···공장으로 돌아간다(‘24.7.11.))
햇수로 10년 동안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 11일 오전 대법원 선고 공판에는 조합원들이 오랜 세월 연대에 나섰던 다른 노조, 정당, 시민사회계 100여 명도 함께 참석해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오랜 세월 염원한 탓일까, 조합원들의 표정은 기쁨 반, 얼떨떨한 심정 반이 섞인 듯 보였다. 이들은 최종 판결을 확인하기 전까지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패소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다. 패소 시 계획까지 상정해 마련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활동을 이어간다는 원칙을 세운 터였다.
이날 오전 6시, 대법원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남기웅 노조 수석부지회장은 말했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지만, 법정에서 패소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패소가 투쟁의 끝은 아니기에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 합니다.”
선고 후 법정을 나선 조합원들은 함께 공판에 참석한 연대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법원을 나서, ‘현장에서 뜨겁게 노조활동 펼치겠다’고 손으로 쓴 현수막을 펼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22명이 10년째 달려왔습니다. 연대로 일상을 보내며, 때론 즐겁게, 때론 괴로운 시간을 버티며 함께 달려 온 22명 동지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연대 동지들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이제 1막이 끝났습니다. 이제 민주노조 깃발 들고 2015년 해고될 당시 시작한 노조활동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민주노조는 염원입니다. 2막은 당당하게 현장에서 동지들과 활동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차헌호 지회장이 승소 소감을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법원 앞에서 차 지회장과 장석원, 탁선호 변호사를 헹가래를 치며 승리를 자축했다.
다시 구미로 내려오는 길, 조합원들은 당장 머릿속이 복잡하다. 변호인을 통해 사측이 업무 복귀 절차를 개시한다고 알려 왔다. 복수노조 상황에서 소수노조로서 전략도 고민이다. 사측의 또 다른 압박 전략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어떠한 길이든, 아사히글라스 공장에 복귀해 바깥이 아닌 안에서 노조 활동을 의미있게 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긴다.
남기웅 부지회장은 “판결을 들으니 속이 시원했다. 일터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공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소수노조가 된다. 노조가 어떻게 활동할지 여러 고민이 된다”며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잘 준비하겠다. 지금껏 연대해 주신 분들이 계셔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도 길거리에 해고되어 싸우고 있는 옵티칼 동지들, 또 다른 동지들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같이 힘내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수일 조합원은 “일을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조 활동은 더 열심히 할 것이다. 대비도 잘해서 복귀할 것”이라며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판결로 들으니 그동안의 감정이 솟구친다”고 전했다.
이영민 조합원은 “들어가서 우리가 살아온 10년을 알려주고 싶다. 살아서 돌아왔다고. 안에 있는 노동자들과도 함께 잘 해보고 싶다”라고, 민동기 조합원은 “싱숭생숭하다. 오히려 억울한 게 더 올라오는 것 같다. 선고 전까지 긴장됐는데, 선고를 듣는 순간 오히려 분노가 올라왔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다고 생각하니.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공장 안의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아사히글라스와 하청노동자인 해고자들과 근로자파견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근거로 ▲아사히글라스의 업무상 지시에 구속돼 업무를 수행했고 ▲하청업체가 실질적으로 아사히글라스의 사업에 편입됐으며 ▲하청업체가 아사히글라스의 인원 배치 계획에 따라 노동자를 채용하고 작업, 휴게시간도 아사히글라스의 계획에 영향을 받은 점 등을 꼽았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