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 조례 폐지하라’는 비판에 발끈한 대구시, 왜?

대구행복진흥원, 법률과 조례에 따른 청문 대상에는 해당
법률과 조례는 인사청문을 임의 조항으로 해서 재량권 부여
대구시, 지난해 산하 기관에 청문기관 확대 의견 조회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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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대구행복진흥원) 원장 선임 과정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일을 두고, 시민단체가 대구시의회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대구시가 발끈하고 나섰다.

10일 대구시는 ‘대구경실련의 대구행복진흥원장 인사청문회 관련 성명서에 대한 대구시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현행 대구시 조례상 대구행복진흥원에 대한 인사청문은 의무사항이 아니므로 대구경실련에서 주장하는 ‘패싱’은 사실이 아니”라며 “근거 없이 시비걸고 무고하는 시비단체, 무고단체에 대해서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는 “2023년 8월 10일 제정된 ‘대구시의회 인사청문회 조례’ 3조에 따르면 ‘시장은 지방공사 사장, 지방공단 이사장, 출자·출연기관의 기관장에 대해 인사청문을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대구행복진흥원장의 인사청문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며 “대구경실련에서 주장하는 ‘패싱’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구경실련은 자세한 내용 확인조차 없이 시정에 시비 걸고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며 “대구시에 대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이다. 근거 없이 시비 걸고 무고하는 ‘시비단체’, ‘무고단체’에 대해선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반복했다.

대구시를 발끈하게 만든 대구경실련의 ‘시비’, ‘무고’란 지난 9일 대구경실련이 발표한 성명이다. 대구경실련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인사청문회 조례 ‘패싱’에도 무기력한 대구광역시의회. 대구시의회는 차라리 대구광역시의회 인사청문회 조례를 폐기하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신임 대구행복진흥원장 선임 과정에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지난 8일 대구시는 신임 대구행복진흥원장으로 배기철 전 대구메트로환경 사장을 임명했다. 배기철 신임 원장은 대구 동구청장 출신으로 홍 시장 취임 후 대구교통공사 자회사인 메트로환경 사장에 임명됐고, 22대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장에서 물러난 바 있다. 홍 시장이 선거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측근 인사를 회전문으로 다시 돌려쓴 셈이다.

이를 두고 대구경실련은 “배기철 원장 임명보다 더 주목하는 사안은 홍준표 시장이 시의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원장을 임명한 부분”이라며 “홍 시장이 인사청문 대상자를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한 것은 대구시 산하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 장을 인사청문 대상자로 한 ‘대구광역시의회 인사청문회 조례’ 제정 이후 세 번째”라고 지적했다.

이어 “홍 시장의 원장 후보자에 대한 시의회 인사청문회 ‘패싱’과 이에 대한 시의회의 무기력한 태도는 ‘이만규 의장의 2년 재임 기간 시의회 위상이 높아져 시 집행부와 대등한 관계로 만들었다’는 의회 의원 절대 다수의 주장이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라며 “만일 인사청문회 ‘패싱’이 수면 아래에서 조정된 결과라면 이는 시의회의 권한과 기능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라고 의회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대구시 산하 공사·공단, 출자·출연기관의 장을 대구시의회 인사청문 대상으로 정한 ‘대구광역시의회 인사청문회 조례’는 의원입법, 그것도 운영위원회 제안으로 제정된 조례”라며 “그런데도 의회는 홍 시장의 인사청문회 ‘패싱’, 인사청문회 조례 무력화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한 홍 시장과 이를 방치한 시의회를 비판하며, 시의회에 차라리 조례를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고 힐난했다.

▲2023년 10월 대구시의회는 김시오 대구의료원 신임 원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했다.

대구행복진흥원, 법률과 조례에 따른 청문 대상에는 해당
법률과 조례는 인사청문을 임의 조항으로 해서 재량권 부여
대구시, 지난해 산하 기관에 청문기관 확대 의견 조회

대구경실련은 앞서 엑스코, 대구농수산유통공사 사장을 청문회 없이 임명할 때도 같은 취지의 비판을 해왔다. 비판처럼 대구행복진흥원 원장 등이 법과 조례가 정한 인사청문 대상인 건 사실이다. 원래 지방의회 인사청문회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지방의회의 인사청문회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이에 따라 대구시의회도 조례로 관련 규정을 명문화하게 됐다. 법과 조례는 정무직 부시장·부지사,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의 장 등을 인사청문 대상으로 규정하고 실제 실시는 단체장(시장)의 요청으로 할 수 있도록 정해뒀다.

대구시의 경우 2017년 법적 근거와 상관없이 의회와 대구시 간 협약을 통해 인사청문 제도를 도입해 운영해왔다. 다만, 그 대상은 협약에 따라 대구도시철공사, 대구도시공사, 대구시설공단, 대구환경공단, 대구의료원 등 5개 기관으로 제한했다. 이는 홍 시장이 취임해 공사·공단 구조조정을 하면서 대구교통공사, 대구도시개발공사,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대구의료원 등 4개 기관으로 줄었다.

대구시는 이 같은 전례와 법률 및 조례상 ‘의무’로 강제하지 않은 것을 두고 ‘패싱’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입법 취지를 몰각한 주장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단체장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해주기 위해 법에서 의무로 규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로 해석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목적이 인사 전횡의 위험성을 제어하고 후보자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기 위함이라는 걸 고려하면, 폭넓게 대상 기관을 확대하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실제로 대구시의회가 지난해 조례 제정을 추진할 때 인사청문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도 대구시와 의회간 이뤄진 바 있다.

▲지난해 인사청문 조례 제정을 앞두고 대구시는 산하 기관에 청문기관 확대 의견 조회를 실시한 바 있다.

지난해 조례 제정을 앞둔 7월, 대구시는 산하 지방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 11곳을 상대로 청문대상기관 확대에 따른 의견수렴을 실시했다. 그 결과 엑스코와 대구행복진흥원을 제외한 9개 기관이 확대하는데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된 행복진흥원은 사회서비스원 운영·지원에 대한 별도 법률이 있고 여기에 임원 임명 절차에 대한 규정도 있으므로 여기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대구시 스스로 청문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놓고도 법률과 조례상 청문 대상에 대한 규정이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대구경실련 비판에 발끈하고 나선 셈이다. 홍 시장 취임 후 대구시가 대구경실련의 활동에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엔 대구경실련을 사실과 다르게 무고 혐의로 고발했다가 취하하는 난맥상까지 보인 바 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