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협약 맺었는데 회사는 조용, KEC 노조 구조고도화 시도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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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구미의 반도체 제조업체 KEC가 올해 초 구미시와 전력반도체 생산 투자협약을 맺었지만, 실제 행보는 ‘생산시설 없는 반도체 기업으로의 전환(팹리스)’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KEC는 구미공장 유휴부지 5만여 평에 호텔, 백화점, 물류센터, 오피스텔 등을 지어 상업시설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세운 바 있고, 지난해에는 구미시·경북도‧한국산업단지공단과 협력해 디지털 물류센터를 설립했다. 노조는 구조고도화 시도가 공장 폐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1호 기업인 KEC는 지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다섯 차례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 참여를 추진했으나 전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2019년 KEC가 발표한 구조고도화 사업 계획에 따르면 회사는 국가산단 내 공장부지 33만㎡ 중 유휴지 16만 5,000㎡를 매각해 쇼핑몰, 복합터미널 등을 지을 구상을 세웠다. 노사 갈등, 소상공인 반대, 공장용지 특혜 등이 부적격 판정 이유로 알려졌다. (관련기사=한국산업단지공단, KEC 구조고도화 사업 ‘부적격’ 결정(‘19.10.23.))

    지난해 KEC는 구미시‧경북도‧한국산업단지공단과 협력해 디지털 물류센터를 설립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구미지부는 이런 움직임이 애초 세웠던 구조고도화 계획의 포석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사측이 장기간에 걸쳐 구미공장 생산품을 외주화시키고 있다. 2025년까지 시험라인만 남기고 전량 외주화시키는 게 회사의 목표”라고 주장한다.

    노조는 “최근 전장사업 철수 후 30여 명의 노동자가 4개월째 대기발령 상태에 있다. 2010년 이후 KEC의 신규투자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2022년 경영분석에 따르면 감가상각비 감소 추세가 뚜렷했다. 2021년 감가상각비는 29억 원으로 전체 영업비용의 1.2%에 불과했다”며 신규투자 없이는 향후 지속적인 생산 및 기업활동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금속노조 구미지부는 3일 오전 구미시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미시에 투자협약 이행을 당장 점검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금속노조)

    노조는 KEC가 구미시와 맺은 투자협약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다. 지난 3월 5일 KEC는 구미시와 구미공장 내 전력반도체 제조설비와 시설투자를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이지연 구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양포동)이 구미시 기업투자과에 요청해 받은 투자양해각서에 따르면 투자는 기존 구미공장에 올해 4월부터 내년 4월까지, 648억 원의 규모로 진행될 예정이다. 고용계획은 72명이다. 2027년까지 152명을 고용할 계획이란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노조는 KEC가 그동안 구조고도화 시도를 여러 번 해 온 점, 어셈블리 공장은 태국으로 이전하고 올해 전장사업까지 철수시킨 점, 최근 공장부지에 물류센터‧카페 등 상업시설을 들인 점,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점, 구미시가 노조와 면담을 거부한 점 등을 들어 투자협약이 팹리스로 가기 위한 속도전이라 의심하고 있다.

    3일 오전 금속노조 구미지부는 구미시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겉으론 신규투자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구조고도화를 추진하는 걸로 보인다”며 구미시에 투자협약 이행 점검을 촉구하며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김성훈 KEC지회 사무장은 “투자협약을 맺었지만 실제 집행될지, 외주화해서 생산하려는 움직임을 숨기기 위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투자계획이 나오면 회사가 잔치 분위기여야 하는데, 내부에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사측이 정보 공개에 폐쇄적이고 디지털 물류센터를 시작으로 구조고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이니, 구미시가 적극적으로 집행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