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

봉강공동체 언니들의 화요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언니들의 고민
건강한 방식으로 짓는 다품종 소량생산 텃밭농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촌과 농민의 생존길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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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초입, 비가 추적추적 오는 화요일 오전 10시 공동작업장에 모인 언니들은 앞치마와 위생모자부터 착용했다. 한편에선 두꺼운 박스를 접고 다른 한편에선 농산물 바구니를 옮겼다. 살림을 맡은 고유정 언니(54)는 누가 어떤 작물을 몇 개 가져왔는지 종이에 바쁘게 체크했다. 김정열 언니(56)는 “아침에 땄다”며 작고 통통하게 생긴 토종고추를 내놨다. 양이 많지 않아 아삭이고추와 함께 담아 보내기로 했다.

7월 3일 화요일 아침, 상주시 외서면 봉강2리에 있는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를 찾았다. 올해로 15년 차를 맞은 ‘언니네텃밭 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은 횡성·오산·고성·영광·나주·제주·무안 등 전국에 8개 공동체를 두고 있다. 대표 사업인 제철 꾸러미는 구성원이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농산물과 반찬을 함께 포장해 소비자에게 직배송하는 방식이다. 두부, 달걀, 김치, 간식과 제철채소 4~5가지로 구성된다.

7월 첫째 주 봉강공동체 제철꾸러미에는 평사유정란, 부추김치, 자두, 호박, 아삭이고추, 토종고추, 양배추 등 9가지가 담겼다. 기후위기는 꾸러미 작업에도 다양한 변수를 불러오고 있다. 더위에 상할까 봐 7월 말부터 한여름에는 두부를 보내지 않는데, 올해는 일찍 더워진 탓에 두부가 일찍 빠졌다. 자두에도 사연이 있다. “오늘 의성에서 농사짓는 정미 언니 자두가 들어가요. 농사지은 지 오래됐는데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래요. 날씨가 갑자기 더우니까 자두가 갑자기 빨개진 거지. 그래서 꾸러미에 급하게 넣게 됐어요. 원래 넣으려던 미숫가루는 다음 주에 넣어도 되니까” 김옥순 언니(57)가 말했다.

업무 분장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 또 따로 움직였다. 50대 언니들이 박스를 접고 테이프를 붙이자 60대 언니들은 쪼그리 작업의자에 앉아 작물을 하나하나 살폈다. 80대 언니들은 방 안에서 계란을 신문지로 감싸 포장했다. 제철꾸러미, 채식꾸러미, 1인꾸러미 구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포장을 맡은 언니들은 구성품을 두세 번 셌다. 언니들은 예리한 눈으로 확인을 마친 작물과 그 자리에서 담근 김치까지 168개 박스에 넣었다.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는 제철꾸러미, 1인꾸러미, 채식꾸러미를 운영 중이다.

봉강공동체 언니들의 화요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언니들의 고민

봉강공동체의 꾸러미 사업은 다른 마을보다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매주 화요일 150개 이상의 꾸러미를 작업해 전국 각지의 소비자에게 보낸다. 꾸러미 판매량은 꾸준히 늘었다. 2009년 연간 500여 개에서 공동작업장 건설 후 3,000여 개로, 2019년 KBS ‘다큐멘터리 3일’ 출연 후 7,000여 개로 늘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약간 줄었다가 다시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엔 봉강마을의 특수성도 있다. 경상북도에서 가장 먼저 유기농업을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농민회 운동이 활발히 이뤄진 지역으로, 지금도 유기농업을 짓는 농민 비율이 높다.

봉강공동체 구성원은 봉강2리 주민 10명과 인근마을 주민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연령대도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수익은 가져오는 농산물의 종류와 개수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고, 그중에도 토종작물은 가격을 좀 더 쳐준다. 보통 종자상회에서 구입하는 씨앗은 2~3년이 지나면 농사가 잘 안되기 때문에 다시 다국적기업인 종자회사에서 비싼 로얄티를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토종씨앗 보존은 언니네텃밭의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꼽힌다. 구성원들은 이 씨앗으로 각자 2~3가지 이상의 토종농사를 짓고 있다.

매일 논과 밭을 오가는 언니들은 이상기후가 농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느낀다. 특히 작년 날씨는 꾸러미 작업에 영향을 미칠 만큼 유별났다. 7월, 8월 장마철에 잎채소와 가지, 오이를 거의 보내지 못했다. 근처 가톨릭농민회 같은 비교적 규모가 큰 공동체에서 조금씩 가져와 보내거나 열무 등 다른 작물을 대신 보내는 식으로 지나왔다.

수확을 해도 상태가 썩 좋지 않으니 보내면서도 언니들은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꾸러미 안내문에 가지런하게 담겼다. “긴 장마에 작물들도 시름시름 앓고 있어요. 구름 사이로 잠시 나오는 햇살은 또 너무 뜨거워서 몸살을 앓다가 지쳐서 축 늘어집니다. 봄에 아무리 밑거름을 많이 했어도 호박이 잘 안 달린다고 해요. 언니들 집집마다 달린 호박을 다 모아서 보냅니다. (2023년 8월 1주 농사 이야기)” 올 초엔 작년의 경험을 되짚으며 언니들이 씨를 더 많이 뿌리며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많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은 관행농업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건강한 땅을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왼쪽의 작고 통통한 게 토종씨앗으로 재배한 가지다.

여성농민, 유기농업의 어려움을 나누고 극복하는 공동체로서 언니네텃밭은 구성원 개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상주로 귀농한 김옥순 언니(57)는 “밭농사는 시어머니 따라, 논농사는 남편 따라 보조 역할만 하다가 언니네텃밭 하면서 농사를 주도적으로 짓게 됐죠. ‘올해는 옥수수를 심자’고 제안도 하고, 내 수입도 따로 생겼어요. 기후위기가 진짜 큰일이라고 느낀 건 4~5년 전부터인데, 유기농 쌀에 새카만 점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동안은 약을 안 쳐도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내 나름대로는 이것도 기후위기라 보고 있죠”라고 전했다.

박경숙 언니(66)도 말을 얹었다. “서울에 살다가 먹거리가 자유롭지 않아서 2015년 귀농했어요. 손주들 먹거리만큼이라도 내가 농사 지어서 줘야겠다는 생각에 왔는데 우연히 언니네텃밭하고 연이 닿았죠. 오늘은 대파를 가져왔는데 원래 청국장, 조청, 콩물 같은 가공을 많이 해요. 귀농해서 수입이 없으면 불안할 텐데, 육신은 좀 고달파도 같이 하니 생산성도 있고 재밌어요. 다만 날씨가 걱정이지. 작년에 고추를 심은 게 잘 안돼서 올해는 100개로 줄여봤어요. 약을 안 치고 하려니까 더 어렵죠.”

봉강공동체의 시작을 주도한 김정열 언니는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개인적으론 이상기후를 2018년쯤부터 확 느꼈고, 구성원과는 2~3년 전부터 관련 이야기를 나눴어요. 꾸러미를 보내려면 작물이 다양해야 하는데, 노지 생산은 점점 어려워져요. 이번 주는 그래도 괜찮죠. 고추랑 가지는 올해 처음 따는 거예요. 장마가 얼마나 길어지는지, 폭염이 얼마나 뜨거울지 앞으로가 문제죠”

▲급히 투입된 경북 의성의 정미 언니네 자두. 때이른 더위 때문에 자두가 빠르게 익었다. 원래 넣으려던 미숫가루는 다음 주에 넣기로 했다.
▲언니네텃밭은 건강한 먹거리를 소비자와 직접 거래한다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여성 농민들이 공동체에 소속돼 함께 생산하고 자립할 수 있다는 것도 강조되는 부분이다. 매주 화요일 공동작업이 끝난 다음에는 함께 밥을 해 먹는다.

건강한 방식으로 짓는 다품종 소량생산 텃밭농사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촌과 농민의 생존길

기후위기가 걱정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꾸러미가 더욱 중요하다고, 언니들은 생각한다. 건강한 방식으로 짓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텃밭농사가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복잡한 유통구조를 벗어나 직접 연결되는 방식도 강조한다. 꾸러미에 넣는 안내문에는 그래서 누가 어떻게 생산한 작물인지,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구체적으로 담긴다.

총무 고유정 언니가 컴퓨터 앞에서 택배박스에 넣을 꾸러미 안내문을 적으면서 설명했다. “전체 회원은 240명인데 격주로 받는 분이 많아요. 요새 농산물값이 워낙 비싼데 꾸러미 값은 15년 동안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2만 5,000원에서 시작해 지금은 3만 원 정도이니까요. 생산자 언니들이 꾸러미로만 먹고사는 게 아니니까 가능한 거죠. 보통 자기 수입의 10~20% 정도라 공동체가 싸게 농산물을 매입해서 소비자한테 보낼 수 있어요. 대파가 시중에서 4,000원 정도 한다면 공동체에는 2,000원에 주는 식이에요. 무엇보다 그동안 해 온 공동체성이 있으니 가격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나이 많은 언니들이 비교적 수월한 작업을 맡는 건 언니네텃밭이 갖는 공동체성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동휘의 안동대 대학원 민속학과 석사 논문 ‘언니네텃밭으로 본 여성들의 공동체적 경제활동과 지위 변화-상주시 외서면 봉강2리를 중심으로’(2022.6)는 이렇게 설명한다. “언니네텃밭의 다양한 실천을 통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는 대립적 관계라기 보다 오히려 서로를 강화하고 있다. 공적인 측면과 사적인 측면이 맞물리면서 서로 밀고 당기며 대안공동체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공동노동을 하더라도 회원마다 일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가치 추구로 인한 경계는 회원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이게 하는 구심점이 된다.”

그럼에도 형평성 문제가 생기진 않는지 묻자, 유정 언니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물론 구성원들이 나이가 점점 들어간다는 고민이 있죠. 70~80대 언니들은 힘든데도 이렇게 나와서 같이 작업을 하는 게 재밌으니까 계속 하시거든요. 그런데 언니들만큼 우리는 농사를 못 지어요. 아무리 생산계획을 짜도 다품종으로 맞춰가는 게 잘 안 돼요. 여기에 뭐를 심고, 이거를 심고 나면 다음엔 뭘 심고 하는 게 언니들은 머릿속에 다 있어요.”

작업을 마친 뒤 밥 당번인 2조 언니들이 늦은 점심을 준비했다. 당번이 아닌 언니들도 밥을 안치고 된장에 오이를 무쳤다. 잠깐 사이 방 안에 허리를 붙이고 누운 언니들에게 언니네텃밭 15년의 의미를 물었다. “우리도 15년 전에는 젊었어! 일주일에 하루 같이 모여서 작업하고 밥 먹는 게 재미지.” 다들 같은 대답을 내놨다. 늦은 오후 우체국 택배차가 실어 간, 건강한 먹거리로 채운 꾸러미는 전국 각지로 배송 중이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