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간디학교와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함께 합니다”

제천간디학교 학생이 전하는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과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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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제천간디학교의 ‘움직이는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해 고원일 학생과 5월 27일부터 6월 28일까지 5주간 활동을 함께 하면서 2019년부터 느슨하게 이어져온 제천간디학교와 아시히글라스 해고노동자들 간 연대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아래 기사는 고원일 학생이 뉴스민 기자들의 지도를 받아 작성하고, 뉴스민 편집자가 사실 관계 수정 등 최소한의 퇴고 후 게재합니다.

▲ 2019년 6월 16학번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수요문화제를 끝내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아사히비정규직지회 유튜브)

2019년 9월 일본 미쓰비씨 그룹 계열사 아사히글라스가 제천간디학교 학생을 고소했다. 일본의 대기업 집단 계열사가 대한민국 학생을 고소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2019년 6월로 돌아간다.

2019년 6월 10일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이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농성장에 찾아갔다. 이들은 제천간디학교의 교육과정인 ‘움직이는 학교’를 통해 비정규직 투쟁의 최전선인 아사히 농성장을 방문했다. ‘움직이는 학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직접 단체를 선정해, 그 단체에서 약 3주간 현장학습을 하며 배움을 얻는 교육 과정이다. 제천간디학교 16학번은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그해 현장학습 단체로 선정해 3주의 기간 중 2주를 농성장에서 지내며 투쟁했다.

처음 시작은 가벼웠다. 그저 ‘비정규직 문제를 보러 가는구나’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현장학습은 이후 6년 동안 느슨한 연대로 이어졌다. 16학번 학생들 2주간 숙소와 농성장을 오가는 활동을 하면서 몸짓 공연, 합창, 피켓 시위, 현수막 제작 등 다양한 투쟁 활동에 참여했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서로를 ‘동지’라 부르며 연대감을 키워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차헌호 지회장은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이 출근할 때에 맟춰 몸짓 공연을 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도 놀랐고, 우리도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함께했던 투쟁 활동도 좋았지만 학생들과 함께했던 소소한 일상이 너무 좋았다. 함께 밥을 먹고 족구를 하고 등산도 하고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그런 활동이 너무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고 그런 활동들 덕분에 더욱 의미있는 관계로 발전한 것 같다”며 투쟁 활동과 더불어 함께했던 활동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16학번 이성민은 이때를 떠올리며 “짧은 시간동안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 우리는 노동 운동의 현장에서 그분들의 정(情)과 그분들의 사명감 혹은 열정을 직접 보고 느꼈고, 지회 분들은 우리 10대 청소년의 활기, 천진난만함에서 새로운 힘을 얻으셨던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훨씬 더 끈끈한 동맹을 맺은 계기가 된 거죠.”

하지만 이들의 활동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해 9월 아사히글라스가 조합원 5명과 제천간디학교 학생 2명을 재물손괴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해 6월 19일 아사히글라스 정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도로 위에 락처킬을 한 걸 문제삼아 고소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제천간디학교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제천간디학교 내에서는 고소를 대응하기 위해 대책위가 꾸려졌고, 대책위는 학부모회, 대안교육연대 등과 함께 약 5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준비했다.

다행히 2019년 10월 4일에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훗타 아사히글라스 대표에게 “당시 집회는 합법적인 행사였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아스팔트에 스트레이를 칠한 것을 문제삼아 학생들까지 고소한 행위는 너무 과한 조치”라며 지적했고, 훗타 대표는 “학생들을 고소할 생각은 없었다”고 답했다. 10월 7일 아사히글라스는 설훈 의원에게 ‘국정감사 후 진행경과 보고’라는 문서를 보내 간디학교 학생 2명에 대한 고소를 취하할 것이라는 입장 밝혔다.

이때 고소를 당했던 16학번 이기휘는 “아사히글라스의 고소가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고소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크게 무섭거나 긴장하지는 않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마찬가지로 고소를 당했던 이성민은 “나라는 개인이 고소를 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름만 두 명일 뿐 우리 반 전체를 대상으로 겁주려고 했던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아사히 측에서는 학생들에게 겁을 주고 ‘다시는 여기를 오지 마라’라는 의미로 고소를 한 것 같은데 오히려 고소 사건이 계기가 돼 더욱 끈끈한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 제천간디학교를 방문한 차헌호 지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경쟁이 아닌 공동체 정신을 실천하는 학교를 다녀왔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차헌호 지회장 페이스북)

차 지회장의 말처럼, 같은 해 10월 13일엔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제천간디학교를 방문했다. 이날 제천간디학교에서는 ‘문화의 밤’ 이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행사에서 아사히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를 상영했다. 차 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쟁이 아닌 공동체 정신을 실천하는 학교를 다녀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제천간디학교 교사회, 학부모회도 교류를 이어왔다. 아사히에서는 매년 교사회에 김을 보냈고, 교사회에서는 그에 대한 답례로 투쟁기금을 모아 전달했다. 학부모들 중에서도 일부는 직접 농성장에 찾아가 1박 2일로 벽 공사를 진행하며 연대를 이어갔다.

물론, 제천간디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아사히글라스와 연대 활동에 긍정적이었던 건 아니다. 특히 아사히글라스가 학생들을 고소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학부모회와 교사회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학생들과 노조 간의 느슨한 연대는 계속됐다.

2023년에는 16학번의 뒤를 이어 20학번이 아사히 농성장을 찾아갔다. 20학번과 달리 하루 동안의 활동이었지만, 20학번에게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노동자들과 함께한 것 자체가 큰 배움으로 다가왔다.

20학번 박연제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함께하며 나의 시선에 큰 변화가 있었다. 농성장에 가기 전엔 기업 입장으로만 생각했고, 아사히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 속에서 남겨진 노동자들이 무시받고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반성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생각과 인식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학번 김윤아는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활동에 대해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라고 말햇다.

20학번 김윤아도 “아사히 투쟁은 내가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18살이고 앞으로 노동자가 될텐데, 이분들의 얘기가 내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던 것 같다.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이나 연민 같은 감정보다는 현대 사회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많이 생겼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소통을 담당한 것은 20학번의 ‘노동팀’이었다. 노동팀에서 간담회, 점심식사, 퇴근 선전전, 현수막 제작 등의 활동을 준비했다. 노동팀은 우리 사회에 노동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팀이었기에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20학번에게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방문은 현장학습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16학번을 경험했던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는 아쉬움은 남겼다. 차 지회장도 20학번과 함께했던 활동은 좋았지만, 기간이 짧아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함께했던 활동 중 가장 준비를 많이 했던 활동은 수요문화제였다. 수요문화제에서 몸짓 공연, 합창, 투쟁 기금 전달 등을 했다. ‘노동팀’이 학교 축제에서 모금을 진행해 모은 기금을 “당신들이 들꽃이라면 우리가 흙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같은 해 9월 6일엔 노동팀이 학교 페이스북에 ‘아사히이김’ 사업을 홍보했다. ‘아사히이김’은 해고 투쟁을 이어가는 노조가 투쟁기금을 마련하는 일환으로 진행하는 판매 물품이다. 노동팀은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겪고 있는 일을 글로 적어 페이스북과 밴드에 올렸고 이를 통해 ‘아사히이김’ 약 100개(150만원)를 판매하는 성과도 올렸다.

이외에도 일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매해 열리는 결의대회에 참여했고, 몸짓 공연과 투쟁 발언 등을 하며 연대를 이어갔다. 16학번 학생들은 2019년 이후 꾸준히 결의대회에 개인적으로 참여했고, 지난해 결의대회에는 20학번 학생들도 참여했다.

<못 다한 이야기>

#차헌호 지회장

16학번과 함께 연대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대안학교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냥 일반 학교와 조금 다른 학교라고 생각만 했고 ‘학생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경험하러 오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기대했던 부분은 오랫동안 투쟁을 하다보니 새로운 기운도 필요했고 새로운 마음을 가질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했다. 그래서 오기 전에 우리끼리 회의를 했다. 학생이라고 막 대하지 말자 등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막상 함께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간디학교 동지들과 함께한 이후 아사히 투쟁이 더욱 풍부해진 것 같다. 모든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게임하고 그림 그리고 현수막 만들고 산에도 갔던 기억이 다 난다. 또 노동부에 가서 진정하고 호소하는 실습도 했고 노동자들이 출근할 때 율동을 하면서 출근 선전전도 했다. 소소한 일상이 좋았다. 함께 밥을 먹고 족구를 하고 삼겹살을 구워먹고. 그런 활동들이 너무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활동들 때문에 더욱 의미있는 관계로 발전한 것 같다. 그렇게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헤어질 때 우는 동지들도 있었다.

학생들이 고소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황당했고 ‘아사히스럽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는 고소를 한 이유는 겁을 주려고 한 것 같다. 겁을 주며 여기는 오면 이런 피해를 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고 고소를 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역효과가 나서 더욱 끈끈하게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투쟁이 승리하는 날 간디학교 동지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만든 승리”라고 말하고 싶다.

▲차헌호 지회장(왼쪽)과 안진석 부장이 제천간디학교와 연대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안진석 대외협력부장

학생들과 함께 했던 연대가 지금의 투쟁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사회에서 차별과 착취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직접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관공서와 사측에서는 우리의 투쟁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그래서 학생들을 고소하여 우리의 투쟁을 꺾으려 했다. 또 정확한 정황을 가지지 않고 고소를 했는데 그 고소를 진행해준 법률 기관에 분노를 느꼈다.

노동조합을 하기 전 나는 여러 가지의 의문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사무직은 조금 더 일찍 퇴근하고 우리는 왜 더 늦게 퇴근하는지 등의 의문이 있었는데 노동조합을 하면서 그런 의문이 하나 둘씩 풀린 것 같다. 또 학생들이 직접 공부해서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먼저 지나온 길에 대해 알려주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학번 김윤아

아사히 투쟁은 내가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18살이고 앞으로 노동자가 될텐데, 이분들의 얘기가 내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던 것 같다.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이나 연민 같은 감정보다는 현대 사회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많이 생겼던 경험이다.

또 이제는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직면해야할 문제다. 청소년들이 노동 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청소년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가 미래의 노동자임을 인지하며 미래를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현재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는 무관심하다. 이런 현실을 보며 투쟁을 계속해서 “더이상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사히 투쟁이후 평소에 관심 없었던 노조 관련된 기사나 글을 찾아서 읽게 되고 동성로에서 자주 하는 노동운동에 보다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학번 박연제

아사히 투쟁에서 현수막을 담당했다. 현수막에는 노동자 22명의 얼굴과 <공단에 들꽃 피다>라는 문구를 넣어 메인 현수막을 만들었다. 그림을 조금 더 섬세하게 그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나는 원래 노동운동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사히 투쟁에 대해서는 정확한 인지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사히 투쟁 이후 그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회사가 필요하면 해고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분들과 함께 투쟁하며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시선과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었다. 그 변화를 계기로 8주년 결의대회에도 참여하여 몸짓 공연도 하며 연대를 이어갔다.

#16학번 이성민

아사히 투쟁은 지금의 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투쟁과 연대활동은 비정규직 철폐의 움직임, 노동 인권 운동이 내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투쟁의 현실을 배웠고 동시에 연대의 따뜻함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서 했던 연대활동과 고소당한 경험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고소를 당했을 때는 나라는 개인이 고소를 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 반 전체가 고소당한 거라고 생각했고, 이름만 두 명일 뿐이고 우리 반 전체를 대상으로 겁주려고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대응도 학교 차원에서 준비했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고소 당한 사람이 나라고 해서 특별히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16학번 김정호

아사히 투쟁은내 삶의 큰 영향을 미쳤다. 아사히 투쟁 이후 어디서든 부당한 대우에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노동 현장에 들어가서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부당한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또 어떻게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스무 살에 자취할 때도 노조 활동을 했고, 내가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예전부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 고맙다는 말을 계속 하고 싶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내가 나의 권리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분들을 통해서 나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16학번 이기휘

아사히 투쟁을 함께 하며 단합심도 느꼈고, 그 경험을 토대로 부당한 일, 대우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봤기 때문에 기획력과 행사 진행에 있어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고소를 당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선량한 시민으로 살 때 고소를 당하기가 쉽지 않은데 고소를 당하니 웃기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아사히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소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섭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변호사분도 학생한테는 고소 진행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취재·글=고원일
제천간디학교 ‘움직이는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