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인 미등록 이주여성 강제단속 중 부상까지

임신 초기 임산부, 본국으로 돌아간 유산 사실 확인
이주민단체, "한국 사람이어도 그랬겠나···" 비판

17:08
Voiced by Amazon Polly

“한국 사람이라면 수술부터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춘기 경주이주노동자센터장)

“그 부부가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아이였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이제 그만 남편이랑 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어 너무 슬픕니다” (통역인)

임신 중이던 태국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출입국 단속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뒤 강제출국(강제퇴거) 됐다. 태국에서 치료를 위해 병원에 방문한 여성은 현지에서 유산 사실을 확인한 걸로 전해진다. 법무부는 이송 과정에서 임신과 부상 사실을 알고 산부인과와 정형외과 등을 다녀왔다고 밝혔지만, 이주민 단체는 부상 당한 임산부에 대해 충분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은 채 퇴거 조치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뉴스민> 취재를 종합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A(38) 씨는 지난 20일 오후 경북 경주 한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던 중 불법체류 단속을 당했다. 대구출입국, 울산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외국인 불법고용 제보를 받고 해당 공장에 대한 합동단속에 나선 상태였다.

A 씨 단속 소식을 접하고 지원에 나선 경주이주노동자센터와 A 씨 통역인 B(33) 씨에 따르면 A 씨는 도주 과정에서 발을 다쳤고, 출입국에 붙잡혔다. 6월초에 임신 6주차라는 사실을 확인한 A 씨는 단속 후 이송 차량에서 단속반에 임신과 부상 사실을 알리며 치료를 요청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송 과정에서 임신 사실을 인지한 후 산부인과를 먼저 찾아 태아 상태를 확인했고, 이후 정형외과를 방문해 발 부상에 대한 깁스 등 치료를 진행했다. 졍형외과 진료 과정에서 전화로 통역을 도왔던 B 씨는 “당시 의사 말로는 발목을 일단 쓰지 말라고 했다. 힘도 주면 안 되고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며 “그 정도면 입원하는 게 맞지 않을까 했는데, 출입국으로 다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단속 다음날(21일), 이춘기 경주이주노동자센터장은 보호소에서 A 씨와 면회를 했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당시 A 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리엔 부목을 댄 상태였다. A 씨는 이 센터장에게 통증을 호소하면서, 보호소 내에선 체온 확인 외엔 별다른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걸로 전해진다. A 씨는 빠른 치료를 원한다고 했고 센터는 보호일시해제 등을 통해 국내 치료 방안을 알아보기로 했지만, 같은 날 오후 A 씨는 강제퇴거 조치됐다.

이 센터장은 “(A 씨가) 한국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임산부는 특히 초기에 조심해야 해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법무부는 본인이 원해서 출국시켰다고 하지만 추방부터 하려고 상황을 몰아세웠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설령 태국에 보내달라 했더라도, 인권을 고려한다면 종합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작업장 단속 방식 문제도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경주에서 작업장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2016년엔 발목 부상, 2017년에도 양쪽 다리 골절 사례가 있다. 공장 단속을 하면 사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텐데, 위험 요소를 알면서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강제퇴거 조치된 A 씨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B 씨에 따르면 A 씨의 발목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태이지만, 염증이 심해 대기하는 상태라고 한다. 또 임신 초기 단계였던 태아도 유산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B 씨는 “아기는 유산됐는데, 유산된 태아가 자연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유산 수술(소파술)도 해야 한다”고 전했다.

B 씨는 “A 씨 부부가 오랫동안 갖고 싶어 했던 아이였다. 임신 6주 진단 후 태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진료 예약을 잡아둔 상태였는데 그 와중에 단속된 것”이라며 “유산 사유가 무엇인지, 언제 유산된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유산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비행기를 태워 추방한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관련한 <뉴스민> 질의에 “조속한 출국 및 자국에서의 추가 치료를 희망하는 본인 의사에 따라 신속히 출국 조치했다”고 밝혔고, 유산 가능성이나 위험성에 대한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한편 A 씨의 남편 C 씨는 자진 출국을 준비하고 있다. B 씨에 따르면 C 씨는 첫 아이를 잃어 상심한 상태고, 인터뷰는 원하지 않으며, 서둘러 한국을 떠나길 원하고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