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한계” 농산물 수입 반대 외치는 농민들 서울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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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농민 2,000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전국농민대회’를 연다. 300명 가량의 경북 농민들도 트랙터와 농기계를 몰고 서울에 간다. 이들은 농민 생존권 쟁취와 국가책임농정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매년 심화하는 이상기후는 올해도 여지없이 논과 밭을 헤집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농산물 수입 확대,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등 물가 안정 대책만 내놓고 있다.

지난해 논란이 된 일부 과일값 상승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경상북도농업기술원 농산물 가격동향에 따르면 27일 사과(부사, 10kg 상자 기준) 도매시장 경락가격은 8만 2,544원으로 전일(7만 1,120원) 대비 16%, 전년(5만 3,628) 대비 54% 올랐다. 같은 날 기준 배(신고) 15kg 상자는 20만 9,973원으로 전일(18만 411원) 대비 16.4%, 전년(5만 759원) 대비 313.7%나 올랐다.

농민들이 짚는 농산물 가격 상승의 원인은 ‘기후재난’이다. 지난해 저온, 우박, 폭우, 폭염, 태풍 등 형태를 가리지 않고 이상기후가 발생하며 농업재해가 이어졌다. 올해는 연초부터 잦은 비로 일조량 부족이라는 새로운 재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료 포함 식량자급률이 20%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식량 재난의 파도를 더 거세게 맞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수입 확대를 통해 농산물 가격 문제만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21일 정부는 ‘제25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농·축·수산물, 식품·외식, 석유류 등 주요 품목별 가격 동향과 물가 안정방안을 점검하며 “수입 과일은 할당관세 등을 통해 4만 톤 이상을 추가 도입하고, 하반기에도 할당관세가 연장된 만큼 추가 물량을 신속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가 안정을 주요 기능 중 하나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도 농산물 수입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놓는 가 하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수입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이 총재는 “수입 제한은 농가를 보호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정책이지만 그로 인해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 수입의 다양화를 추진하는 것이 좋다”며 “어떤 수준으로 얼마나 빨리 추진할지에 대한 부분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결정해서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다.

▲27일 오전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앞에서 ‘경북농민투쟁선포식’이 열렸다.

근원적인 기후재난 문제에 대해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정부 기관이 수입 확대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농민들은 관련 기관들을 규탄하고,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27일 오전엔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북연합이 ‘무차별적인 농산물 수입으로 농업파괴, 농민 말살하는 윤석열 정권 퇴진, 경북농민투쟁선포식’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윤석열 정권은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농산물 수입을 내놓으며 무차별적으로 저관세‧무관세로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이는 농업의 지속성, 농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농산물 수입은 국내 농산물의 가격 폭락을 조장해 농가의 소득이 감소하고, 동시에 해당 품목의 생산기반과 식량 주권을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는 데서 농민들의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이재동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은 “한국은행 총재는 먹거리 수입으로 물가를 잡는다는 발상을 한다. 윤석열 정권의 농업 정책은 하나도 없다”며 “2008년 전세계적인 식량난이 발생하고 농산물 수출입이 통제됐을 때, 필리핀에선 폭동이 일어났다. 농민들의 삶을 보장하고 이 땅의 농업을 지켜야 오천만 국민의 살길이 열린다. 오죽 답답했으면 한창 일할 시간에 한국은행 앞에 왔겠나”라고 말했다.

정영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북연합 회장도 “지금의 농산물 가격은 생산비도 안 된다. 한파, 냉해, 폭염, 폭우, 태풍으로 농사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 재난과 같은 기후위기 속에서 농사를 짓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물으며 “다른 나라들은 앞다퉈서 자국의 안정적인 식량 체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의 역할은 농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시면 전국농민총연맹 경북도연맹 사무처장은 “7월 4일은 11월 20일 농민총궐기를 선언하는 자리이자 윤석열 정부에 ‘이제 진짜 한계’라고 경고하는 자리이다. 윤 정부 들어 농업 문제, 특히 농민 생존권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선 전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도 사과꽃이 평년보다 일찍 폈다가 갑자기 더워진 며칠 사이 수정이 안 되고 져 버렸다. 다음주 극한으로 비가 쏟아지는 장마가 오면 논밭 할 것 없이 다 타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8개 농민단체가 연대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은 7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농민대회를 연다. 농민의길은 국가책임농정 실현, 무분별한 할당관세 저지, 주요 농산물 가격 보장,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