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이후 스포츠윤리센터 4년, 징계요청 이행율은 절반도 못 미쳐

올해 1월 취임 신임 이사장 징계 이력 문제
박지영 이사장, “소송 끝에 징계 무효 결정받아”
미국 세이프스포츠센터는 징계 불이행시 예산 지원 중단하는 권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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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2020년 6월 26일, 철인 3종 국가대표 유망주였던 故 최숙현(당시 22세) 선수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최숙현 선수는 경찰, 검찰,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인권침해 피해를 진정했지만, 회유와 합의 종용만 겪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체육계의 인권침해 사건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가 부각됐고, 일명 최숙현법이 제정되고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됐다. <뉴스민>은 체육시민연대와 함께 최숙현 선수 사망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3차례에 걸쳐 살폈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최숙현 선수가 잠들어 있는 경북 성주군의 한 납골당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떠나고 두 달이 지난 후 국회는 일명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2020년 8월 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에 있던 스포츠비리신고센터,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 지원센터 등을 통합해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인권침해 조사와 피해자 보호 ▲징계정보시스템 운영 ▲비리 및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스포츠윤리교육 ▲스포츠인권 실태조사 ▲인권감시관 제도 운영 등 5가지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4년간 센터 운영을 지켜본 최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59) 씨는 “스포츠윤리센터가 숙현이 사건 때문에 생겼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초기에 운영이 잘 안 됐는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최 씨는 윤리센터가 지난 4년 동안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했지만, 여전히 센터가 지고 있는 숙제는 있다. 지난 1월, 3개월 간의 공백 끝에 새로 선임된 이사장은 2019년 이른바 ‘매직 코리아’ 논란으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고, 센터가 조사해 요청한 징계에 대한 체육회의 이행율은 절반 수준을 밑돌고 있다. 만연한 인력 문제는 이곳도 마찬가지다.

▲2020년 8월 설립한 스포츠윤리센터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올해 1월 취임 신임 이사장 징계 이력 문제
박지영 이사장, “소송 끝에 징계 무효 결정받아”

2023년 국정감사에서 여러 문제가 지적된 이후 3개월 동안 스포츠윤리센터는 수장인 이사장이 공백 상태였다. 공백 끝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1월 17일 박지영 신임 이사장을 임명했다. 박 이사장은 수영선수 출신으로 수영연맹 부회장과 한국여성스포츠회 부회장을 지내 현장과 행정 경험을 갖추고 있어 기대가 컸지만, 의문도 제기된다.

박 이사장이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당시 벌어진 ‘매직 코리아’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은 소송을 거쳐 징계가 무효로 판정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징계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 스포츠윤리센터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센터는 2023년 8월부터 체육회 등과 채용계약을 하는 선수나 지도자, 심판 및 임·직원의 징계 이력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당시 수영연맹 착오로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은 규정에 맞지 않는 유니폼과 수영모를 지급 받았고, 이를 교정하는 과정에서 유니폼엔 테이프로 덧대 ‘KOREA’를 쓰고, 수영모에도 매직으로 ‘KOR’을 적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일로 연맹 간부들이 징계를 받았는데, 당시 부회장이었던 박 이사장도 2020년 대한체육회로부터 3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다만, 박 이사장은 징계 후 재판을 통해 무효 판정을 받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 이사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부당하게 징계를 당했다고 생각해서 대한체육회하고 소송을 했다. 법원에서 무효 판정을 받았다. 후보자 검증 단계에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정보시스템에서 이력을 발급 받았고, 징계가 없는 걸로 검증을 마쳤다”고 말했다.

이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선수나 지도자가 문제가 있다면 현장에서 활동을 지속할 수가 없다. 현장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그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징계정보시스템 운영도) 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은 “징계가 무효가 됐더라도 스포치윤리센터의 신뢰성에 마이너스가 되는 부분일 수밖에 없는데, 인권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장을 정부가 임명할 때는 조금 더 철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요청에도 징계 이행율은 절반 못 미쳐
미국 세이프스포츠센터는 징계 불이행시 예산 지원 중단하는 권한도

스포츠윤리센터가 체육계 인권침해나 비리를 조사한 후 이뤄지는 징계 이행율도 문제다. 센터는 조사를 마치면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직접 행하지 못하고 체육회 측에 요청해야 한다. 체육회가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력을 더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김현수 위원장은 “윤리센터가 대한체육회에 징계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면 체육회는 경기단체에 이를 전달한다. 대한체육회가 마음만 먹으면 1건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고, 실제 202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실을 드러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센터가 요구한 징계 249건 중 99건, 39.8%만 징계가 이뤄졌다.

센터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최근에 통계를 파악해보니 징계요청을 했을 때 처벌이 약화되거나 이행하지 않은 불이행율이 49% 정도였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징계권을 가질 수 있을지 법률 검토를 꽤 오래했는데, 경기단체에서 징계해야한다는 판결이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육회장 영향력이 있으니 선수들이 신고 자체를 잘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포츠공정위원회에 대한체육회장 영향력이 미치지 않도록 분리하는 게 필요한 일이다. 7월 22일 진종오 의원실하고 이 문제 관련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포츠공정위는 각 경기연맹,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징계 심의를 담당하는 기구다.

하지만 김현수 위원장은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손대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스포치윤리센터에 대한 신뢰, 전문성을 높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며 “체육계가 윤리센터의 전문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통합이 필요하다. 미국의 세이프스포츠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은 2017년 자주적으로 관리, 제재를 담당하는 독립된 인권기구 세이프스포츠센터(us center for safesport)가 있다. 세이프스포츠센터는 18년 동안 미국 여자 체조 국가대표팀 팀닥터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수백 명의 젊은 선수를 착취하고 성폭행한 일명 ‘래리 나사르 사건’이 2016년 세상에 알려지면서 설립됐다.

세이프스포츠센터는 인권침해 가해자에 대해 조사 및 징계 요구권에 더해 징계 요구를 거부하거나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조직에 국가 재정 지원을 중단시키는 권한이 있다.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반면 스포츠윤리센터는 징계 불이행 시에도 제재 수단이 없다보니, 가해 행위를 확인하고도 피해자가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포치윤리센터, “기한 내 사건 처리율 90%까지 올라와”
체육시민연대, “인권침해 조사와 수사의 지향점 달라야”

▲2023 스포츠인권·비리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 인권침해 비리 대응행동 결과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는 응답률이 매우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적인 조사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지난 26일 故 최숙현 선수 4주기를 맞아 경북 성주군 추모공원을 찾았던 박 이사장은 “안 그래도 취임 이후 계속 노력하고 있다. 문체부에서도 조사관을 늘리려고 하고 있고, 올해는 사건의 기간 내 처리율이 90% 정도까지 많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최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 씨는 “숙현이 사건을 맡았던 조사관이 한 사건만 다루지 못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길어진다고 하더라. 빨리 조사해서 피해자, 가해자 분리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인데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면서 사건을 빠르게 조사하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건 처리 속도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조사 과정에서 사건이 외부로 공개되면 피해 선수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는 등의 문제를 고려하면, 인권적 측면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현수 위원장은 “인권침해 조사와 수사는 지향점이 달라야 한다. 윤리센터는 사건처리 건수를 실적으로 보는 관행이나 사건처리 기간을 업무성과로 보는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들 가운데 윤리센터에 접수 후 피해사실이 언론에 공표되는 등 2차 피해 문제로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