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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2020년 6월 26일, 철인 3종 국가대표 유망주였던 故 최숙현(당시 22세) 선수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최숙현 선수는 경찰, 검찰,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인권침해 피해를 진정했지만, 회유와 합의 종용만 겪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체육계의 인권침해 사건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가 부각됐고, 일명 최숙현법이 제정되고 스포츠윤리센터가 설립됐다. <뉴스민>은 체육시민연대와 함께 최숙현 선수 사망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3차례에 걸쳐 살폈다.]
최숙현 선수가 떠난 지 4주기를 맞은 26일 아버지 최영희(59) 씨를 경북 칠곡군 모처에서 만났다. 벌써 4년이 흘렀지만, 먹먹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2시간 남짓 이야기를 하던 최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가,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힘을 주어 말하곤 했다.
최 씨는 “경찰, 검찰, 국가인권위원회, 경주시청, 대한체육회, 연맹 이런데 하소연해도 진정을 넣으나 마나였어요. 전혀 도움이 안 됐죠. 지금 생각하면 제일 안타까운 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키는 거였어요. 가해자 쪽에서 숙현이 동료들한테 회유, 협박, 증거인멸시도를 했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라며 진정하면 할수록 피해자가 더 막막해지는 제도를 짚었다.
그 때문에 일명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스포츠윤리센터도 출범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있다.
최 씨는 “체육회가 스포츠윤리센터의 요청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숙현이 사건 때도 그랬어요. 경북체육회에서 제3자를 통해 감독하고 합의를 종용했어요. 체육회와 연맹 사이에 형성된 카르텔이 있었던 거죠. 그나마 스포츠윤리센터가 조사를 하면 골치 아플 수 있겠다는 예방 효과 정도는 있다고 보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부족한 게 현실이에요. 윤리센터 징계 요청을 연맹이 무시하지 못하도록 해야 돼요”라고 말했다.
조금이나마 제도적인 개선이 이뤄졌다고 생각한 최 씨는 딸이 남긴 뜻을 이어갈 생각이다. 최 씨는 “희생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잖아요. 다만, 숙현이 사건 이후 피해자, 가해자 분리가 필요한 것, 제도적으로 인권침해 문제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 등을 이어나가는 게 제 몫이 아닐까 생각해요”라며 “장학회든, 재단이든 비인기 종목에서 묵묵히 운동하는 이들을 지원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모두 끝이 났지만, 최영희 씨와 다른 피해자들은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 대한체육회, 법무부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상황이다. 최 씨는 손해배상금 지급 결정이 나면 배상금을 재단이나 장학회 설립에 쓸 계획이다.
제도의 문제도 언급했지만, 최 씨는 개인적인 아쉬움도 꺼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숙현이 이야기를 많이 못 들어줬어요. 숙현이도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하는데 까지 열심히 한 번 해보라고 했어요. 그만두려고 하는 이유를 한 번 제대로 들어보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참 후회가 돼요.”
최 씨는 운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지도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도자들이 무조건 바뀌어야 해요. 선수 때 경력, 학교 때 경력만으로 학교폭력이 있어도 지도자를 했잖아요. 이제는 연수원에서 6개월 정도 인성교육, 인권교육도 확실하게 한 후에 지도자 자격증을 발급해줘야 돼요. 그리고 학교 체육 지도자들에 대한 예우도 높여야 해요. 스포츠인들이 비참하게 살면 그게 학생들한테 고스란히 가는 거죠.”
최 씨는 마지막으로 언론에 대한 바람도 털어놨다. “4년 전에 숙현이 사건 터지기 전에 모 언론사에 제보도 했어요. 그런데 보도가 안 됐고, 취재를 하는데도 가해자 쪽을 먼저 하니까 바로 입막음이 이어졌어요. 그런데 2주 지나고 숙현이 사건 터지고 나니까 제보했던 언론사에서 먼저 전화가 왔어요. 이슈가 되어야 하니까 이해는 가지만, 피해자 입장을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천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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