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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HIV 감염인이 장애인 등록을 거부당한 뒤 구청(장)을 상대로 반려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가 당사자 적격을 문제 삼았다. 소송 당사자가 구청(장)이 아닌 신청을 접수 받은 동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소송 당사자를 동장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동장에게 반려 처분 권한이 없어,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은 민원을 접수받는 동장이 반려 처분한다면 앞으로 반려에 대해 이의신청할 기회 자체가 없어지는 결과가 돼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26일 오후 2시 40분 대구지방법원 행정1단독(재판장 배관진)은 HIV 감염인 여운 씨가 남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반려처분취소청구 소송 두 번째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부는 여운 씨가 남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구청에 당사자 자격이 없다는 구청 측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측에게 피고 경정 신청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변론기일에 앞서 남구청은 이번 사건 반려 처분을 구청의 대표인 남구청장이 아닌 구청 소속 동장이 한 것으로, 남구청장에게는 당사자적격이 없어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은 동이 구청의 위임을 받아 사무 일부를 처리하는 하부행정기관이므로,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 등록 업무 처분청인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처분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상관없이, 실제로 처분한 처분청이 피고 적격이 있는 걸로 보인다. 피고 경정 여부를 알려달라. 피고를 (남구청으로) 유지한다면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 경정을 하더라도 처분 권한이 없는 처분청에 소송을 한 것이기 때문에 무효가 될 것”이라며 “결국 처분 권한이 없는 행정관청이 처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고 측 변호인은 “현실적으로 동장이 반려 처분을 하는데, 그렇다면 (재판을 통한) 이의신청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 같아 부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 이후 여운 씨를 지원하는 김지영 레드리본인권연대 대표는 “구청장에게 법적인 권한과 책임이 있어서 구청장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는데 당황스럽다. 피고 당사자 적격 관련해 판례나 법리를 검토할 것”이라며 “처분 권한이 없는 동장이 반려 처분 권한을 행사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면 앞으로 동장이 반려하면 소송을 통해 이의신청도 못 한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여운 씨도 “권한 없는 사람이 반려해서 문제라는데, 그렇다면 왜 권한 없는 사람이 반려한 것인가”며 반발했다.
남구청은 여운 씨의 장애인 등록 신청이 애초 구비 서류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신청을 구청에 넘기지 않고 동 차원에서 반려처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등록은 양식을 갖춘 신청서를 동이 접수 받아 연금공단 심사를 거친 뒤 마지막 절차로 구청장이 승인하는 것이지, 이번 사례에서는 서류 미비로 심사 자체도 이뤄지지 않고 반려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운 씨는 HIV 감염인은 장애인 등록 심사를 받기 위한 서류를 발급 받을 길이 제도적으로 막혀있어 서류를 첨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등록을 위한 구비 서류인 장애진단 심사용 진단서를 발급 받으려 해도, 장애 유형을 정의하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HIV 감염인의 면역장애의 장애 정도를 판정할 기준이 없어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류 미비를 이유로 반려 처분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신청인의 사정이 장애인에 해당하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반려된 HIV 감염인 장애인 등록, 국내 최초 소송 첫 공판(‘24.4.17.))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