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박석영 감독 신작 ‘샤인’, 씨네마니또 상영회 탐방기

괴짜 감독의 근본적 질문, 거대한 전환의 씨앗을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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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가 극장에 걸리기까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과정

매년 완성되는 장편독립영화 중에서 영화제에 초청받아 공개되는 영화는 일부에 불과하다. 단편영화는 그나마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일정한 수준을 담보한다면 영화제에서 가늘고 길게 선택되기를 노려봄직도 하지만, 장편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다. 일단 장편 신작을 뽑아줄 영화제가 많지 않고, ‘프리미어’ 상영 즉, 해당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 규정을 적용하는 국제영화제 기준 때문에 어느 영화제에 출품해야 할지 치열한 수 싸움도 벌여야 한다.

그렇게 1차 관문을 뚫고 마침내 감격의 영화제 상영이 성사되면 일단 기분은 뿌듯해진다. 좀 규모 있는 영화제라면 레드카펫도 밟아 보고,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한다. 하지만 꿈 같은 시간은 신기루처럼 스쳐 지나가 버린다. 이후엔 고생해서 만든 영화의 2차, 3차 소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영화제와 상영회 요청이 오기만 기다리다 지치는 나날이 이어진다. 상대적으로 영화제에서 평판이 좋았거나, 혹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면 영화제 전후로 미팅이 잡힌다. 배급사와 교섭을 통해 배급계약을 체결하면 이제 2차 관문, 즉 ‘개봉’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예전보단 개봉하는 영화 숫자가 많이 늘어나긴 했어도 여전히 좁은 문이다.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은 험난하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애를 먹으면 일단 작품이 완성되기만 하면 좋겠다며 푸념하는 일이 허다할 테지만, 만들고 나면 새로운 단계의 시련이 쏟아진다. 개봉준비 과정이 특히 그렇다. 영화제 상영 전후로 주변에서 쏟아진 평가를 반영해 편집을 수정하거나 홍보용 영상 클립을 별도로 제작하는 건 물론이고, 홍보마케팅 회사나 개봉준비팀과 회의와 준비의 연속이다. 얼어붙은 극장가 현실을 고려해서 미리 여기저기에서 개봉지원 예산을 신청해 확보하는 게 갈수록 중요해진다. (대개 제작비의 1/3 정도를 개봉준비와 홍보경비로 지출)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마침내 극장 개봉을 맞이한다. 감격과 흥분이 소용돌이치게 마련이다.

개봉 직전에 여기저기 작품 소개자료를 퍼 나르고, ‘언론/배급 시사회’를 진행하는 게 정석이다. 좀 화제성이 있다거나 든든한 유명인사 원군이 있다면 방송 출연하거나 매체 인터뷰를 진행한다. 요즘엔 특히 화제성이 중요하기에 사활을 걸고 그런 마케팅에 매진해야 한다. 영화 매체에 소개되거나 온라인 미디어 콘텐츠로 홍보하는 것도 주요 고려대상이다. 할 일이 참 많다. 이때쯤 되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불면증 환자가 안 될 수 없다. 낮에는 온갖 준비에 치이지만 밤에도 잠들지 못한다. 개봉 전후 실시간 검색으로 자신의 영화 관련 입소문을 확인하고, 매일 통합전산망에 접속해 하루마다 관객 숫자를 세어본다.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 왜 독립영화 개봉행사는 늘 서울에서 시작되는가?

운 좋게 입소문이 나서 흥행이 쏠쏠한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대개 2주 정도 버티면 수명이 끝난다. 몇몇 전국에 섬처럼 드문드문 자리한 독립예술영화 전용 극장에서 수명연장을 하더라도 1달 버티기 힘들다. 그나마 관객이 확연히 늘어나는 경우는 ‘GV’라 불리는 부대행사를 열 때다. ‘GV’, ‘Guest Visit’의 줄임말이다. 번역하면 ‘관객과의 대화’다. 영화를 만들거나 참여한 이들이 영화상영 후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진행자와 대담을 나누는 방식이다. 상업영화와 복합상영관에선 무대인사 정도가 기대할 수 있는 부대행사 최대치인 만큼 이런 GV 이벤트는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 극장의 주요한 차별화 방법이자 영화를 보고난 감상을 확장하는 자리로도 기능한다.

물론 이런 GV의 개봉과정 가장 큰 효용은 홍보와 관심 촉발이다. 상대적으로 화제작이거나 출연진 중 일정한 팬층을 보유한 이가 있다면 그 가치는 극대화된다. 영화진흥위원회 개봉영화 통합전산망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하면 GV가 있는 날과 없는 날 관객 숫자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근래 비교적 좋은 실적을 거둔 모 영화는 개봉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전국 순회공연 돌 듯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빽빽한 일정을 소화한 게 관객몰이에 결정적 요소로 공인될 정도다. 그만큼 독립예술영화에선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GV 이벤트는 거의 늘 항상 서울에서 출발하고 서울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개봉 직전 열리는 홍보 기자회견과 미디어 대상 시사회를 포함하면 그 비중은 절대적이다. 일단 개봉 전부터 이벤트는 절대적으로 서울에 편중된 데다가, 개봉한 후에도 기본 2주 정도는 수도권 위주로 순회가 이뤄진다. 서울에서 대충 들를 곳은 다 거친 다음에야 사방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게다가 GV 참석 진용도 서울에 비교해 지방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물론 상업영화에 턱없이 모자란 개봉예산과 먼 이동 탓이다. 원인은 다 알고 정상참작을 충분히 할 만하기도 하다. 하지만 주연배우 총출동! 카피가 여기저기 온라인에서 목격되는 서울 GV 이벤트에 비해 다소 맥이 풀리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의 개봉영화라면 다른 일정 덧붙여 차라리 서울 가서 보겠다는 이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데 뭐라 하기도 좀 그렇다.

그나마 대구는 광역시라서 지방치고는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이다. 비교 대상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대구의 독립예술영화 향유 환경은 수직으로 오르내린다. 서울 혹은 부산과 대비하면 이곳은 어둠 그 자체이지만 기초지자체로 넘어가면 빛과 광명의 땅으로 변모하는 건 순식간이다. 일단 한국 사회에서 ‘로컬’ 혹은 ‘지방’이라 규정되는 공간이 서울 및 수도권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소외와 차별에 시달리지만, 그 공간들 사이의 편차 역시 심대하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늘 ‘상박하후上薄下厚’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현실적 이유’로 대부분 이벤트는 오히려 ‘상후하박上厚下薄’인 경우가 절대다수다. 대구는 늘 서울이나 부산 다 경유한 뒤에야 GV 차례가 온다며 투덜대지만, 경북의 몇 곳에선 아예 섭외할 여건이나 타이밍 맞추기 힘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늘 빈곤은 상대적이다.

누군가 이런 ‘도그마’를 깨 주기를 우리는 종종 희구한다. 하지만 이런 소망은 대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난제이기 일쑤다. 지방부터 먼저, 가장 작은 곳부터 우선 GV가 시작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푸념처럼 가끔 흘러나와도 막상 그리하는 건 대단한 각오와 결단의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힌 실뭉치를 단칼에 끊어야만 한다. 그런데 누구나 바라지만 실현되지 못하던 숙제를 풀겠다는 이가 나타났다. 박석영이라는 독립영화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에서 ‘씨네마니또’로 이어지는 도전

▲샤인_스틸 사진 [사진=인디스토리]

박석영 감독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중견’ 독립영화 감독이다. 대개 국내 대학 영화학과에서 동 세대와 경합하며 단편영화부터 차츰 단계별로 정해진 코스를 거치는 2030대들과 달리 늦깎이로 시작해 첫 작품을 40대가 넘어서야 세상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2014년 <들꽃>에서 시작된 작품연보는 이후 <스틸 플라워>와 <재꽃>으로 ‘꽃’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작업을 지나, <바람의 언덕>을 경유한 뒤 곧 개봉을 앞둔 <샤인>으로 연결된다. 10년간 5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하고 모두 극장에서 개봉하는 사례는 무척 드물다. 그 저력만으로도 현재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하다.

▲샤인_스틸 사진 [사진=인디스토리]

하지만 그의 영화는 흥행이 기대되거나 사회적 소재를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그래서 대개 우리가 독립영화에 기대하는 지점들과 꽤 동떨어진 작업에 속하는 편이다. 박석영 감독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구도, 즉 감독 본인이 애타게 찾는 구원과 희망을 자신이 창조한 영화 속 세상을 통해 탐구하는 경향은 우리가 흔히 ‘시네아스트’ 혹은 ‘영화작가’로 호칭하는 거장들의 방식과 유사점이 많다. 그래서 아직 감독의 영화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겐 지레 겁먹기 딱 좋은 스타일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 안절부절 염려하고 걱정하는 면모를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잔인한 세상에 던져진 여린 인물들이 있고, 그들을 옥죄는 나쁜 세상이 배경이지만 정형화된 악역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극중 캐릭터들에 골고루 관심을 쏟고 그들 각자가 품은 사연에 관객이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런 공들인 마음과 태도가 영화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

초반 작업들은 제법 ‘쎈’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독은 초창기 그의 작품들에서 ‘페르소나’처럼 거듭 등장한 모 배우를 고생시키는 게 너무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비록 극 중에서 그들이 처한 조건이 고통스럽긴 해도 연민과 희망의 씨앗을 흩뿌리고 불씨를 살리려 애쓰기 시작한다. 그저 대책 없이 ‘힐링!’, ‘치유!’를 외치진 않는다. 그게 너무나 허무한 것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를 비관적으로 응시하면서도 사람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다. 죽은 나무가 언젠가는 싹을 다시 피울 것이란 믿음을 놓지 않고 잔인한 세계에서 함께 살아남자고 조심스레 권한다. 참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태도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그런지 자꾸만 그의 작업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구현처럼 이어진다. 첫 영화에선 서울 변두리의 재개발 철거지역이던 게 두 번째 영화에선 부산의 뒷골목으로, 세 번째 영화는 충청도 깜깜 시골에서 펼쳐진다. 네 번째는 강원도 태백을 무대로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마침내 제주도에 이른다. 그것도 한라산이나 서귀포 같은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 가장 찾기 힘들지만, 그 반대급부로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를 굳이 오랜 현지답사를 거쳐 정했다. 갈수록 서울과 도시에서 영화의 배경이 멀어진다며 재밌어한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영화가 점점 시골로, 지방으로 향하게 된 것처럼 영화를 소개하는 방식도 서울 중심에서 탈피하길 꾀했다. 원래부터 지역 GV에 애착을 갖고 열심히 돌아다니던 건 알았지만 2019년 선보인 전작 <바람의 언덕>부터 근본적 변화를 도모한다. <바람의 언덕>은 개봉 이전 거의 반년을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란 이름으로 전국 주요 권역을 빠짐없이 순회하며 곳곳에서 지역 영화문화를 이어가는 소규모 상영집단이나 그룹과 주로 연계해 순회공연처럼 상영회를 이어갔다. 게다가 상영료나 홍보경비, 초청비를 일절 요구하지 않고 약간의 공적 지원을 알뜰히 사용해 벌인 일이다.

▲샤인_스틸 사진 [사진=인디스토리]

자신의 영화 홍보도 홍보이지만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하고 확장하는 데 고군분투하는 무명의 활동 그룹들을 알리기 위한 소개의 장이기도 했다. 감독은 물론 영화에 출연한 주요 배우들이 함께 유랑극단처럼 전국 곳곳을 순회하며 노래도 부르고 대담도 하고 뒤풀이로 GV의 한계를 시험하는 자리였다. 그런 로드쇼 이벤트를 통해 전국에 알려진 지역 영화집단과 공동체가 적지 않다. 감독의 ‘선한 영향력’이 발휘된 개가다. 정작 돈을 번 게 아니라 쓰기만 했고, 야심 가득히 출발한 로드쇼 역시 코로나 대역병의 창궐 탓에 원래 기대한 바에 비한다면 아쉽게 축소되긴 했지만, 가장 속이 탔을 감독은 (실망은 했겠으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차기작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만다.

◆ ‘씨네마니또’의 출발을 알리는 대구와 안동 상영회에 참여하다

‘씨네마니또’란 프로젝트는 과거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가 감독 본인의 결단으로 추진된 데 비해서 보다 더 본격적으로 시스템화되었다. 물론 큰 형태는 다르지 않지만, 세부적인 과정과 성격은 제법 차이가 크다. 박석영 감독의 독불장군 같은 결단에 의존한 게 로드쇼라는 이벤트였다면, 이번 씨네마니또는 감독 개인에 한정되지 않고 그의 뜻에 공명하는 이들에게 자리를 열어주려는 목표가 뚜렷하게 포착된다. 관록과 전통의 독립영화 제작/배급사인 ㈜인디스토리가 일회성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구상하는 상영 프로젝트라는 게 특기할 만하다.

즉 ㈜인디스토리가 계약해 개봉할 독립영화 가운데 ‘씨네마니또’ 프로그램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작품을 정식 개봉 이전에 지역 커뮤니티 시네마를 통해 먼저 순회 상영할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다. 배급사 입장에선 색다른 방식의 개봉 전 홍보방법을 테스트할 수 있고, 창작자는 전형적인 서울 관객들과 상대하는 것을 초월해 다양한 관객층과 접속할 여지가 생긴다. 지역의 관객들에겐 기대작을 ‘서울 것들’보다 먼저 확인할 기회다. 여러모로 그동안 왜 이런 기획이 없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박석영 감독이 선도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이런 실험은 제대로 행해지지 못한 채 상상으로만 남아 있었을 테다.

감독은 5년 전에 도전했던 것처럼, 본인이 직접 수소문을 해가며 여러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고 직접 전화를 걸거나 문의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할 공간 및 파트너를 물색했다. 자신의 영화가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접속되기를 욕망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수고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노력이지만 정작 적지 않은 현재 독립영화감독들은 보이지 않는 태도다. 예전에 국제영화제 가면 종종 보이던, 자신의 작품정보와 상영시간 및 장소가 기재된 전단을 손수 돌리거나 혹은 샌드위치처럼 앞뒤로 연결된 피켓을 착용하고 행사장 곳곳을 용맹하게 누비던 외국 감독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괜히 눈길 한 번 더 주게 되고, 망설이다 그들의 영화를 관람하게 만드는 소박한 진심의 확인은 늘 기분 좋고 뭉클한 일이다.

▲씨네마니또 0615 대구상영회 웹자보 [사진=대구시청자미디어센터]

이번에는 보다 초점이 명확해졌다. 여전히 서울 빼고 빼곡하게 주요 권역을 채워냈지만,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부재한 지역에서 극장의 역할과 영화문화 교육을 분담하는 미디어센터 기관과 상영공동체들에 주목하는 변주가 이번에 시도되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기’ 방식으로 예전에 맺은 인연을 활용해 소개를 받고, 아니면 그냥 연락해 부딪히거나 하면서 박석영 감독은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그리고 7월 하순 개봉 전 1달여 동안 첫 번째 ‘씨네마니또’ 여정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10여 곳이 넘는 일정 중 가장 먼저 출동한 동네는 대구경북이었다. 2024년 6월 15일 토요일엔 대구, 다음날인 16일 일요일엔 안동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 두 곳에 모두 함께했다. 어떻게 행사가 치러질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구 행사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활용할 게 무궁무진한 데 비해 진입장벽이 있던 대구시청자미디어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사실상 대구와 경북 경계지대라 해도 무방할 대구스타디움몰에 자리하기에 접근성이 아쉬운 곳이다. 이곳에 현재 대구영상미디어센터 등 지역에서 시민영상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모여 있기에, 이번 상영회는 일전에 시도된 커뮤니티 시네마 로드쇼처럼 본인 영화 홍보보다 오히려 지역의 유의미한 활동 그룹과 공간을 알리는 데 더 주안점을 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모든 게 신품이고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새것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다목적홀은 정식 극장은 아니지만, 시설은 그에 못지않았다. 넓고 환한 공간에서 개봉 버전의 <샤인>은 100명은 됨직한 행운의 관객들에게 최초 상영되었다.

▲씨네마니또 0615 대구상영회 [사진=김상목]

◆ 통상의 GV 기획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클라스’를 목격하다

어떤 감독이건 자신의 영화가 최상의 근사한 조건에서 공개되길 바란다. 영화제에 간다면 누구나 해외라면 칸이나 베니스, 베를린 같은 이른바 ‘3대 영화제’에 이름이 불리길, 국내에선 부산이나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길 갈망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박석영 감독의 고민은 좀 더 깊고 넓다. 감독의 첫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고, 다음 작품도 마라케시국제영화제 등 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을 꾸준히 인정받았기 때문에 신작이 나올 때마다 국내 영화제 관계자들은 섭외하려 애쓰게 마련이다. 부산이냐 전주냐 골라가며 자신의 영화가 주목받을 첫 공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건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복이 겨운 일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번 신작 <샤인>을 영화가 촬영된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작은 독립영화제에서 맨 처음 개막작으로 공개하는 결단을 내렸다. 굳이 그렇게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판단의 근거는 단순하지만 그렇게 감행할 수 있는 이가 국내에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행보처럼 서울에선 앞으로 한참 지나야 관람 가능한 <샤인> 개봉 버전은 정식 상영관도 아닌 공간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물론 관객 숫자는 적지 않았지만, 그 구성이 특기할 만하다.

▲씨네마니또 0615 대구상영회 [사진=김상목]

대구 독립영화 차세대를 육성하는 영화학교 수강생과 해당 교육과정 출신들이 관객의 중핵을 구성했다. 즉 영화를 창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과의 대화에 주안점을 둔 기획인 것이다. 그에 따라 게스트도 정해졌다. 감독은 직접 본인이 진행을 맡았는데 이는 자기가 말을 많이 하려는 게 아니라 원래 의도한 기획대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영화의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예선’ 역의 장해금 배우와 ‘라파엘라’ 역의 장선 배우가 중심이 되어 예비/신예 감독들이 배우에게 궁금하거나 알아주길 바라는 내용 위주로 대담이 진행되었다. 초점은 거의 일관되게 관철되었다. 대개 무대인사 혹은 천편일률적인 내용 확인 위주로 흘러가는 통상의 GV와는 성격이 꽤 달랐다. 배우들 역시 자신들에게 온전히 맞춰진 자리에서 다른 GV와는 다르게 묵혀둔 고민과 각오를 솔직하게 표출할 수 있었다. 그런 기회를 목격할 수 있는 건 행운에 가깝다. 특히 박석영 감독의 전작 <재꽃>에서 데뷔해 그동안 몰라보게 성장한 장해금 배우는 고3 입시 스트레스로 고민이 많던 중 이번의 GV 참석이 의지를 북돋는 계기가 되었다며 진솔한 면모를 선보여 보는 이들과 교감하기도 했다.

다음날은 경북 북부에서 홀로 독립예술영화의 오아시스처럼 버티고 있는 안동의 중앙아트시네마를 찾았다. 복합상영관의 전성기에 화석처럼 남아 있던 작은 단관극장을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특화한 형태다. 적은 관객으로 인한 경영난을 약간의 공적 지원으로 메꾸며 견디는 공간이다. 대구는 그나마 경부선 KTX 타고 내려올 수 있지만, 안동만 해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게 실제로나 심리적으로나 퍽 멀다. 그렇기에 GV 제대로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박석영 감독과 <샤인> 제작진에겐 그저 전국제패(?)를 위해 거쳐야 할, 그리고 드디어 방문하게 된 공간일 뿐이었다.

▲_씨네마니또 0616 안동상영회 웹자보 [사진=안동 중앙아트시네마]

감독 일행은 직접 차에 실어나르는, 이번 씨네마니또 프로그램을 위해 공들여 제작한 ‘포토월’을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3층 극장으로 손수 옮기고 조립했다. 뚝딱 완성된 거의 한 층 높이의 포토월은 제법 근사한 포토존을 형성해주었다. 안동에선 전날의 (여)배우들과의 대화에 이어 다른 GV라면 거의 보기 힘든 사운드 디자이너와 조역 배우들 중심으로 차별화된 GV를 기획했다. 그래서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고 등의 일반적인 해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감독의 전작을 함께 작업해온 김혁중 사운드 디자이너가 들려주는 <샤인> 속 배경음과 소리에 대해서 마치 보물찾기하듯 구석구석 감춰진 신비를 풀 수 있었다. 아마 99%의 GV에선 불가능한 사례일 것이다. 영화 속 인상적인 소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 낮과 밤의 소리는 각각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음향전문가의 관점에서 영화 사운드를 어떻게 설계하는지 같은 전문적인 내용을 청취할 기회는 흔하지 않다.

대개 화제를 모으기 위해 주연배우 중심으로 차출되는 통상 사례에 비교해 영화에서 거의 대사가 없거나, 고작 한두 장면에만 등장하는 배우들을 주역으로 내세운 점도 신선했다. 물론 영화를 만든 감독에겐 분량과는 별개로 배우들에게 요구하고 짊어지게 만든 비중이 존재한다. 감독은 그런 의도와 역할의 중요성을 관객이 알아봐 주길 바란 것이다. 심지어 배우가 대사 한 줄 없지만, 영화에서 그가 빠지면 무너지는 균형을 책임지는 존재라는 걸 듣고 나면 ‘세상에 그런 깊은 뜻이?’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리고 10년이 걸린 캐스팅 비화의 실체를 확인할 때는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영화 출연이 처음이라는 김효정 배우와 오혜림 배우의 GV 본격 데뷔도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 독립영화 빙하기가 우려되는 때에 과감한 도전에 나선 감독과 영화

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번에는 진행을 맡아놔서 전날과 확연히 다르게 어깨가 무거웠지만, 어찌 큰 탈 없이 마치긴 했다. 대구보다 관객이 상대적으로 적긴 했다. 실망할 법도 한데 감독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인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영화에서 성당과 수녀님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안동에선 일요일 일정이 많은데도 수녀님들이 실제로 영화를 보러 와서 즐거워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수녀님들에게 감상을 청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목격되었다. GV가 끝나고도 남은 질문과 소감을 마저 청취하고자 관객과 2차 대담을 꽤 오랫동안 벌이기도 했다. 성실한 감독과 감흥이 컸던 관객의 의기투합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렇게 한참 지나고 나서 감독을 포함한 게스트 일동은 포토월을 다시 뚝딱 분해해서 차에 실었다.

▲샤인_스틸 사진 [사진=인디스토리]

안동에서 GV를 진행한 게 처음이라 행사가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다. 감독은 정식 개봉 때 상영관 추가확보도 할 겸, 서로 WIN-WIN 도모를 위해 땡 하고 마치자마자 급히 귀경할 생각이 없었다. 오랜 시간 극장 식구들도 포함해 이것저것 과거의 추억은 물론 미래의 협업을 구상하며 즐거운 뒤풀이를 가졌다. 마치 GV의 2부 혹은 3부 같은 자리였다. 참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독립영화감독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알면서도 그런 감독의 열정에 공명해 기꺼이 도우려는 이들이 얼마나 전국 어디에나 포진해 있는지, 그런 믿음으로 계속 영화를 놓지 않고 정진한다는 이야기까지 이 삭막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손해만 보는’ 사람들의 연대가 이어졌다.

물론 박석영 감독이 고생하며 벌여놓은 ‘씨네마니또’ 프로그램은 전혀 돈이 되지도, 관객 흥행몰이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요즘 동네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작년 중반부터 지역독립영화 지원예산이 대폭 삭감되었고, 올해 봄에는 지역영화제 지원예산이 반 토막이 났다. 제작지원이나 개봉지원 부문도 정해진 공식대로 날아가는 중이다. 현재 정부의 정책 기조는 간단하다. 산업적으로 유효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 많은 곳에만 몰아주기를 하겠다는 태도다. 어찌 보면 일관성이 확고한 셈이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 보면 무리해서 애만 쓸 뿐이지 당장 흥행과는 무관해 보이는 박석영 감독과 ‘씨네마니또’ 프로그램의 도전은 몽상가의 꿈으로 치부하기 딱 좋다.

하지만 주말의 두 씨네마니또 프로그램에 참전하고 나서 그 공간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잊고 있던 독립예술영화를 향한 순정, 꿈을 좇는 이에 대한 무한한 연민과 우애로 똘똘 뭉친 영화공동체의 풍경은 쉽게 잊히지 않는 가치로 가득 차 보였다. 영화를 통해, 문화예술을 통해 살풍경한 현실을 잠시라도 벗어나 다른 세상,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런 기회가 반드시 비효율적이고 적자로만 치부될 성질의 것일까? 어느새 상업영화의 논리에 흡수당한 독립예술영화 개봉방식에 원래 초심을 복원할 수는 없는 걸까? 지난 몇 년간 뜻 있는 이들이 고민해왔던 숙제가 한 무모하기 짝이 없지만, 확신에 찬 중년 감독에 의해 아주 비좁게 틈새가 열릴락 말락 찰나를 목격하는 건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내용과 그 영화의 공개 방법론이 일치되는 드문 순간에 함께 하는 반가운 체험은 오래 기억에 남을 테다.

<작품정보>

샤인 Shine
2023│한국│드라마
2024.7월 개봉│129분│12세 관람가
감독/각본 박석영
출연 장해금, 장선, 정은경, 송지온 외
제작 제주에스엘 주식회사, 영화사 삼순
배급 ㈜인디스토리

2023 6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 개막작
2023 49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초이스 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