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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집안은 6.25전쟁 때 풍비박산이 났다. 아버지는 나이(31세) 탓에 지게부대원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어 늘 고생했지만 일절 내색할 수 없었다. 사촌 둘이 전사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하나 뿐인 동생이 전사해 평생 그리움과 슬픔을 가슴에 품고 사셨다. 어찌 필자의 부모뿐이랴.
전쟁 발발 당시 20대 이상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최근 전쟁 경험담을 듣기 위해 찾아 뵌 80대 이상 어르신들은 당시 10대였다. 74년이 흘렀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신다. 피맺힌 사연을 말씀하시는데 끝이 없다.
김귀분(군위읍, 89세) 할머니는 “총소리 포소리에 얼마나 겁에 질렸던지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면 자다가도 일어난다”고 하신다. 박순옥(영천 신녕면, 88세) 할머니는 “뺄갱이(북한군)가 마을 동장을 칼로 찔러 죽이고 소를 끌고 갔다”며 “어떻게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고 하신다. 장을생 할아버지(의성 금성면, 92세)는 “안강전투에서 학도병으로 참전했는데, 나 외에 거의 모두 꽃다운 청춘을 바쳤어요”라며 눈시울을 적신다.
74년이나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증언하신다. 이제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한다. 당시 20대 초반에 군에 입대했다면 지금 90대 중반이기 때문이다. 군부대에서도 참전용사 초청강연을 듣고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6.25의 노래를 부르며 눈물짓던 시간은 사라졌다.
6.25전쟁에서 우리 국군 137,899명과 미군 36,940명 포함 유엔군 40,742명이 전사했다. 이제 전사한 장병의 부모님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호국영령들은 대부분 꽃다운 나이에 이 나라를 지키다가 숨졌으니 자식들도 있을 리 없다. 평소 현충원에 가 본 사람은 안다. 텅 빈 현충원에서 호국영령들은 ”어떻게 지킨 대한민국인가“ 무언으로 말하고 있다.
이에 답하듯이 요즘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 주요 길목에 정치권에서 내 건 플랜카드가 눈길을 끈다. ‘숭고한 희생을 기억합니다’, ‘우리 함께 지킨 역사’이다. 그동안 여야가 서로 헐뜯는 문구만을 보다가 뜻밖에 한목소리를 내니 오히려 이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온 강산을 붉은 피로 물들인 숭고한 희생의 역사를 기억하자’는데 누가 공감하지 않으랴. 봄철에 온 산에 피는 붉은 진달래꽃처럼 온 산천에 발자취를 남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생각하면 그 누구일지라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호국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이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숭고한 희생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정치권은 6월에만 한목소리를 내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도 일상의 삶에서 호국보훈을 생각하며 전쟁영웅과 그 가족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어야 한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서 지킨 호국의 성지를 계속 발굴해야겠다.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그 어디든지 호국의 성지요, 그 누구든지 멀지 않은 친척 속에 보훈가족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그 어디든 호국성지요, 그 누구든 보훈가족이다. 가까운 이웃에 보훈가족을 찾아 가자. 아픔을 위로하며 자랑스러운 역사를 함께 나누자. 오늘의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고귀한 희생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