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휴진 첫날 대구, 한산한 대학 병원···”대기실 텅 비어”

집단휴진 첫 날 대구 한 대학병원, 방문 환자 감소 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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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대구 한 대학병원. 로비를 비롯해 주요 외래 진료과들은 환자들의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이었다. 집단 휴진 첫 날, 휴진 전 진료 일정을 조정해 큰 혼선은 확인되지 않았다. 휴진 현장에서는 당장 혼란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적절한 치료를 제때 제공받아야 하는 ‘암’과 같은 질환을 겪는 환자 입장에서 하루 빨리 병원 운영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외래병동 2층. 환자 대기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진료대기 순서와 진료 의사 등의 정보가 담긴 모니터에는 순서 번호 대신 ‘전공의 공석에 따라 금일 외래진료 지연이 예상됩니다. 원활한 진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팝업창이 떠있었다. 화요일 오전 외래 진료 시간표에는 해당 과 진료를 담당하는 교수가 2명 적혀있었는데, 이날 진료에 나선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3층 다른 과를 찾아 봐도 마찬가지였다.

▲대구 한 대학병원. 대기실이 텅텅 비어 있다.

병원 관계자는 “교수님들이 개인적으로 휴가를 내신 것으로 안다. 사전에 환자들의 진료 일정은 조정됐다”며 “자세한 내용은 저희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보호자와 함께 동행한 환자 2명이 썰렁한 대기실에 차례로 들어왔다. 다른 과와 마찬가지로 진료대기실 앞 의자가 비어있어 조용했다.

어머니의 림프종 치료를 위해 한달에 3, 4번씩 병원을 찾는다는 김경탁(55, 달서구) 씨는 “평소에는 여기 대기 의자가 꽉 차 있었는데, 1/3 정도로 줄은 것 같다”며 “여기 옆에 과에도 지금 한명도 없지 않냐. 평소에는 여기도 환자와 보호자로 대기실이 꽉 차 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경북 영양에 사는 김 씨의 부모는 외래진료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대구를 찾는다고 했다. 김 씨는 “다행히 저희는 진료가 변경되거나 하지 않아서 치료를 잘 받고 있지만, 평소 보다 없는 교수님들이 많은 것 같다. 평소엔 저기 모니터에 의사와 대기 환자 이름으로 꽉 차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에게 ‘의대 증원’에 대한 생각을 묻자 “평소 외래 진료를 오면 여기 대기 환자들이 가득 차있고, 한참을 기다려 진료를 보는 것 보면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며 “파업 참여 전공의들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대구 한 대학병원. 대기실이 텅텅 비어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식을 비판하면서도 의대 증원 자체는 필요하며, 무엇보다 환자 곁을 이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의사도 있다. 김동은 대구 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진료사업국장은 “아픈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이 커져만 가는 현 상황에서 교수들까지 진료 현장을 떠나려는 움직임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우려부터 표했다.

김 교수는 “현 사태의 더 큰 책임이 정부에 있는 것은 맞다. 지난 4개월 동안 ‘응급실 뺑뺑이’는 더 심각해지고 암 환자 등 중증 환자의 고통은 커져만 가는데, 정부는 ‘의료대란’은 없다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도치 않은 국민의 피해를 줄일 의무 역시 정부에 있다. 환자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어떠한 정책도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가 구체적인 지역의료, 필수 의료, 공공의료 공백 해결을 위한 세부적인 정책 비전 없이 2,000명 숫자만 밀어붙이는 상황도 걱정했다. 김 교수는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다”며 “의사 숫자가 늘어도 필수 의료, 지역의료 영역에서 의무 복무하게 할 아무런 정책적 대안도 없이 지금처럼 단순 2,000명 의대 증원만 고집한다면 지금의 의료 공백 문제는 결코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한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도 제안했다. 그는 “지역의료, 필수 의료에 뜻이 있는 지원자를 선발해 국가와 지자체가 장학금으로 육성한 후 일정 기간 지역의 공공병원 등에서 복무하게 하는 ‘지역 의사제’의 도입이 이번 의대 증원과 병행되어야 한다”며 “졸업 후 정해진 기간 공공병원 등에서 일할 약 300~500명의 ‘공공 의사’를 안정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공공의대 설립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의학 교육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김 교수는 “지금도 많은 의대에서 해부학 등 기초 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갑작스러운 2,000명 증원은 의학 교육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는 1,000명의 의대 교수를 단기간에 확보하겠다고 말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켜줄 수준 높은 의학 교육을 위해서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휴진에 나선 의료기관은 전국 총 5,379개다. 전국적으로는 14.9%의 의료기관이 휴진했으며, 대구는 13.8%, 경북은 14.2%로 나타났다. 정부는 “향후 현장 채증 결과에 따라 집단행동의 일환으로 불법 휴진이 최종 확정된 의료기관들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