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백사자 부부, 3평에서 150평 집으로 이사 가던 날

영업중단한 실내 지하 동물들,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
멸종위기종 사자, 17일 이동
동물단체, "환경 괜찮은 듯해 다행... 남은 숙제도"
네이처파크 측, "뜨거운 관심 감사, 동물들 잘 돌보겠다"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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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영업이 중단된 대구 수성구 A 동물원 내부에 들어서자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지독한 냄새가 났다. 지하 실내동물원 특성상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데, 각종 동물의 분변과 쓰레기까지 곳곳에 쌓여있었다. 하이에나가 있던 방사장에는 벌레 퇴치제도 굴러다녔다.

지난달 14일 A 동물원이 소유하던 동물 56종 236마리가 경매 매물로 나왔고, 달성군 네이처파크 동물원을 운영하는 (주)스파밸리가 1억 3,100만 원에 낙찰받았다. 이후 네이처파크 동물원 소속 사육사 3명은 A 동물원으로 출근하며 남은 동물의 상태를 점검하고, 네이처파크로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2주 만에 동물 대다수가 이동을 마쳤지만, 백사자와 긴팔원숭이,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등이 문제였다. 국제적 멸종위기종(CITES) 대상 동물로 환경부에 신고 및 허가가 필요해, 바로 이동이 어려웠기 때문이다.(관련 기사=수성구 ‘동물학대 논란’ 실내동물원 동물 매각(‘24.05.16))

▲ 지난해 5월부터 영업이 중지된 지하 실내동물원에 남아 있는 백사자들

17일 관련 절차가 마무리된 백사자 부부가 먼저 네이처파크로 이동하기로 했다. A 실내동물원 안쪽 3평 남짓한 통유리창 안으로 매끈한 암사자와 갈기가 있는 수사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백사자이지만, 사자 우리 청소가 어려웠던 탓에 백사자들은 여느 사자와 같은 황갈색으로 보였다.

사자들은 잔뜩 몰려든 사람들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가만히 사람들을 응시하는 수사자와 달리 암사자는 수사자와 유리창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눈길을 끌었다. 수사자는 자주 보는 네이처파크 관계자를 보고 몸을 세워 커다란 발로 유리창을 쿵쿵 치며 알은체도 했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권세화 부산동물학대방지협회 복지국장은 “이런 식의 실내 동물 전시는 관람객들에게도 건강한 경험을 줄 수 없다. 그동안 햇볕과 바람을 느끼지 못한 좁은 인공구조물 안의 사자가 너무 안타깝다”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도 이날 현장을 찾아 사자의 이동을 지켜봤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이런 시설이 그동안 합법적으로 운영된 것이 제일 문제”라며 “동물 방치가 장기화되어도 실제로 개입할 방법이 없고, 법에서 동물들을 물건으로 개인의 사유재산처럼 취급받다 보니 근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팀장은 “이 동물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동물원이 폐쇄되더라도 제도적으로 개선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또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았다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네이처파크 측은 이동을 위해 마취를 진행하면서 혈액채취 등을 통해 사자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수사자의 눈의 종기 제거와 내성 발톱도 처치하기로 했다. 사자의 안정적인 마취를 위해 최소 관계자만 남고, 취재진과 동물단체 관계자들은 실내동물원 밖으로 나가 사자가 ‘안전히 잠들기’를 기다렸다. 먼저 마취된 암사자는 별도 외부 공개 없이 케이지에 옮겨지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실려 네이처파크로 떠났다.

▲ 네이처파크 소속 사육사들이 이동을 위해 마취제를 투여한 사자의 내성 발톱을 제거하고 있다.

최동학 수의사(동인동물병원)는 “사자 무게가 300kg 정도라고 들었는데, 무게가 더 나가서 추가로 마취제를 투입하며 지켜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 “반려동물들처럼 정확히 무게를 알고 채혈을 통해 간, 신장 등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할 수 없어서 조금씩 마취제를 늘리는 방식을 쓴다”고 설명했다.

오전에 먼저 암사자가 떠나고 남은 수사자는 최 수의사의 감독하에 마취된 모습이 잠시 공개됐다. 최 수의사는 “사자의 마취가 풀릴 수도 있으니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종기 제거가 이뤄진 사자의 왼쪽 눈에는 하얀색 약이 발라져 있었다.

취재진이 사진을 찍고 나오자 이번엔 서너 명의 네이처파크 직원들이 조심스레 사자의 발을 들어 내성 발톱을 깎았다. 야외생활을 했다면 자연스럽게 발톱이 탈각됐어야 했지만, 동물원의 백사자는 마취된 사이 사람에 의해 발톱이 손질됐다. 이후 수사자는 케이지로 옮겨져 20분 거리 네이처파크로 이사를 시작했다.

네이처파크 깊숙이 위치한 사자 방사장 가까이까지 사자를 싣고 도착한 트럭에서 잠긴 화물칸 문이 열렸다. 수사자는 달라진 환경과 낯선 햇빛, 유리창이 아닌 창살 사이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당혹스러운 듯 연신 낮고 불안한 소리를 냈다. 트럭에서 사자를 내리고, 케이지에 끈을 연결해 방사장 입구까지 이동하는 내내 사자는 이쪽 저쪽 고개를 돌려가며 불안한 감정을 표출했다.

▲ 케이지에 담긴 채로 트럭으로 이동한 수사자가 네이처파크에 도착해 동물원 관계자들에 의해 내려지고 있다.

네이처파크 옷을 입은 10여 명의 직원들은 사자 케이지를 둘러싸고, 사자의 이동을 도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방사장 위쪽 공간을 기다란 판자로 막고, 방사장 문을 먼저 열어둔 다음 케이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문 반대편에서는 물줄기가 새어 나오는 호스로 사자 얼굴에 물을 쏘고 있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을 맞던 사자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케이지 밖으로 떠밀리듯 들어갔다.

그렇게 수사자는 새로운 집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사자는 마취 여운 탓인지, 좁은 케이지에 있던 탓인지 비틀거렸다. 수사자는 대각선 한쪽 구석에 웅크려있던 암사자를 발견하곤 반가운 듯 달려갔다. 수년 동안 좁은 집에서 서로 의지하던 암사자가 먼저 사라져 걱정이라도 한 것일까. 암사자와 인사를 나눈 수사자는 암사자가 엎드려있던 한구석에 나란히 엎드렸다. 낯선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는 듯했다. 6년 동안 느끼지 못한 자연광, 흙, 풀, 바위가 고루 있는 사자들의 새 집은 150평으로 기존 방사장의 50배에 달해 구석 구석 탐색할 시간도 많이 필요해 보였다.

수사자는 방사장 안쪽으로 설치된 전기울타리 구조물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강아지가 장난감 터그놀이를 하듯 막대와 줄로 이뤄진 전기울타리 구조물을 한참 물고 뜯었다. 수사자는 암사자와 세로로 길게 붙어 수풀 사이에 몸을 반쯤 숨긴 자세로 평온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도 보여줬다. 때때로 혀를 길게 빼어 물고 장난스런 표정도 잠시 지었다. 한 관람객은 “사자야, 건강해라.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넸다.

현장에 동행한 김성남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연구원(수의사)은 “사자는 고양잇과 동물로 초원을 달리던 애들인데 그동안 협소한 공간에서 달리거나 점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행동풍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인공바위 정도였다”며 “이동한 새로운 공간은 어느 정도 풀도 있고, 흙도 있고, 무엇보다 수직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야외방사장 크기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방금 도착했다 보니 아이들의 적응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그냥 보기에도 아이들 표정도 훨씬 좋아 보이는 같다”고 했다.

▲ 새로운 방사장으로 옮겨진 사자가 혀를 빼고 장난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박진석 네이처파크 본부장은 “지난달 SNS로 동물들 소식이 올렸더니 반응들이 정말 뜨거웠다. 감사하다, 후원을 하고 싶다는 댓글도 달렸다”면서 “이런 격려와 관심 속에 동물들을 더 잘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환경과 스트레스 최소화를 위해 저희도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자들 혈액검사 결과를 참고해 건강과 적응에 신경 쓰려고 한다. 기존에 있던 사자와도 천천히 합사도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그냥 암사자, 수사자로 불렸는데 지내보면서 성격도 파악해서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붙여주려고 한다”고 밝게 웃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