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죽음의(혹은 죽음과) 공적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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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한얼문고에서 초간되고 14년 만에 복간된 김지하의『황토』(풀빛, 1984)와 양성우의『겨울공화국』(화다출판사, 1977)을 읽으면 누구라도 진저리를 친다. 죽음, 죽음, 또 죽음, 어떻게 이토록 많은 죽음이 한 자리에 모여 있을 수 있을까. 이를테면 이런 시들. “황톳길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김지하,「황톳길」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퍼덕이다가/ 주린 짐승의 과녁으로 쓰러지고/ 먼지 속에서 죽어/ 밤새 맺힌 이슬처럼/ 소리 없이 죽어,/[…]/ 혹은 잠긴 문틈으로 지저귀다가/ 가슴치며 가슴치며/ 가는 넋들아”(양성우, 「새」부분)

강준만의『한국 현대사 산책–1970년대편』(인물과사상사, 2002) 전 3권을 보면, 70년대 민중주의 서정시에 가득했던 죽음은 ‘죽음의 왕’이 지배했던 그 시대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박정희의 18년 통치 기간 중에서도 특히 1972년 10월 17일에 단행한 10월 유신부터 그가 의인(義人) 김재규에게 처단당한 1979년 10월 26일까지의 7년 세월은 고문과 도살과 감시가 생활화되어 있었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가 ‘국민총화’의 시대였다고 강변하지만, 그것은 고문과 도살과 감시가 쥐어짜낸 착시였다. “박 정권 치하의 한국은 사실상 ‘고문(拷問) 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종오의『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창작과비평사, 1981)는 그 시대의 끝에 나온 빼어난 시집이다. 1954년 태생인 그는 1975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물한 살의 나이로『현대문학』지의 추천을 받았다. 그러나 자유주의 문학의 아성인『현대문학』로 등단했던 그는 몇 년간 침묵했고, 1979년 등단지와 반대 성향의『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대거 발표하면서 새 출발을 했다. 이 시집에는 시인의『현대문학』 추천작인「허수아비의 꿈」과「사미인곡」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한 편인「허수아비의 꿈」의 몇 구절을 보자. “당신 핏속의 제 피를 꿈꿉니다/ […]/ 당신 살 속의 제 살을 꿈꿉니다/ […]/ 보이지 않는 잠을 사이 두고/ 당신을 만납니다/ […]/ 당신 속의 저를 만납니다”

등단작에서 드러나는 것은 범신론을 동반한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꿈이며, 이런 작풍은 전통적인 서정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 전통적인 서정시들은 시인이 몇 년의 침묵 끝에 발표하기 시작한 민중주의 서정시와는 사뭇 다르다. 전통적 서정시는 주로 자신을 자연에 합일시키고, 민중주의 서정시는 민중의 삶이나 해방의 대의에 자신을 합일한다. 이렇게 합일의 대상을 양립시켜 놓으면, 전통적 서정시와 민중주의 서정시는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서로 적대적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두 서정시를 대상의 차이가 아니라, 대상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버려야만 하는 ‘몰아(沒我)’의 관점에서 보면 또 어떨까. 두 서정시는 같은 원칙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에는 죽음이 가득한데, 제2부에 실려 있는 20편의 시는 모두 장례 양식이나 초혼 의식을 노래한다. 제목만 열거해 보자.「화장(火葬)」ㆍ「매장(埋葬)」ㆍ「풍장(風葬)」ㆍ「수장(水葬)」ㆍ「합장(合葬)」ㆍ「조장(鳥葬)」ㆍ「초혼곡조(招魂曲調招魂)」1~5ㆍ「불귀(不歸)」. 민중주의 서정시에 나오는 죽음은 앞서 말한 전통적 서정시에서의 몰아와 다르다. 그 몰아는 자신의 유아독존(위대성)이나 보잘 것 없음 가운데 하나를 드러낸다. 반면 민중주의 서정시에 나오는 죽음은 나를 공적으로 전환시키려는 희생의식, 나를 버리고 공적인 것을 만나려는 결단의 표시이다. 「참나무가 대나무에게」를 보라!

독재자가 지배하던 시대에 김지하와 양성우 같은 시인은 시 속의 죽음을 통해 스스로를 공적 인간으로 변환시키고자 했고, 통일ㆍ민중ㆍ민주주의ㆍ공동체와 같은 공적인 것과 만나려고 했다. 실제로 이들은 시에서만 죽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감옥살이와 고문을 통해 직접 죽음을 만나기도 했다. 그 시절, 대구에도 많은 민중 시인이 있었지만, 민중주의 서정시의 요체와 만난 이는 하종오가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