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시즌3] 씨부려대구를 씨부려보자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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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보현): 6월 12일, 씨부려대구 시즌3 첫 번째 모임입니다. 오늘 주제는 경진님이 제안한 ‘씨부려대구를 씨부려보자’입니다. 좁게는 내가 속한 공동체부터 넓게는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오늘 참석자는 고원일(18, 제천간디학교), 김나빈(30, 민주노총 대구본부), 김상천(22, 경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김수현(27, 대구여성노동자회), 유경진(33, 대구쪽방상담소), 조영태(32, 대구참여연대) 6명입니다. 저는(31, 뉴스민) 오늘 진행과 기록을 맡았습니다. 먼저 수현님, 오늘 모임 참석 제안을 받고 어땠나요?

▲6월 12일 저녁 7시, 뉴스민 사무실에서 진행한 씨부려대구 시즌3 첫 번째 모임. 왼쪽부터 고원일, 김보현, 김상천, 유경진, 조영태, 김수현 참석자.

김수현: 이전 시즌 기사들을 먼저 찾아봤어요.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단체에서 일하다 보면 페미니즘, 노동 등 제한된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돼요. 다른 의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김나빈: 급하게 제안을 받았는데 마침 시간이 되어서 왔어요. 지난 시즌 씨부려대구를 함께 했는데 주로 교권이나 도시구조 같은 무거운 주제로 토론을 했잖아요. 오늘은 좀 가볍게 떠들 수 있는 주제 같아서 왔습니다.

유경진: 작년에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어서 섭외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고요. 오랜만에 토론을 하는 만큼 우리가 왜 여기서 이렇게 떠들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먼저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서 김 기자에게 이 주제를 제안했습니다.

김상천: 처음에는 ‘알고 연락한 걸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대학에서 ‘에브리타임’이란 익명 커뮤니티를 어쩔 수 없이 목도하거든요. 공론의 장이라던가 토론문화는 거칠게 얘기하면 박살 나 있어요. 그 소회를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왔습니다.

조영태: 씨부려대구, 다시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었고요. 1기를 함께 했고 2기는 땜빵으로 함께 했습니다. 재밌고 편하게 떠들고 가겠습니다.

고원일: 전 제천간디학교 학생이고, 뉴스민에 교육생으로 와 있습니다. 처음 와서 긴장되기도 한데 평소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오늘도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의의를 두고 참석했습니다.

#토론이 열리기 위한 조건

보현: 각자의 공동체에서 어떤 방식으로 토론이 이뤄지는지 이야기해 볼까요?. 먼저 원일님, 간디학교의 시스템이 궁금해요.

원일: 간디학교는 가족회의를 해요. 금요일 오후마다 120명 정도 되는 구성원이 모여서 안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자주 이용하는 방법은 ‘1,000초 토론’인데요. 스크린에 1,000초를 띄워놓고 이야기해요. 찬반이 아니라 의견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안건 자체에 대한 의견, 앞서 나온 의견에 반박하는 의견을 내기도 하죠. 선생님도 동일한 방식으로 참여해요.

가장 최근에 나눈 주제는 휴대폰 사용과 관련한 내용입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거든요. 저를 포함한 몇몇 학생이 핸드폰의 무분별한 개인 사용이 심각한 것 같으니 한 달 정도만 쓰지 말아보자는 취지로 안건을 올렸어요. 그게 화두가 돼서 오랜 기간 토론을 벌였어요. 최종적으로는 투표를 하거든요. 물론 항상 토론이 충분하진 않아요. 제가 저학년 때에는 학교 전반에 대한 안건을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런 관심이 좀 떨어진다고도 느껴요. 안건이 올라와도 적당히 끝내려는 분위기라거나, 토론 자체가 큰 의미 없어 보일 때도 있어요. 휴대폰 사용 관련 안건은 최근 회의 안건 중 가장 뜨거웠던 주제예요. 반대표가 절반 이상 나와서 무산됐지만 화두를 던졌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고원일 “간디학교에선 1,000초 토론‘을 해요. 120명 정도 되는 구성원이 모여 안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상천: 솔직히 대학에는 토론이 없다고 봐요. 동아리 이름을 ‘오버더블랭크’라고 지은 이유와도 연관 있는데요. 공론의 장이 완전히 공백 상태예요. 대학 교육이 뭔지, 국립대학교의 역할이 뭔지, 청년 세대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야 하는지 등 여러 사회 이슈에 대해 자기 생각을 토해내는 사람은 많은데 이걸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문화는 없어요.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그것과 맞지 않으면 비난하고 말아버리는 현상은 많거든요. 실제 제가 경험하기론 ‘주장의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되물었을 경우 ‘폭력적, 강압적이다’라고 답하더라고요. 내가 주장하는 건 내 권리이고, 여기서 재차 의견을 교환할지 말지, 혹은 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할지 말지 까지도 내 권리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토론을 하려면 객관적 증거를 찾거나 팩트를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복잡하고 어렵잖아요. 그래서 주로 누군가 하는 말에 동조가 되어 버리고 감정을 자극하는 말에 휘둘리게 되죠. 그렇더라도 증거나 팩트가 제시되면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돌아봐야 하는데 그것 자체를 ‘눈치가 없다, 진지하다, 왜 급발진하냐’고 말해요. 그걸 ‘긁’이라고도 하거든요. ‘긁혔냐, 네 마음에 스크래치가 나서 나한테 증거를 들이밀면서 주장하냐’는 느낌인 거죠.

나빈: 개인의 의견이나 개성이 중요시되는 사회잖아요. 모두의 의견이 다 중요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사람들이 토론을 멀리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어떤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합의점을 만들어가려면 의견이 모이고 합쳐지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겪기를 꺼린다는 느낌도 들어요. ‘너는 그렇게 생각해? 난 이렇게 생각해’ 서로 막 던져놓고 실질적인 토론으로 이어지진 않는거죠.

보현: 홍준표 대구시장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길 한 적이 있어요. 취재를 할 자유가 있다면 취재를 거부할 자유가 있다고요.

상천: 대학동기랑 나눈 이야기도 생각나네요. “우리가 이렇게 에어컨을 쐬고 저렴한 값에 옷을 입을 수 있는 건 제3세계 노동자가 우리보다 더 많은 착취를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동기한테 했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지 않으니 얘기하지 말아라. 난 진실을 알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답하더라고요.

▲조영태 “개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개념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의 권리는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되는데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책임은 그에 비헤 논외로 여겨지는 것 같고요”

영태: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살짝 비껴가고 있긴 한데, 코로나 시기에 미국의 어떤 주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을 권리가 화두가 됐던 게 생각나요. 마스크를 쓰지 않을 권리를 말하면서 코로나 확산에 대한 책임을 논하지 않을 수 없죠. 진실을 알고 난 뒤 선택할지 말지 결정할 권리는 개인에게 있지만 이를 외면하고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건 옳지 못한 태도라고 봐요. 개인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개념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는 것도 같고요. 개인의 권리는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되는데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책임은 그에 반해 점점 논외로 여겨지는 분위기 아닌가요.

수현: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고선 주변인과 엄청 많이 싸웠어요. 일단 제 자신 안에 분노라는 감정이 가장 컸고, 그래서 주변인과도 토론하기보단 제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던 것 같아요. 가족들과도 많이 싸웠고요. 요즘 단체에서 상근자들 간 서클 모임을 하는데요. 거기서 자주 나오는 얘기가 ‘상대방에게도 진실을 분별해 낼 능력이 있다고 믿어라’예요. 말로는 쉬운데 내재화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싸우기보단 회피하게 돼요. 일상에선 주로 지쳐있기도 하고요. 건강하게 토론하는 법도 훈련이 돼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어려워요.

경진: 토론이 열리려면 구성원 사이의 합의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 사람은 바꾸고 싶어 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의지와 동력이 없다면 토론이 구성되기 어렵잖아요. 지금까지 학내 토론, 동아리부터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예시가 언급됐지만 결국 토론을 하고 싶은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상대의 태도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 같아요. 상대에게 논리구조가 없어서 문제라기 보단, 상대는 합의가 굳이 일어나길 원치 않으니까 듣지 않는 것 아닐까요. 원일님이 ‘휴대폰 사용 이슈가 최근 안건 중 가장 핫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인 거죠. 얼마나 와닿는 문제인지가 포인트인데, 요샌 전반적으로 대중이 관심 있는 지점들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나요. 토론은 목적과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는 곳에서 발생하는 데 요샌 그게 잘 안 보여요.

나빈: 첨언을 하자면 저는 일상에서는 토론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토론의 과정이 너무 지난하고 힘들잖아요. ‘너는 어차피 설득될 것 같지 않으니 나는 대화를 포기하고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하겠다’는 식으로 넘어가곤 해요. 최근 제가 본 가장 치열한 토론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인데요. 노사 양측이 지금 첨예하게 싸우고 있잖아요.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해야 하는 사안이기에 토론이 잘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한편으론 민주노총에서 일하며 깜짝 놀란 부분이 있어요. 전국의 임원이 서울에 모여서 정기·비정기적으로 대의원대회를 하거든요. 1,000명 넘는 인원이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회의를 한다는 것에서 일단 놀랐어요. 회의 시간도 10시간 이상이더라고요. 손 들고 의견을 발표해서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는데, 그것도 귀결점이 명확하진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의견을 얘기하고 반영한다는 데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런 과정을 거쳐 결정된 사안들에 대해 조합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린 왜 토론 없는 사회에 살게 됐을까

상천: 주변 친구들이나 또래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면 토론의 효용가치를 잘 못 느끼기 때문에 토론에 절박하지 않은 것 같아요. 토론하면 뭔가 개선돼야 하잖아요. 그런 경험이 별로 없는 거죠. 특히 몇 번의 사회적 참사를 거치면서 ‘어차피 바뀌는 게 없다’는 감각이 박힌 것 같아요.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오송참사가 있었고 격렬하게 사회적으로 토론이 이뤄졌지만 바뀐 게 없잖아요. 물론 특별법이 제정되고 세세하게 바뀐 부분이 있겠지만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제도적, 사회문화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이 명징하게 드러나진 않았다고 보거든요. 토론을 통해 실제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해진 게 우리 세대가 토론을 꺼리게 된 이유 중 하나 같아요.

▲유경진 “최근 회사 동료와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서로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하게 됐어요”

영태: 토론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봐요. 의견을 모아서 융합한다는 것보단 한쪽을 굴복시켜서 이기기 위해 토론을 하도록 배우지 않나요. ‘내 말로 널 설득하겠다’고 접근하면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한쪽의 의지가 꺾이기 쉬운 것 같아요.

경진: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요. 최근 ‘MT 장소를 어디로 정할까?’라는 문제를 두고 동료와 차에서 2시간가량 토론을 벌인 적 있거든요. 별것 아닌 문제 같아 보이지만 우리의 상황을 고려하고, 새 멤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골라야 하는 상황인데요. 토론이 끝나고도 각자의 입장이 변하진 않았지만 서로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하게 됐어요.

TV토론의 목적도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라기 보다 ‘우리 진영 사람들에게 나의 공약과 철학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하잖아요. 어차피 서로 설득은 안 되지만 각자의 지점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는 거죠.

보현: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이 더 많이 발생해야 하는데 지금은 누구 한쪽이 이기는 토론만이 주목 받고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각자의 공동체에서 토론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로 넓혀 보시죠. 먼저 모임 시작 전에 잠깐 언급됐던 ‘진지충’이라는 단어가 요샌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요. 10년 전에도 쓰이던 말이거든요.

영태: 진지충, 찐따라는 말은 지금도 쓰지 않나요. 논리적으로 짚는 것 자체를 사회성 없는 걸로 취급하잖아요.

▲김상천 “토론하는 걸 힙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세대 사이에선 ‘멋있어 보이는지, 힙해 보이는지’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상천: 안 멋있다고 생각하죠. 사회적인 활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서 넘어가는 문제를 구태여 꺼내는 걸 멋있다고 생각 안 해요. 지금 우리 사회에선 ‘멋있어 보이느냐, 힙해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토론을 한다거나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게 힙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보현: 사회참여 활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거죠?

상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기보단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낭만, 젊은, 사랑’이라는 카페에 가서 에세이를 읽는 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건 멋있고 힙한 일이지만 그런 주제로 토론을 하고 학회를 쫓아다니는 건 멋있지 않아요.

니체나 쇼펜하우어가 유행하면서 서점의 철학 칸이 늘어나고 있어요. 반면 돌봄의 윤리라거나 공동체주의같이 진보적 가치로 여겨지는 철학 사상의 책은 칸이 줄어들고 있죠. ‘내 인생의 가치판단 기준을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는 뜻인 거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토론은 나만의 것을 찾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모습, 고유성, 독창성을 강조해야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맞춰가는 게 심할 경우 거기에 방해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공동의 영역은 분명 존재하고, 그걸 더 잘 운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토론을 하는 거잖아요. 정치적인 사안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사람들이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것에는 개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그런 공동체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망각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정치적 흐름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나빈: 우리 사회는 특정 이슈들에 대해 극단적으로, 이분법적으로 진영이 나뉘었잖아요. 페미니스트냐 아니냐, 사측이냐 노측이냐 등의 이슈로 유명인이나 정치인이 ‘나락’ 가는 걸 본 사람들이 점점 어떤 입장을 갖는 걸 두려워하게 된 것 아닐까 싶어요. 회색분자로 있길 고수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평범한 소시민이더라도 뭔가 여지를 남겨서 나락을 가고 싶지 않아 하는 강렬한 자기 보호 욕구 같은 걸 공통의 감각으로 갖게 된 것 같아요. 상천님이 고유성을 갖고 싶어 하는 개인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전 그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보거든요. 다만 그래서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이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자기가 특별하길 원하는 것 같아요. 나는 개성 있고 특별하다고 표현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보면 다 똑같거든요.

▲김나빈 “유명인이나 정치인이 말 한마디로 나락을 가는 걸 본 사람들이 내 입장을 갖는 걸 두려워하게 된 것 같아요”

경진: 결국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안의 비중이 적어진 것, 그래서 토론이 적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문제가 없는 건지, 문제를 회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연금개혁, 저출생 등 사실 문제가 없지는 않잖아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이게 불편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임계점이 아직 안 온 걸 수도 있고요.

#토론에 임하는 자의 태도

보현: 저는 꼰대 문화와 토론도 연관 있다고 봐요. 저는 ‘내가 해 봤는데’ 처럼 나이와 권위로 눌리면 토론을 할 의지가 꺾이더라고요.

상천: 학생회에서나 포럼, 토론회에 가면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아요. ‘내가 작년에 해봤는데’, ‘내가 20년 넘게 해봤는데’라는 식으로 당연히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잘 한다는 걸 깔고 가요. 그런데 그 경험치 자체가 어떤 근거가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많이들 공감하실 것 같아요.

원일: 전 결정적인 상황에서 경험치를 반영한 판단이 전혀 근거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급박한 상황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경험치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영태: 토론의 태도를 논하며 이준석의 화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죠. 팬과 안티가 동시에 많은 정치인이잖아요. 최근 김정숙 여사 기내식 논란을 라디오에서 언급하면서 ‘국민의힘 의원 중 이재명, 김정숙 여사만 보면 무작정 돌진하는 경우가 많다’고 시작해요. 계산 없이 공격하니까 헛발질이 많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더라고요.

상천: 저도 그 라디오를 들었는데요. 김정숙 여사가 기내식 식비를 많이 지출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더 많이 지출했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합리적인 근거를 대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김정숙 여사가 많이 먹겠냐, 윤석열 대통령이 많이 먹겠냐’고 하거든요. 말투나 태도, 어휘 수준이 토론을 잘한다고 느끼게 할 뿐 아무런 내용이 없는 말이잖아요.

수현: 전 정치나 일상에서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상대를 적이라 생각하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 ‘국민의힘 관계자를 만났는데 생각보다 멀쩡했다’는 말을 지인이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저는 반대편과 대화를 하라면 일단 거부감이 들 것 같더라고요.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잘 안 고쳐져요.

▲김수현 “정치나 일상에서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상대를 적이라 생각하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나빈: 좋은 토론의 예시로 제가 주변에 홍보하고 있는 게 있어요. ‘더 커뮤니티’라는 예능프로그램이거든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청년 정치인을 포함해서 페미니스트 작가, 변호사 등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참가자가 나와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만 관계를 망치지 않고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좋은 토론이 뭔지 고민하는 장면들이 나와서 재밌게 봤어요.

경진: TV 토론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 유시민, 전원책 변호사가 나왔던 썰전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정치 성향이 완전 반대인 패널들이지만 인간적 케미가 엿보이기도 했고, 서로의 철학이 확고히 있는 인물들이기에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어요.

보현: 전 주말마다 MBC 라디오 ‘정치인싸’를 챙겨 들어요. 보수 패널 두 명, 진보 패널 두 명이 나와요. 더불어민주당 공동부대변인, JTBC 기자 출신 평론가 패널을 진보로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 김준우 정의당 공동대표가 나왔는데 요샌 안 나오더라고요. 개인적 감상을 덧붙이자면 최근 평론가 패널들이 정당을 중심으로 논평하려다 보니 논리적 비약에 빠지거나 억지스러울 때가 종종 있거든요. 보수와 진보가 갖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사안을 평론하는 게 아니라 부러 양당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논리를 가져온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도 최근 그나마 즐겨 듣는 토론 프로그램입니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활발한 토론

보현: 온라인 커뮤니티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온라인상의 토론에 참전하거나 구경하는 경우가 오프라인보다 사실 많잖아요.

상천: 뉴스를 어느 창구를 통해 보는지부터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요샌 인스타그램 매거진을 통해서 뉴스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유행하는 밈을 활용해 짧은 글로 뉴스를 요약해 놓은 게 특징인데, 트렌디해 보이긴 하죠.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이런 매거진이 종류별로 있어요. 주로 마케팅 업체에서 운영해요.

호남지역의 인스타그램 매거진 채널 중 ‘거시기 매거진’이라고 있어요. 밈과 뉴스, 홍보를 적절하게 믹싱한 콘텐츠라서 재밌게 보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역의 정치인들이 새만금 특별법으로 모든 지역 이슈를 덮으려고 한다는 걸 비판하는 내용으로 강력한 스티커 광고 밈을 써요. 조회수 4만에 댓글이 100개 가까이 돼요. 지금 우리 세대는 10초를 넘어가면 안 되는거죠. 무슨 토론이 되겠어요. (웃음)

▲인스타그램 ‘거시기 매거진’ 콘텐츠 캡처.

경진: 인스타그램의 타겟층은 20~30대인 거고, 정치 고관여층은 그보단 윗세대잖아요. 물론 무주공산에서 어떤 방식이든 대안이 등장하는 건 좋다고 보지만 그 자체가 몸통을 흔들 수 없다고 보는 편이에요. 정치에서 밈이 효과를 얻으려면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거죠. 또 인스타그램의 10초 남짓 영상 또는 콘텐츠가 파급력을 가지려면 그 자체의 공감대 이상의, 사람들 간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공백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나빈: 밈을 활용해 일종의 토론의 장을 연다는 것에 상당히 거부감이 들어요. 니즈가 있고, 그걸 잘 파악해서 재밌고 효과적으로 전달을 하는 건 좋은데 거기엔 굉장히 많은 정치적 허용과 정치적 생략이 포함돼 있잖아요. 이것만으로 뉴스를 접하는 세대는 이 생략과 허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거죠. 이걸 보완할 만한 개인의 의지도 필요하고, 공급도 필요한데 거기에 대한 고민은 잘 보이지 않고요. 모든 걸 퉁치고 상대를 우리 진영으로 끌어오기 위한 미끼가 전부인 현상들이 매우 불편합니다.

경진: 숏폼처럼 아예 짧게 가는 현상 반대편에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는 콘텐츠도 있어요. 저는 유튜브에서 뉴스를 가장 먼저 봐요. 구독한 채널에 뉴스가 업로드되면 알림이 뜨잖아요. 제목을 보고 클릭하기도 하고, 아예 정보값이 없는 뉴스라면 나무위키를 검색해 보기도 하고요. 해설 중심이기 때문에 영상들이 긴 편이에요. 예전에는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를 가장 먼저 보기도 했는데, 이젠 네이버에 접속 안 하니까 유튜브에 상주하는 시간이 가장 길어요. 토론도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서 하고요. 문제는 이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부분이죠.

보현: 글과 영상이 갖는 감각의 차이도 있죠. 영상은 우리를 단순히 수용자로서 감각하게 하지만 글은 내가 이걸 받아들이기 위해서 의자에 앉아야 하고 눈으로 보고 읽어나가야 하는 노력이 더 들기 때문에 참여자로서 감각하게 하잖아요.

상천: 교육학에서도 이 주제를 다뤄요. 영상이 사고 능력을 저해한다고 하거든요. 글을 읽는 건 그 과정에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텀이 제공되고 실제 물리적 공간도 있는데, 영상 매체는 내가 멈출 수가 없잖아요. 인덱스 기능을 가질 수 없죠. 그래서 교육학에선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하더라도 인쇄 교과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평가해요.

원일: 실제 학교 친구들 중에도 정치 관련 숏폼을 보는 친구들이 많아요. 앞뒤 맥락이 전부 생략돼 있고 자극적인 부분만 보여주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없다면 젊은 세대는 뉴스를 접할 기회가 아예 없는 것 아닐까요. 우릴 위한 뉴스가 없다는 지적도 있잖아요. 그래서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게 맞는 뉴스, 제대로 된 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무서운 건 정치에 무관심한 상태 같기도 해요.

#나는 토론이 즐거운가

보현: 마지막 질문인데요. ‘나는 토론이 즐거운가?’에 대해 간단히 대답해 보죠. 전 사실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렇게 공식적으로 자리를 만드는 건 토론으로 무언가 다음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 같은 게 들어서인데요. 무엇이든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되니까요. 계속 판을 깔아보겠습니다.

수현: 오늘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내가 토론을 회피하며 사는구나’를 한 번 더 느꼈어요. 성격 탓도 있는 것 같고, 앞으론 토론을 즐겁다고 여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태: 전 요새 민법을 공부하면서 토론이 더 재밌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도 재밌고요.

경진: 가끔 술자리에서 토론 아닌 토론을 하면 한 발 더 들어갈 때가 있거든요. 내 주장에 상대의 주장을 더하면 내가 알지 못하던 지평이 열리니까, 그런 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기왕이면 술자리가 아닌, 이런 토론을 위한 자리에서 각을 잡고 앉아 토론하는 일이 더 많았으면 하고요.

상천: 마냥 토론이 즐겁지만은 않아요. 내가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거나, 상대가 몰랐던 부분을 내가 전달할 때, 혹은 서로 고민거리를 던져줄 수 있을 때 성취감 있고 즐겁게 느껴지긴 해요. 그게 아닌,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거나 얘기하기만 해야 할 땐 피곤하다고 느꼈어요.

원일: 토론하는 분위기를 좋아해요. 얘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제 생각을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내 생각이 틀렸을 때 그걸 인정하고 다시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나빈: 토론을 좋아합니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상대의 의견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과정도 좋아하지만 그걸 즐겨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더 적극적으로 토론하며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도 알고 싶어요. 그게 인간에 대한 애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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