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사이비역사 유포하는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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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복희는 신시배달국 제5대 태우의환웅의 12번째 막내아들’, ‘한자는 우리 동이민족의 것’, ‘주나라를 건국한 민족은 누굴까요? 우리 동이민족이 세운 나라’, ‘강단사학자들은 일제사관에 사로잡혀서, 어쨌든 간에 역사학자들 대부분도 그렇고 한민족의 역사 모든 걸 한반도 안에만 가두려고 한다.’

▲대구교통공사는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을 초청해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진짜 옛 이야기’라는 주제로 특강을 3차례 진행했다. [사진=대구시의회]

위 인용문은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이 올해 5월 펴낸 『옛이야기 강의록』에 있는 사이비역사(似而非歷史) 내용 일부를 추린 것이다. 이만규 의장의 이 책은 이 의장이 대구교통공사에서 옛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2023년 7월부터 3차례 진행한 강의록을 모은 책이다. 그리고 올해 6월 1일 김광석길 야외콘서트홀에서 북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만규 의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서술을 두고 “이게 뭐 위서(僞書)다, 기록이 잘못됐다, 그런 기록은 엉터리다. 다 괜찮습니다. 옛이야기니까요”라며 옛이야기임을 강조하지만, “우리 역사가 왜곡된 부분이 많은데, 올바른 역사 인식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자신의 주장이 올바른 역사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만규 의장이 주장하는 ‘한민족 역사 1만년설’, ‘은나라, 주나라 한국인 시조설’, ‘한자 동이족 문자설’ 등은 이만규 의장이 새롭게 만든 논리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확산된 사이비역사(또는 유사역사학)를 가져온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널드 프리츠의 저서 『사이비역사의 탄생』에 따르면 사이비역사가들은 증거를 선별적으로 채택하고,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무시하고, 논리 전개 과정에서 가능성과 개연성의 구분을 흐려버리거나 예외적인 증거만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만규 의장의 강의록에서 사료로 제시된 책은 위서(僞書)로 평가받는 『규원사화』가 전부이다.

“묘하게 우리 강단사학자들은 일제사관에 사로잡혀서, 어쨌든 간에 역사학자들 대부분도 그렇고 한민족의 역사 모든 걸 한반도 안에만 가두려고 합니다. 일본이 주장하는 엉터리 한민족의 역사를 배워와서 해방이 되자 최고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가 되어 우리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칩니다.” 이만규 의장이 강의 말미에 본인이 ‘올바른 역사 강의’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인데, 다른 사이비역사 유포자들과 유사한 주장이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의도적으로 한민족 역사를 한반도로 축소시켰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의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민족의 역사 강역이 반도에 한정돼 있어서 대륙이나 해양 역사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을 했는데, 사이비역사를 주창하는 이들도 반도의 역사는 무조건 열등하다는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식민주의 사학은 오히려 한국사의 공간적 범위를 한반도에 한정하지 않고, 바깥과 연결하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대표적인 게 만선사(滿鮮史)였다. 일본 입장에서 대륙과 연결하려면 조선이 한반도에 한정된 것보다 만주를 포함한 대륙과 연결되는 편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는 과정에서는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은 동아사(東亞史)가 등장했는데, 이런 세계관은 오늘날 사이비역사 유포자들과 일치한다. 사이비역사는 역사를 탐구하는 방법을 교란시키고, 사실에 기초하는 대신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실을 왜곡시킨다. 이러한 사이비역사는 국수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일제사관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이유로 대구시의회 의장은 사이비역사를 유포하고 있다. 문제는 공적기관들이 사이비역사 유포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이만규 의장을 3차례나 초청해 ‘아무말 대잔치’ 특강을 열었고, 홍준표 대구시장, 강은희 대구교육감, 신일희 계명대 총장, 이재하 상공회의소 회장은 올해 4월 펴낸 『옛이야기 강의록』에 추천사를 썼다.

홍준표 시장은 “한국과 중국의 상고사를 접하게 된다면 그 옛날 중원을 누비며 호령했던 우리 민족의 위상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며, 특히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한민족의 뿌리를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썼고, 강은희 교육감은 “중국의 삼황오제부터 주나라까지, 우리의 단군 조선, 공자와 주역 등 상고시대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는 이 저서”라고 썼다.

자연인 이만규가 사이비역사를 떠들고 다니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공적 공간에 사이비역사를 유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 공공기관장이 앞장서 사이비역사를 칭송하는 행위도 안 될 일이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