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동상 공모전 (6)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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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문호 막심 고리키(1868~1936)의 동상을 건립하기로 하고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최종적으로 세워진 동상의 얼굴은 레닌이었다. 제목은 <고리키를 생각하는 레닌>.”

실화는 아니다. 다만 동구권에 들어선 소위 현실사회체제의 억압과 불합리함에 비추어보면 비현실적인 상상은 아니다. 대문호 기념 사업 와중에서도 영도자 동상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독재 체제를 반면 교사로 삼고, 박정희 기념 사업에서 다른 인물의 동상을 세움으로써 1인 숭배의 역사를 전복시키자. 제목은 <박정희를 생각하는 전태일>.

전태일이 분신한 1970년 11월 13일의 이튿날은 박정희의 53회 생일이었다. 생일상 앞에서 박정희는 전태일을 생각했을까. 전태일은 박정희를 생각했었다. 전태일이 박정희에게 쓴 편지가 있다. 부치지는 못했지만 남아 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서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 박정희를 아버지로 모시는 추앙자들은 전태일을 잃어버린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

이 편지에서 전태일은, 1일 노동을 14시간에서 10~12시간으로 줄이고 월간 휴일을 2일에서 매주 일요일로 늘리라고 촉구했다. 정확한 건강진단, 시다공 수당의 50% 이상 인상 등도 요구 사항에 들어 있었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노동자가 아픈 곳을 알렸지만 대통령은 고쳐주지 않았다. “박 대통령도 들어주고 싶었지만 시대 상황상 힘들었을 것”이라 두둔하는 박정희 추앙자들도 있을 것이다. 진심이라면 박정희가 못다한 반성과 책임을 승계하라.


동상 아이디어 응모는 sumin-gumi@daum.net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