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청년, 생활비‧주거비용 늘고 저축‧보험‧투자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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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돈은 현물이 아니라 게임 느낌이다. 돈을 한 번도 현금으로 만져본 적 없기도 하고 통장에 들어오면 그냥 사라져 버린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돈이 필요하면 1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채워놓는 걸 반복하는 게 꼭 게임 퀘스트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현실감이 떨어진다.” (다중채무 상황인 A 씨)

“취업 준비를 하면서 불규칙적으로 일하다 보니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 항상 쪼들린다.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월세 20만 원짜리 빌라 원룸에 산다. 전기와 수도,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기도 한데 돈이 없으니 노브랜드에서 5개 1,900원 하는 라면이나 5kg에 9,000원 하는 미숫가루로 끼니를 때운다.” (취업준비생 B 씨)

11일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이 공개한 ‘2023년 대구지역 청년부채 실태조사’ 내용 중 일부다. 이 조사에 따르면 대구지역 청년들은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청년채무자 10명 중 4명이 2,3금융권에서 대출을 하는 등 부채가 질적으로 악화된 상황에 놓인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해 10월 24일부터 11월 21일까지, 대구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만 19세~39세 청년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은 대구지역 청년들의 부채 현황, 경제적 어려움, 주거 이용현황 등에 대한 항목으로 설문조사를 구성했으며, 청년 15명을 대상으론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 방식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해 디딤은 ‘2023 빚 해결 페스타 : 론리(Lonely)하지 않은 론리(Loanee) 파티’를 열어 채무조정, 취업, 주거 상담과 당사자 대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대구 청년들은 2022년대비 2023년 더 많이 지출하고 부채상환에도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월 평균 소득은 217만 원이었는데, 2022년 동일 조사(213만 원)와 비교해 4만 원 올랐지만 이는 물가상승률 대비 미미한 변화다. 월 소비 중 지출 비율은 66.4%(94만 원)로, 2022년 60.1%(89만 원)와 비교해 6%가량 늘었다. 월 소비 중 부채상환 비율도 늘었다. 2022년 23.5%(34만 원) 이었던 부채상환 비율은 2023년 29.7%(41만 원)로 늘었다.

주거비도 상승해 부담은 더 늘었다. 2023년 대구 청년은 평균적으로 월세 보증금 1,435만 원, 반전세 보증금은 6,688만 원, 전세보증금은 1억 2,237만 원 부담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 2022년 대비 월세 보증금 786만 원, 반전세 보증금 1,488만 원, 전세보증금 1,574만 원 상승했다. 평균 월세는 54만 원(월세 40만 원, 관리비 14만 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저축, 보험, 투자 가입 비율과 금액은 감소했다. 물가와 금리가 상승하고 지출과 부채상환 비용이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 저축 가입 비율은 58.6%로 전년 74.4% 대비 15.8% 감소했다. 보험 가입 비율도 67.9%로 전년 80.4%대비 12.5% 줄었다. 투자상품 가입 비율 역시 24.4%로 전년 39.3% 대비 14.9% 줄었다.

부채가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결과도 있다. 1년간 금전적 어려움으로 돈을 빌린 경험이 있다는 비율은 96.8%로, 1년간 빌린 평균 금액은 1,507만 원이다. 이들 중 대출기관으로 2, 3금융권을 이용했다는 비율이 39.8%였다. 전년(24.2%) 대비 15.6% 증가한 수치다. 시중은행 평균 연 이자율보다 2, 3금융권 평균 연 이자율이 높은 걸 감안하면 청년들의 채무 악성화 상황이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은 “청년 사이에 ‘다 오르는 데 내 월급만 안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는 유머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고물가, 고금리 상황 속 소득은 오르지 않아 경제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의 악화로 청년층의 피해는 다양하고 심각해지고 있다”고 봤다.

이어 “경제적 기반이 없고 돈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청년이 주식 열풍, 금리인하로 인한 대출 등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기엔 많은 청년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청년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은 2018년 설립된 대구지역 청년관계금융 단체이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소액대출을 진행하고, 매년 대구지역 청년부채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구 청년들의 부채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는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