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4)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_이상근 이야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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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대구에는 장애성인을 위한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인정은 이뤄지고 있지만, 고등학교 인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 학생의 구술을 5월부터 8월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1) “이제 고등학교 가고 싶어요!”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2) 모르고 살아온 삶_박경화 이야기 ①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3) 모르고 살아온 삶_박경화 이야기 ②

54세의 이상근 씨는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함께 가진 중복장애인이다. 고향인 울릉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국민학교 2학년 때,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해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15살에 대구에 있는 시설로 보내졌으며, 여러 거주시설을 옮겨 다니면서 억울하고 끔찍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40이 넘은 나이에 탈시설을 통해 삶의 방향을 새롭게 찾게 되었다. 2018년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초등과정에 입학했고, 2021년에는 초등과정 졸업과 동시에 중학과정에 입학했다. 상근 씨는 질라라비야학에 다닌 것을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질라라비장애인야학 학생회장을 2대째 역임하고 있으며, 바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상근 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들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2024년 5월,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조계숙 활동가가 수차례 인터뷰한 내용이다.

내 고향 울릉도

어릴 때 기억요?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어…그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고. 아버지가 그렇게 이야기했어예. 어머니 얼굴은 기억이 안 나고…형제는 없고 내 혼자뿐이라서 아버지와 둘이 살았어예. 그냥.

제 고향은 울릉도라예. 집 밖만 나가면 바다가 바로 보이고. 동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맨날 바닷가 근처에서 놀았어예. 아버지는 배를 타고 나가면 한참(며칠) 지나야 집에 왔고, 그러면 내 혼자 밥 해먹고 있었지. 한 번씩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마음에 화 같은 게 날 때가 많았어예. 술 먹으면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 됐거든예. 그러면 밖에 나가서 바다만 한참 보다가 밤이 되서야 집에 들어온 적이 많았고…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예.

울릉도에 있는 국민학교를 다녔어요. 2학년 됐을 때, 친구가 저를 때린 적이 있었거든예.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축구공으로 머리를 딱 맞추거나 몽둥이로 왼쪽 어깨와 다리를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하고…와 때렸는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고…그래서 그냥 학교 가는 것이 무서웠어예.

선생님은 때린 친구 이야기만 들어주고 내 이야기는 안 들어줘서…억울했지요. 나도 학교 다니고, 친구들하고 공부하고 싶은데 너무 속상해서 학교를 못갔어예. 내한테 학교는 즐거운 곳이 아니라 무섭고 억울한 곳이 되어 버렸어.

15살쯤인 것 같은데, 아버지를 피해서 집에 맨날 늦게 들어가고 마지막 버스를 놓치면 걸어서 늦게 집에 들어오는 일이 많았어예. 또 바깥에 길쭉한 의자 같은 거 있잖아예. 거기서 밤새 지내다가 잠이 든 적도 있었고. 그러니깐 아버지가 저를 대구에 있는 어떤 시설로 보냈어예.

근데 거기서 내가 몰래 도망쳤어예. 원장과 직원이 내보고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 때렸다고 하면서 혼내고 해서 여기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아서 무작정 도망쳤어예. 그날, 밤 10시 정도 됐을 때 지나가던 경찰한테 잡혀서 그때부터 H시설(다른 노숙자 시설)에 살게 됐어예.

거기 시설? 거기서는 말을 안 들으면 독방에 집어넣어예. 하루는 어떤 직원이 내를 때리고 독방에 처넣었어예. 밥 먹으러 오라고 캤는데 빨리 안 온다고 때리고…방에 있는 방장은 내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말려주지 않아서 좀 섭섭했고…그때 독방에는 7명이 같이 갇혀있었는데 밥도 밥그릇에 한꺼번에 섞어서 퍼줬어예. 진짜 개밥 같았어예. 컴컴한 방에서 5일 동안 갇혀 있었고. 또 어떤 날은 같이 통닭을 먹던 사람이 갑자기 목이 막혀서 죽는 것을 옆에서 봤거든예. 진짜 생각하고 싶지 않고…끔찍한 기억이라예.

그러다가 C시설(다른 장애인 거주시설)로 옮기게 됐고. 전에 거기(H시설) 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이 들었어예. 식당에서 밥도 먹게 해주고 1차, 2차 나누어서 밥을 먹었고…거기서 장갑 포장하는 일을 했는데 돈은 못 받았어예. 알고 보니 누가 돈을 주지 않고 가져갔는지 방송국에서 카메라 들고 뉴스를 촬영도 했어예.

그래도 친구는 있었어예. 지금 같이 학교 다니고 있는 서O협, 박O호 씨는 그때도 친했어예. 그나마 다행이고…거기서 오래 있었고. 마흔이 될 때까지 거기서 살았어예.

▲2018년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첫 수학여행에서 이상근 씨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2018년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첫 수학여행에서 이상근 씨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탈시설, 용기있는 결단

2017년 어느 날 같이 살고 있는 김O도씨가 여기서(시설) 같이 나가자고 했어예. 여기서 나가면 돈(정착금)을 준다고. 그 돈이면 혼자 나가서 살 수 있겠다 싶었지예. 어디서 그렇게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하는 한 달 체험을 O도씨와 같이 신청했어예.

처음에는 체험홈에서 밖에 나가면 길을 잘 못 찾아서 몇 번이고 헤맸어예.(웃음) 근데 그래도 좋았어예. 시설에서는 어디 나가려면 항상 물어보고 허락 받아야 되는데 여기는 내 혼자 왔다 갔다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시설이랑 진짜 달랐지요. 그게 되게 신기하고 마음이 편했어예. 저녁에 TV를 봐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옆 사람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잘 일도 없고. 식당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돼지국밥도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으니깐 진짜 행복했어예(웃음).

체험홈에서 많은 걸 배웠어예. 돈 쓰는 방법이나 혼자서 병원에 가는 것 같은 거. 하루는 같이 살고 있는 O도씨가 저녁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했어예. 119에 내가 직접 전화했고. 좀 있으니깐 119 대원이 O도씨를 병원에 데려갔어예. 이렇게 한 달을 살아보니 내 혼자 살 수 있겠다 싶었어예.

거기서 활동지원사님을 처음 만났고. 밥 해먹는 것도 도와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게 도와줬어예. 그 지원사님이 지금의 야학을 소개시켜 줬고. 장애인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데, 거기서 공부하면 초등학교 졸업을 할 수 있다고 알려줬어예. ‘아, 나도 공부 좀 해야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지예.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래도 사회에서 좀 더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예.

▲드디어 나도 학교에 갑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

2018년에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 입학했어예. 초등 2단계로. 그때 청구재활원에서 같이 나온 김O도씨랑 같이 공부했고. 처음에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시험을 봤거든예. 진짜 긴장 됐어예(웃음). 아는 글자도 별로 없고 시험도 왠지 어려운 것 같았거든예. 시험에 떨어져서 학교를 못 다닐까봐 걱정도 됐고… 근데 선생님이 시험도 잘 봤고 합격했다고 했을 때 진짜 기분이 좋았어예. 나는 글자도 잘 몰라서 맨날 부끄러웠는데.

처음 만난 선생님이 김○희 선생님이라예. 내가 모르는 글자도 가르쳐 주고 안 보고 글자도 쓸 수 있도록 도와줬지요. 자꾸자꾸 공부하다 보니 아는 글자도 생기고 자신감이 생겼어예. 영어로 된 간판은 못 읽지만, 한글로 된 간판은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또 다른 사람한테 말도 잘할 수 있게 되었고. 진짜 학교 다니기를 잘 한 것 같아예.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어예. 하루는 영화관에 갔는데 뒷사람한테 코로나를 옮겨왔는지 그다음 날 많이 아팠어예. 며칠 동안 학교도 못 나오니 빨리 학교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고. 코로나가 있어도 학교에서 공부는 계속했어예. 마스크 쓰고, 칸막이 안에서, 숨이 차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학교를 쉬지 않았어예. 그래서 2021년에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도 입학하게 됐고. ‘나도 이렇게 졸업을 하는구나!’ 생각하니 꿈을 꾸는 것 같았어예. 이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 같아예.

▲열심히 공부 중인 상근 씨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열심히 공부 중인 상근 씨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초등과정 졸업식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기록자의 말

인터뷰하는 내내 지금까지는 본 적 없던 상근 씨의 다양한 표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심각하게 얼굴을 찌푸리거나 가끔 웃음도 띄우는 모습을 지켜보니 한 사람의 살아온 삶을 들여다보는 이 작업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섭고 아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여러 시설을 옮겨 다니면서 직면한 상실감, 또 본인의 결단에 대한 자부심 등은 듣는 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음 주는 상근 씨의 현재의 학교생활과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