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같은 역사] 측근을 경계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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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음력 5월 4일, 왕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무관 노상추는 왕의 윤음(왕이 내리는 말씀)을 받았다. 물론 이는 노상추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그를 포함해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시거나 호위하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내려진 윤음이었다. 특히, 정조는 자신의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환관들과 왕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을 호위하는 무관들 전체를 대상으로 윤음을 내렸다.

당시 정조의 윤음은 그들에 대한 감사나 호의의 표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최측근들의 행태가 눈에 거슬렸던 듯하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던지, 그간 마음에 두고 별러 왔던 행태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지적하고 꾸짖었다.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눈에 띄었던 내용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꾸짖었으니, 환관들이나 무관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섭섭한 눈치도 숨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만했던 게, 이들의 지근거리 보좌라는 게 단순히 업무적으로 얽힌 문관들의 보좌와 달랐다. 환관들은 그야말로 왕의 수발을 들면서 궁내 모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했으니, 왕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위 무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의 주위에서 왕의 신변 보호를 위해 왕의 방패와 칼이 되는 존재들이 아니었던가? 왕의 주위에서 유일하게 무기를 들 수 있었던 이들이었기에, 그들에 대한 왕의 신뢰가 없다면 곁에 두기 힘든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조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듯하다. 정조는 자신의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근신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조가 환관을 바라보는 시선은 환관들 입장에서 매우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윤음을 통해 정조는 역대 역모에 늘 환관들이 관여되어 있음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실제 어떤 역모든 환관들의 도움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왕의 입장에서는 가장 신뢰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이들이 바로 환관들이었다. 정조는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행동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는 협박이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정조는 환관들의 부도덕성 역시 함께 지적하고 나섰다. 윤음을 통해 그는 환관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안팎으로 뇌물을 받는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환관들로부터 올라오는 보고가 뇌물에 의해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지금에 비해 뇌물에 대한 처벌이 명시적이지 않았던 조선시대지만, 정조는 자기 측근들이 받는 뇌물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뇌물이 국정을 농단하게 되면 언제나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이유였다.

환관들에 대한 정조의 이러한 시선은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무관들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환관들과 달리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무관들의 행동은 좀 더 큰 불만을 낳았다. 그래서 정조는 궐내에서조차 무관들이 활터로 나갈 때 거리낌 없이 웃고 떠드는 못된 버릇이 있다며 꾸짖었다. 궐 안에서도 이러한데, 궐 밖에서 어떠하겠냐며, 정조는 자신을 호위 무관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현대 범죄 관점에서 보면 환관들에 비해 무관들에 대한 비판 강도가 낮은 듯하지만, 정조는 무관들 문제가 환관보다 곱절은 더 크다면서 자신의 이번 윤음의 골자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했다.

당시 이 윤음은 병조판서가 참가했던 경연 자리에서 나왔다. 정조는 말로 꾸짖은 후, 병조판서를 향해 자신의 이 말을 말로 알리는 데 그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문건으로 만들어 각 청에 게시하고, 그 말을 인쇄하여 현직에 있는 모든 무관들에게 널리 나누어 주라고까지 했다. 무겸선전관으로 근무하던 노상추까지 이 윤음을 받아볼 수 있게 된 이유였다. 정조는 자신을 호위하는 무관들을 향해 행동이 똑바른 무관‘다움’을 요구하고 있었다.

환관들이나 호위무관들 입장에서는 오금이 저릴 윤음이었다. 실제 조선 왕조 전체를 봐도, 정조처럼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최측근들을 향한 공적 윤음을 찾기 어렵다. 물론 환관이나 무관 개개인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이를 표출해서 윤음의 형식으로 공식화 한 일은 거의 없다. 왕의 수발을 들고 신변을 지키는 ‘자기 사람들’에 대한 대우를 생각한 조치였으며, 응당 이를 인정의 관점에서 다루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왕이 끝까지 믿는 사람들이기에, 심각한 범법이 아니라면 일정 정도 거슬리는 행동도 용인했던 터였다.

그러나 정조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보기에 환관들은 ‘왕의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절제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했다. 자신을 지키는 호위 무관들 역시 왕의 군율과 위엄을 대리하기 때문에, 스스로 절제하고 무겁게 행동해야 했다. 왕의 최측근일수록 더더욱 그래야 하며, 왕과 왕명의 권위는 여기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실제 부패한 권력일수록 ‘자기 사람들’에게 더 유연하기 마련이며, 그래서 권력 측근에서 부패가 빨리 이루어지는 법이다. 230여 년 전 최고 권력자 정조가 오늘날 우리를 향해 내리는 윤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