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공사 강행 10년, 청도 삼평리 주민들은 여전히 “탈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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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곳곳에 765kV 송전탑이 들어서고,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도 345kV 송전탑이 들어선 지 10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여전히 6월이 되면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 그리고 함께 주민과 함께하던 시민을 향해 행정대집행(밀양), 대체집행(청도)이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이 행사된 시기가 6월이다. 밀양 행정대집행 10년을 앞두고 전국에서 시민들이 청도와 밀양에 모였다.

8일 오후 2시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는 주민과 함께 삼평리 345kV 송전탑 현장을 방문하고 근황을 확인했다.

2014년 7월 21일 삼평리에선 대체집행으로 고공농성장이 철거되고, 공사가 강행됐다. 송전탑 건설 반대에 나선 주민 10여 명은 그새 노환을 얻거나 세상을 등졌다. 지금은 50~60대 젊은 주민 2명, 할머니 3명이 남아 10년 전을 기억하며 우뚝 선 23호 송전탑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송전탑 반대 투쟁 과정에서 허물어진 주민 공동체는 여전히, 적어도 반대에 나섰던 주민들에게는 회복되지 않았다. 송전탑이 들어서기 전 생활하던 마을회관은 허물어졌고 그 자리에 복지회관이 들어섰지만, 반대 주민들은 복지회관을 찾지 않는다. 관계 회복을 위해 찾아보기도 했으나, 다른 주민들이 피했다고 한다.

지금은 오래된 흙집을 하나 구해 ‘삼평리 평화회관’이라 이름 짓고,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주민들끼리 모여 공간을 꾸려가고 있다.

▲삼평리 주민들이 삼평리 평화회관에서 쉬고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마을이 예전처럼 회복되지는 않네요. 새로 지은 복지회관에 할머니들과 가봤더니 계시던 분들이 우르르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평화회관)에 모여 살고 있죠. 시간이 많이 흘러, 나이 많은 할머니들은 이제 다른 데 잘 다니시지는 못해요. 삼평리에는 여전히 오시는 분들이 있죠. 얼마 전에도 학생들이 와서, 낭독회도 했어요.” (삼평리 주민 이은주(58) 씨)

은주 씨는 송전탑 반대 운동을 시작한 후, 지금은 탈송전탑 문제뿐 아니라 도시와 산업을 위해 농촌과 지역민을 희생하는 에너지 정책 문제를 이야기한다.

“전기는 농촌에서 만들고, 길게 초고압 송전탑을 세워서 도시로 보내는 것이, 10년이 지난 지금 바뀌었나요. 더 심해졌죠. 삼평리 송전선로는 핵발전소에서 도시로 전기를 공급하려 세운 거고요. 우리 마을은 공동체가 아프고, 주민들도 국가폭력에 따른 트라우마도 있어요. 우리가 힘은 없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분들 덕에 힘내고 있어요.” (이은주 씨)

“더 심해졌다”는 은주 씨 말처럼, 실제로 최근에는 특정 언론을 중심으로 송전망 확대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AI 시대, 새로 원전을 짓고 가동해도 이를 도시로 연결할 송전선이 부족해 위기라는 주장이다. 밀양과 청도 송전탑 공사 당시 한국전력공사 사장이었던 조환익 전 사장은 언론에 등장해 송전선로의 ‘송전 용량 증량’ 필요성을 제기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수도권 밖에 사는 지역민의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던 과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걸까. 김춘화, 조봉연, 최계향 할머니는 이날 전국에서 모인 80여 명을 맞으러 우산을 들고 삼평리 23호 송전탑으로 향했다. 은주 씨의 근황 설명을 지켜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삼평리 주민들과 시민들

10년 전 공사 당시에도 삼평리를 찾았던 한 시민은 “19살에 처음 삼평리를 왔다. 이곳은 세상에 질문을 하게 했던 곳”이라며 “삼평리의 경험 덕분에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향해 살아가게 됐다. 10년이 지났지만, 마음은 늘 삼평리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경북 봉화군에서 500㎸ 고압직류전송(HVDC) 송전선로 건설 반대에 나선 한 주민은 “우리 지역도 곧 공사가 시작될 거 같다. 삼평리에 와서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밀양과 청도의 할머니들을 뵙고, 저도 앞으로 10년, 20년 지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힘을 달라”고 말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도 현장에 와서 “대표로 취임할 때, 정의당의 정치는 현장에서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우리 삶의 현장에 서겠다는 마음으로 밀양과 청도에도 함께 하고 있다”며 “정의당도 밀양, 청도의 아픔을 함께한다. 앞으로도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희림 시인의 시 낭송, 백운선 연극인의 1인극 공연이 이어졌다. 삼평리 주민과 시민은 이후 밀양으로 향해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원천봉쇄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헌편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는 삼평리 송전탑 공사 10년 사진집 ‘삼평리에 평화를'(가제) 예약 주문을 받는다. 사진집 판매 수익금은 청도 송전탑 반대 운동에 사용되며, 가격은 배송료 포함 5만 원이다. 자세한 문의는 서창호 집행위원장(010-8191-7744)으로 하면 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