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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교수회에서 의대 증원 학칙 개정안이 재차 부결되자 경북대 본부가 홍원화 총장의 교무통할권을 통한 학칙 개정 강행을 시사했다. 본부가 학칙 개정을 강행하면 기존 경북대의 의사결정 구조는 무시한 조처가 된다. 홍 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대 증원을 요청한 이후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총장 임기 단축안건까지 가결돼 사실상 불신임된 당사자란 점에서 ‘무리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27일, 경북대 본부 처장단은 공개 건의문을 통해 교수회에 오는 30일까지 의대 증원 문제 재심의를 요청했다. 건의문에서 본부 측은 재심의 부결 시 교무통할권에 근거해 의대 증원 학칙을 공포할 것을 홍 총장에게 건의했다. 명목상 홍 총장이 건의를 받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홍 총장은 학칙 개정안 부결 직후 <조선일보> 등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부결 시 직접 공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먼저 밝힌 바 있다.
경북대학교 학칙에 따르면 경북대 학칙 개정안은 개정안 공고 이후 교수회를 거쳐 대학평의원회 심의 후 총장이 공포한다. 학칙 개정이 교수회를 ‘거친다’는 모호한 표현은 경북대 구성원 사이에서 논란을 겪으며 관행으로 굳어졌다. 1999년 교수회가 학칙상 의결 기구로 명시됐는데, 이를 정부가 상위법과 어긋난다며 시정명령을 한 것이다. 이후 경북대 학칙은 학칙 개정 시 교수회를 ‘거친다’고 수정돼, 형식적으로는 의결권 행사를 명시하지 않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수회가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
본부 측의 명분, “이미 정부가 정원 확정”
의대 155명으로 증원 요청도 홍 총장이 하고선
정부가 요청 확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
본부 측은 이미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확정했으며, 대학은 선택의 여지 없이 정부의 증원 계획에 따라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의대 증원을 요청한 사람이 바로 홍 총장이라는 점에서 반박이 뒤따른다. 앞서 본부 측은 “사범대와 보건의료계와 같은 정책 정원과 관련해 대학은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바를 따라야 하고,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홍 총장은 경북대를 방문한 윤 대통령에게 의대 정원을 250명으로 늘려달라고 건의했고, 그 직후 국민의힘 비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비례대표 후보 공천 사실이 알려졌다. 그탓에 학내에서는 의대 증원 신청이 홍 총장의 정치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이후 교수회는 물의를 빚은 홍 총장의 조기 사퇴를 요구하는 취지의 안건을 가결했다. 사실상 불신임받은 상태인 셈이다. 하지만 홍 총장은 다시 정부에 의대 정원을 155명으로 증원해달라고 신청했다.
경북대 A 교수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본인의 잘못으로 임기단축안이 가결된 총장은 실질적으로 총장으로서의 지휘력을 상실한 상태가 돼야 마땅하다”며 “이 상황에서 학내의 의사결정 관행을 총장이 정면으로 무시한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 조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결정 과정을 법적인 절차로 포괄할 수 없는 관행이라는 것이 있다. 경북대에서 민주적 거버넌스 틀에서 이루어진 결정을 무시하기에, 과연 지금의 본부가 충분히 정당성을 갖추었는지 의문”이라며 “과연 얼마나 구성원을 실질적으로 설득하려고 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경북대 B 교수는 “법원이 의대 증원을 멈추라는 의료계 집행정지 가처분을 각하, 기각하긴 헀지만, 결정 취지에는 의대생의 학습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여지를 우려하면서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 해야 한다는 취지도 포함됐다”라며 “더구나 대학의 자율성은 법의 테두리로만 이야기 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수회·본부 갈등 격화할까
교수회 측에서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증원 안건 재심의는 불가하다고 본부에 알리고 한 차례 짧은 보도자료를 낸 것 이외에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홍 총장이 학칙 개정을 강행할 경우 경북대학교의 관례적 의사결정 구조를 무시하는 일이라 반발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2019년 경북대의 계약학과 신설 과정에서 교수회의 학칙 개정 의결을 거치지 않고 강행해 본부와 교수회는 상당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당시 박찬석 전 총장을 포함해 교수회 전임 의장들도 나서서 공개적으로 본부를 규탄했다. 교수회의 학칙 개정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경북대가 따라 온 민주적 거버넌스이자, 대학 자치와 자율에 기여하는 행위였는데 이를 무시한다는 이유다.
한편 본부 측은 법적으로 교수회에 의결권이 없다고 강조했으나, 사안에 따라서 대학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이 대학 자치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교육공무원법 관련 위헌확인청구에서 “대학의 자치 주체를 대학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교수나 교수회의 주체성이 부정되지 않는다”며 “가령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학의 장에 대한 관계에서 교수나 교수회가 주체가 될 수 있고, 국가에 의한 침해에 있어서는 대학 외에도 대학 전 구성원이 자율성을 갖는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경우에 따라서 교수, 교수회도 주체가 될 수 있다”며 결정 요지를 밝힌 바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